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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살균제③] '국민건강 외면한 정부' 발톱 빠진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국가가 유해화학물질을 제대로 관리 못한 탓" 가습기살균제 신종재앙

전지현·하영인 기자 | cjh@newsprime.co.kr | 2016.05.03 15:42:01

[프라임경제] 한경보건시민세터가 지난 1월12일부터 13일까지 19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5.9%가 '국가 책임소재가 있다'고 답했다.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한국에만 제조, 판매됐던 '가습기살균제'. 언젠가부터 '세균 공포'에 시달리던 대한민국 소비자들은 1994년 SK케미칼(전 유공)을 통해 가습기 살균제 제품이 탄생하자 반색하며 소비에 나섰다.

시장규모 10억원에 달하는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인기를 끌자 제조, 판매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가습기살균제 관련 환경보건시민센터 여론조사 결과. ⓒ 환경보건시민센터

위해성이 인증된 이 원료가 국내에 제조품으로 완성될 때까지 미연에 국민건강을 지켜주지 못한 대한민국 정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과 관련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신종재앙에 대해 "국가가 유해화학물질을 제대로 관리 못한 탓"이라며 근본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유독물질 규제책임이 있는 환경부 △질병 피해 관리 책임이 있는 보건복지부 △가습기 살균제에 국가 인증마크를 부여한 산업통상자원부(전 지식경제부)가 지탄의 대상으로 꼽힌다.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원재료만 검사한 환경부, 용도변경은 '나 몰라'

가습기살균제가 문제된 것은 국내에 안정성 여부에 관련된 기준 자체가 전무했던데 기인했다. 국내 화학품들은 2015년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1991년부터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을 기준으로 들었다.

지난 2013년 5월7일 윤성규 환경부장관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중 의원들의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과 관련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뉴스1

화학물질 관리 및 화학사고 대응에 대한 한계점이 노출되고 국민들의 불안감이 가중된다는 것을 근거 삼아 지난 2015년 1월부터 '화평법'으로 개정·시행됐다. 하지만 그때까지 정부는 인체에 직접 흡입하는 가습기 살균제를 공산품으로 지정해 업체가 기술표준원에 등록만 하면 생산 가능하도록 해왔다.

1996년 SK케미칼(당시 유공)이 PHMG와 PGH를 수입할 당시 적용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의해 작성되는 물질 안전보건 자료(MSDS) 기준 역시 양이온성 고분자 물질이 규제가 아닌 면제성분이다. 용도변경 시 '위해성 재평가 조항'이 없고 '유해성 평가'만 요구됐기 때문에 흡입용도로 변경해도 재심사 규제가 될 법적 근거가 없었다.

SK케미칼은 당시 이를 함유한 원료를 카페트 첨가제 용도로 만들어 정부에 유해성 심사 신청서를 제출한 뒤 용도를 변경,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에 공급했다.

그러나 정부는 당시 용도 변경 시 유해성 심사규제가 없다는 이유로 이 원료에 대한 심사를 거치지 않았다. 이때 PHMG·PGH는 '유독물'이 아닌 '물질'로 국립환경연구원에 등록돼 있었다.

환경부 국립과학원은 지난 4월 KBS 가습기살균제 PHMG 유독물 미지정 관련 보도에 "PHMG는 분말형태의 고분자화학불로 반응성 및 휘발성이 낮은 물질이며 유해성 심사 신청 시 용도가 카페트를 제조할 때 첨가하는 항균제였기 때문에 카펫트 제품을 사용하는 일반 소비자에게는 흡입될 우려가 낮아 흡입독성실험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SK케미칼은 SKYBIO1125 구성원료인 PHMG를 화장품, 샴푸, 물티슈, 기타 생활화학가정용품 등에서 방부 및 살균기능으로 사용하는 원료로도 보고했다. 경구독성은 유발 양에 비해 극미량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세균과 물때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안전성 기준이 없었을 뿐 아니라 인체영향에 대한 제품 검사 의무도 없었다.

옥시 역시 "SKYBIO1125는 사용 시 물에 희석해 사용하기 때문에 주성분의 노출농도가 극히 낮아져 안전성 문제가 없다"며 "흡입독성에 대해 관련 자료가 없을 뿐 아니라 제출 의무도 없었다"는 것을 줄곧 강조했다.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불거진 2011년 이후 관련 전문가들은 화평법 제정에 대해 논의했으나 계류 후 2015년 1월 시행된다. 그러나 화평법 도입은 여러 화학물질을 필요로 하는 전자,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전자산업의 국내 경제에 타격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이유가 논란이 돼 완화된다.

당시 이를 제기한 전경련 단체에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를 두 번째로 많이 낸 애경도 포함됐었다.

◆세계 어디도 없는 가습기살균제, 산자부는 국가통합인증마크 부여?

가습기살균제는 2011년 12월 들어서야 뒤늦게 의약외품으로 지정됐다. 감염예방을 위한 살균제가 아닌 청소용도이어서 가습기 살균제는 이전까지 공산품으로 분류, 사전에 별도 허가나 승인 없이 자유롭게 제조, 판매가 가능했다.

이런 까닭에 2003년 발간된 호주보고서 흡입 독성이 수록됐음에도 한국 유해성 심사에서는 흡입독성항목이 빠졌었다. 정부의 허술한 생활화학용품 관리가 가습기살균제 발단으로 지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SK케미칼 원료사용 가습기살균제 피해 현황. ⓒ 환경보건시민센터

문제가 된 PHMG·PMG 성분은 1996년에 SK케미칼이 '카페트 항균용'으로 승인됐다. 이는 '이게 어떻게 가습기 용도로 바뀌었으며, 그 과정에서 규제를 보였는가' '한국사회가 지나치게 공급자 위주로 가면서 소비자를 소홀히 해왔다' 등의 끊임없는 지적에 대한 근거이기도 하다.

