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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영의 삯과 꾼] "비정규직이 뭐예요?" 순수의 시절

 

이준영 기자 | ljy02@newsprime.co.kr | 2016.11.25 18:23:55

[프라임경제] 누군가에겐 지긋지긋한 일터인 곳이 누군가에겐 미래를 설계하는 '꿈터'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대한민국 노동현장에는 오늘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모여 삶을 이어가고 있죠. 시대가 변하면서 우리네 노동은 단순 밥벌이에서 전문직까지 다양화·고급화의 길을 걷고 있는데요. 형태 또한 복잡다단합니다. '삯과 꾼'에서는 노동 격변기였던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노동시장의 단상을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1995년에서 2000년은 노동의 격변기이자 무주공산의 시대였습니다. 파견법이 도입되기 전이었고, 비정규직에 대한 개념도 없을뿐더러 근로기준법의 감시감독이 지금처럼 강력하지도 않았죠.

그렇다면 '근로자 보호'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을까요? 당시는 비정규 관련법은 직업안정법이 전부였기 때문에 근로자 임금이나 지위가 보호되지 않았을 것 같지만, 비정규에 대한 개념이 전무한 시절이라 차별도 없었고, 임금이나 근로자 지위에 대해서도 오히려 지금보다 나았다네요. 

1994년부터 아웃소싱업계에 종사한 김건호 아리오 상무는 당시 상황에 대해 "그때 국내엔 지금의 아웃소싱기업처럼 채용을 대행해주는 업체가 거의 없었다. 1995년부터 대량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기업들은 채용대행업체를 많이 찾았다"고 말합니다.

이어 "외국계 아웃소싱기업인 맨파워나 아데코 등도 국내에 들어오던 시기여서 노동환경이 매우 급변했던 시기"라고 돌이켰는데요. 1990년대 후반은 컴퓨터의 보급이나 인터넷의 확대가 저조했던 시기여서 지금처럼 채용포털사이트가 성행하지 않았고, 주로 잡지나 신문으로 구인구직이 이뤄졌죠.

90년대 말 온라인 채용포털이 없던 시기에 구인잡지나 신문으로 인한 구인 공고가 많았다. ⓒ 아리오

당시 유명했던 구인잡지는 '아르바이트뉴스' '주간구인' 등이었고, 이외 일간지 등에 모집 공고를 내 근로자를 모집했는데요. 특히 채용대행의 경우는 각 지역 초중고 졸업앨범에 있는 연락처로 일일이 전화해 채용여부를 물어 리쿠르팅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 리쿠르팅 업무를 했던 김연경 맨파워코리아 상무는 "처음 잡매니저가 되고 담당했던 업무가 리쿠르팅인데 졸업앨범으로 집집마다 전화해서 미취업자를 찾아 채용을 알선하는 것"이라고 회상합니다.

그러면서 "당사자가 취업했으면 형제자매 중에 미취업자가 있냐고 물어 이들의 데이터베이스(DB)를 보유해 취업을 알선하기도 했다"며 웃어 보이네요.

김건호 상무는 "주요 일간지에 공고를 내면 우편으로 이력서가 수백 통이 와서 이를 분류하는 작업도 상당히 힘들었다. 그때는 구직자가 중심이 돼 그들이 원해 지원한 것이라 면접이탈자가 거의 없었다. 지금은 면접이나 출근을 약속해도 펑크가 자주 난다. 주체가 구직자가 아닌 구인자가 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김건호 아리오 상무는 90년대부터 지금까지 아웃소싱업계에 종사해 당시의 생상한 얘기를 전해줬다. = 이준영 기자

특히 1990년대 말은 외국계 기업의 유입이 많던 시기였는데, 이들 기업은 당시 파격적인 주 5일제 근무여서 구직자들 중에서도 여성들에게 인기가 아주 많았다고 합니다.

이런 분위기에 채용을 알선해주는 지금의 잡매니저(잡매니저란 용어는 2010년경부터 생긴 것으로 추정되나 이전에는 이들에 대한 명확한 용어가 없었다. 편의상 잡매니저로 표기)들의 인기도 상상이상이었다고 하는데요. 

외국계 기업은 국내에 자리를 잡기 위해 구직자의 DB가 필요했고, 국내 기업들도 인적DB 전혀 없던 시기라 잡매니저들을 아주 극진히 대접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지금은 파견 및 계약직원을 비정규직이라 부르지만 당시는 비정규직이란 개념이 없어 그저 '취업시켜주는 사람'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김 상무는 "구직자들 이력서를 들고 기업에 찾아가면 인사담당자들이 아주 극진히 대접했다. 근로자들도 고마워하고, 근로자의 부모님들은 따로 연락하거나 식사를 대접하는 등 잡매니저로 보람과 자긍심을 많이 느꼈었다"고 기억을 더듬네요.

파견근로자도 사업장 내에서 원청사 명함을 만들어 정규직(비정규직이란 개념이 없다 보니)들과 어울릴 수 있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실상 정규직처럼 대우받기도 했고요. 또 파견법 제정 전에는 5~6년 이상 한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이들도 상당수였다고 하네요.

한편, 채용대행업체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은 당시를 '낭만이 있던' 시절로 기억합니다. 지금처럼 비정규 양산 산업으로 치부되지도 않았고, 취업을 시켜주는 고마운 기업, 고마운 사람들이었다는 거죠.

아웃소싱기업에서 20여년간 근무한 A씨의 넋두리 반 웃음 반 이야기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일하는 저도 보람차고, 일하는 구직자들은 첫 월급을 받으면 선물이나 식사대접 등으로 감사를 표현했어요. 취업이란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아웃소싱사업의 사명이지만 그것이 세월이 지나 많이 퇴색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근로자와 소통도 단절되고, 잡매니저란 직업에 대한 자긍심도 옅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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