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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①] '잠재 피해자 227만명' 묻힐 뻔했던 살인병기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연관 기업 24개사…잃어버린 5년 파헤치기, 정부·시민·언론 총력 조짐

전지현·하영인 기자 | cjh@newsprime.co.kr | 2016.05.03 15:03:41

[프라임경제] 인간이 스스로 만든 환경성 질환 '가습기살균제 대참사'. 조사발표 기간까지 2년 7개월, 검찰수사가 이뤄지기까지 총 5년. 올해 초 서울중앙지검 '가습기 피해사건 특별수사팀'이 설치되며 3개월여간 제조판매사 압수수색과 200여명 피해자에 대한 확인조사가 이뤄졌다.

이쯤 되자 옥시,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기업들은 검찰소환에 앞서 '대국민 사과'를 통해 선제적인 움직임을 시작, 묻힐 뻔했던 5년의 살인병기 사연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사망자를 낸 가습기살균제 제조 및 판매 연관 기업은 총 24개사.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실시된 정부의 1, 2차 조사 결과 피해자는 사망 198명, 생존환자 572명으로 총 770명에 이른다. 그렇지만 지난 1월까지 민간차원에서 이뤄진 조사를 합하면 피해자는 1528명에 달하며 잠재적 인원은 227만명으로 추정된다.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신종재앙 '가습기살균제 대참사', 그 5년의 악독한 역사를 총 7편에 나눠 살펴봤다. <편집자주>

2011년 4월 병원 응급실에서 원인미상으로 산모 8명이 숨을 쉬지 못해 죽어나갔다. 급성 폐렴 임산부 환자의 집단발생에 서울아산, 서울대, 연세세브란스, 삼성서울 등 4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의료진은 질병관리본부에 공식조사를 촉구했고 5월부터 역학조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에 앞선 2006년 2월부터 의료계는 '원인 미상 급성 간질성 폐렴'에 주목하던 터였다. 5세 미만 영유아에서 발견된 간질성 폐렴은 2006년 연말부터 2007년 연초까지 집단 괴질 형태로 또 발생했고, 이듬해 연말에도 괴질 환자들의 등장이 이어졌다.

(상단 좌측 왼쪽부터 시계방향) 옥시싹싹 NEW 가습기 당번, 롯데마트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 홈플러스 가습기 청정제, 코스트코 가습기클린업, 세퓨 가습기 살균제, 아토오가닉 가습기 살균제, 애경 가습기메이트, 이마트 가습기살균제, GS마트 함박웃음 가습기세정제, 다이소 산도깨비 가습기퍼니셔. ⓒ 환경보건시민센터

겨울철에만 집단적으로 발생한 괴이한 질환. 이를 두고 병원들은 질병관리본부에 조사를 요청했지만 당시 질병관리본부는 소극적인 자세만 유지할 뿐 정확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

과거 언론보도를 보면 2007년 4개 대학병원 의료진은 질병관리본부 담당 과장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지만 감염병이 아닌 것 같다는 답변만 들어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방치된 채 2008년부터 2011년 7월까지 '간질성 폐렴'으로 진료받은 5세 미만 영유아는 2008년 176명, 2009년 213명, 2010년 245명까지 매년 증가했다.

이 기간 5세 미만 영유아 진료 증가율은 1.4배 늘어 전체 연령대 증가율 1.1배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5~9세 아동도 2008년 66명에서 2010년 92명, 같은 기간 10~14세도 44명에서 66명으로 늘어났다.

결국 그렇게 4년여 뒤에서야 역학조사가 실시됐고 같은 해 8월, 보건복지부(복지부) 소속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살균제나 세정제가 사망의 위험요인으로 추정된다'는 발표결과를 내놨다.

◆환경부, PHMG·PGH 제품 6종 강제수거…사라진 'CMIT·MIT'

당시 복지부는 '대국민 발표'를 통해 사용자제를 권고하며 제조업체에게는 출시 자제를 요구했다. 그로부터 3개여월 뒤인 11월11일 '독성이 확인됐다'며 2011년 질병관리본부의 동물실험 결과를 토대로 PHMG와 PGH가 포함된 제품 6종만 강제수거를 명령한다.

그러나 1994년 SK케미칼(당시 유공)의 가습기살균제 최초 개발 후 2011년 판매 금지까지 총 18년간 총 20여종 살균제가 시중에 시판된 것은 연간 60만개, 사용자는 894만명부터 1087만명 규모였다.

'기업의 안전불감증'으로 촉발된 참사 탓에 총 피해자 1528명(2016년 4월 기준)은 현재까지 폐 이식부터 다양한 만성적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여기에 29만~227만명은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다가 건강피해를 입은 잠재적 피해자로 추산된다. 

2012년 2월 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 11월9일부터 12월까지 동물 대상 '원인미상 폐 손상 위험요인에 대한 흡입시험' 최종결과를 통해 CMIT·MIT에선 원료물질 사용제품에서 폐섬유화 관련성이 적어 독성증상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평가하며 PHMG·PGH 폐손상 인과관계를 확인했다고 발표한다.