생활용품제조업체 한 관계자는 "생활화학용품을 포함한 공산품은 품질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에 따라 안전이 관리됐는데 허점이 많아 철저히 관리되지 못했다"고 제언했다.

이어 "안전인증은 자율안전확인제도를 통해 하고 있으나 공산품 제조업자 등이 안전기준에 적합하다고 '스스로 확인'해 안전인증기관에 신고하는 수준"이라고 술회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산업통상자원부(당시 산업자원부) 세정제와 살균제 차이도 모르고 허가를 했다"며 "가습기살균제는 공산품으로 이에 대한 품질, 광고는 산업부의 기술표준원에서 관리하는데 기술표준원은 처음에 '세척제'라는 용도로 허용했다"고 지적했다.

또 "세척제로 허가받은 가습기살균제가 살균이라는 이름을 달고 팔려나갔는데도 정부가 이를 용인하고 산업부는 국가통합 인증 마크인 'KC마크'까지 붙여준 것이 잘못"이라고 날을 세웠다.

여기 더해 "가습기 살균제 개발 당시의 과학기술로는 살균제의 흡입 독성을 정확하게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아울러 "유럽 등지에서는 PHMG·PGH 손이나 수술 도구에 묻은 해로운 세균을 죽이는 목적으로 써야 할 살균제를 호흡기를 통해 몸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초음파 가습기에 사용한다는 발상부터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을 풀었다.

더불어 "제품의 용도에 따라 생산과 유통허가, 관리 방식이 없어 새로운 용도의 공산품 관리에도 문제 발생 가능성이 높다"고 짚었다.

◆사건 발생 3년 뒤 첫 공식 피해 조사 발표…복지부는 뒷짐만

보건복지부 소속 질병관리본부에 대한 질타는 사건의 역사에 빠져들수록 그 비난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질병관리본부는 사건 발생 3년이 지난 2014년에서야 첫 공식 피해 조사, 판정과 구제를 실시해 피해자들의 분노를 샀다. 2006년 의료계가 당시 현황을 보고했을 때 적극적인 조치에 나섰다면 피해가 축소될 수 있었음에도 2011년 4월, 정식 역학조사를 벌일 때까지 늦장 대응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현황 조사 기간 및 담당 기관. ⓒ 환경보건시민센터

사건 발생 후 역학 조사 착수까지 3년, 1차 조사 발표까지 1년, 최종 조사종료 및 결과 발표까지 2년, 모두 합하면 총 6년이다. 이마저도 기존에 확인된 급성 폐질환 외의 건강피해는 연구가 미흡하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이 지원이 거부됐다.

'환경보건법' 제20조 및 시행령 제13조 2에 근거하면 정부는 환경유해인자로 인한 국민의 건강피해를 예방·관리하기 위한 국가와 지자체의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맡는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2012년 8월 생산, 유통, 판매업체 10명에게 과실치사 혐의를 물어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지만 질병관리본부의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은 2013년 3월까지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

환경부의 정부 지원안 역시 피해 기업의 구상에 한정, 최소한도로 지원하고 있다. 더군다나 피해자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간병비는 법원의 신체감정을 거쳐야 인정여부와 인정금액이 결정되기 때문에 구상가능성이 불확실하다며 지원을 거부한 상태다.

◆생활제품으로 인한 역대급 치사사건 '국가책임론' 대두

문성제 선문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와 국가의 위험 관리 책임'이라는 논문(2014년 4월)을 통해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생활제품으로 인한 대규모 치사 사건으로 화학물질오남용으로 인한 바이오사이드 피해 사례"라고 기술했다.

국민의 생명․신체 건강상의 위해 발생 위험성이 있고 국가가 위험회피를 위한 권한 행사를 할 수 있었음에도 조치를 취하지 않아 책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첨언도 있었다.

문 교수는 논문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가습기살균제의 흡입독성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반상품으로 분류·관리했다는 것, 가습기살균제피해에 대한 역학조사와 독성평가에 대한 자료조차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을 거론했다. 

유통된 가습기살균제에 대한 실태 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판매와 사용만을 자제하라는 수준의 대책만을 발표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또 문 교수는 보건복지부의 경우 가습기살균제가 폐질환으로 인한 사망과 간질성 폐렴 등 심각한 폐해의 원인이라는 점을 예지할 수 있었지만 피해확대 방지를 위한 사전적 조치를 강구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었다.

피해자 구제도 피해자와 업체 간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만을 주장해 가습기살균제를 제조, 판매한 기업들이 피해자들의 소송에 불응한다고 강조했다.

즉, 국가는 유해화학물질이 국민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 예방시책을 수립·시행해야 하며 유해화학물질의 관리를 위해 안전에 필요한 행정 및 재정적인 지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유해화학물질의 관리주체인 국가도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국가가 초기대응이 미흡해 손해가 확대됐다는 점'을 언급하며 "국가의 유해화학물질을 포함한 제품 제조 및 판매 등의 허가·승인 권한은 제품을 사용하는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큰 소리를 냈다.

여기 그치지 않고 "기업들의 제조·판매에 대한 행정감독상 규제로 안전성확보의무를 위반했기 때문에 국가가 유해화학물질 등으로 발생한 피해에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견해를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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