환경부는 지난 2012년 6월18일 가습기살균제 원인물질(PHMG, PGH) 흡입독성 가능성에 관한 사회문제가 제기됨에 따라 흡입용도 사용 자제를 관련부처에 권고했다.

◆"가해기업에 과징금 5200만원?" 공정위의 어이없는 '솜방망이 처벌'

같은 해 8월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가습기살균제 원료 중 독성이 확인된 PMHG·PGH 사용 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에 '가습기살균제가 안전하다'고 허위표시한 근거를 들어 과징금 5200만원에 그치는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

이에 옥시 5000만원, 홈플러스 100만원, 버터플라이이펙트 100만원의 과징금과 롯데마트, 글로엔엠에 대한 경고조치가 취해진다.

1997년부터 2016년 현재까지 가습기살균제관련 사건일지. ⓒ 프라임경제

그리고 한 달 뒤, 환경부는 PHMG를 유독물로 고시하면서 호주보고서(국가 산업용 화학물질에 대한 평가보고서)를 참고해 급성 독성이 비교적 높고, 심한 눈손상 물질임을 고시·공개한다. CMIT·MIT에 대해서도 흡입, 피부, 경구의 급성독성 등이 있다며 유독물로 지정한다.

가습기살균제 재난이 발생한 지 17개월이 지난 2012년 12월6일 민관 공동 추천으로 '폐손상 조사위원회'가 구성돼 가습기살균제에 따른 폐손상 여부와 질환 정도를 조사하게 된다.

그러나 2013년에는 '정부의 최종역학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예 수사가 중단되기도 하는 등 수난을 겪으며 피해대책이 차일피일 미뤄진다. 

가해자가 명확한 제품에 의한 화학물질사고인 만큼 제품 생산자·판매자와 소비자 간 문제며 제도 미비로 피해자에 대한 구제가 불가능하기에 어쩔 수 없다는 견해 때문이었다.

그 사이 중증환자들은 1억9000만원이나 하는 폐 이식비와 매달 350만원 상당의 치료비를 부담해야 했다. 그마저도 목숨을 구하면 '운이 좋은 것'이었다. 질병과 경제난에 시달리다 사망한 사람은 피해자 총 357명 중 112명에 달했다.

◆억단위 수술비에 약값만 300만원씩 들어도 판정은 3·4등급

2014년 3월 환경부는 조사종료 및 결과 발표를 통해 2년 7개월만에 피해자 지원절차 방법을 마련한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와 폐 손상 인과관계를 △1단계 확실 △2단계 가능성 높음 △3단계 가능성 낮음 △4단계 가능성 없음 등으로 구분해 조사 대상 361명 중 1·2단계에 해당하는 168명만이 피해자 인정을 받았다.

피해 지원금 역시 가해기업들의 구상권을 전제 삼아 장례비는 일괄 233만원으로 책정하고, 약제비를 포함한 진료비와 호흡보조기 임대표, 선택진료비 상급 병실 차액 등의 일부 급여 항목 영수증을 제출하면 지급한다는 현실성 없는 대책을 내놓는다.

당시 피해자들은 간병비, 입원으로 인한 아이돌보는 비용, '에크모' 사용과정 시 치아파손, 충치 등 치아보존비 인정과 폐손상 이외 피해 등이 빠졌다고 강하게 맞섰다. 아울러 기존 만성 및 폐질환이 있는 환자의 경우 대부분 '가능성 낮음'으로 판정된 것에 대한 부실을 주장하지만 묵살된다.

1년 뒤인 2015년 2월2일 서울중앙지방 법원은 피해자들이 국가 상대 배상 청구 후 첫 판결로 '국가 책임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기습기살균제는 의약품이나 의약외품이 아닌 일반 공산품인 탓에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보상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피해보상을 원하면 피해자들이 업체에 개별소송을 하라는 것.

피해자들은 2012년 PHMG·PHG 사업업체 10곳에 2014년 9월 CMIT·MIT 사용업체인 애경, SK케미칼, 이마트, GS리테일, 퓨엔코 등 5곳을 추가해 총 15곳에 형사고소를 한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현행법상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소멸시효는 사건발생부터 10년, 혹은 가해를 안 날로부터 3년이기 때문에 현행법상 검찰이 기소할 수 있는 공소시표 7년이 중요하다"며 조사가 늦어지면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시효가 지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피해자들은 2012년 8월 생산, 유통, 판매업체 10곳을 과실치사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지만 보건당국의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며 2013년 3월까지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2016년 1월 서울중앙지검에 '가습기 피해사건 특별수사팀'이 설치된 후 3개월여동안 제조판매사에 대한 압수수색과 200여명의 피해자에 대한 확인조사가 이뤄진 후 4월18일부터 제조 판매사들에 대한 소환조사가 진행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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