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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겉핥은 '120서비스재단' 공청회, 서울시 '우선 설립하고 보자?'

"향후 노조와 상의할 것" 사후약방문식 행정에 의원들 반발

이준영 기자 | ljy02@newsprime.co.kr | 2016.09.08 15:52:48

[프라임경제] "120다산콜센터입니다. 상담사 연결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전화번호 안내만 가능합니다. 빠른 시간 내에 정상화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시민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지난 5일 '120서비스재단 설립 관련 공청회'가 열리던 오전 내내 120다산 콜센터에 전화하면 들을 수 있던 안내 멘트다. 이날 120다산콜센터 오전 근무인력 250여명 중 오전 공청회 참여를 이유로 170명의 상담사 인력이 반차를 사용하면서 120은 오전 내내 업무가 마비돼 시민 불편이 컸다.

5일 오전 다산콜센터 상담사 170여명이 공청회가 열리는 서울시의회 별관 앞에 나와있다. = 이준영 기자

상담사들이 고객인 서울시민에게 이런 불편을 주면서까지 얻고자 하는 것은 재단설립이다. 재단이 설립된다 해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고 재단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뼈아픈 성찰이 필요한데 지금은 재단설립부터 관철시키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서울특별시 120서비스재단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 관련 재단설립 타당성 및 조례안 검토를 위한 공청회가 지난 5일 서울시의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서울시의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문광위) 소속 위원 및 위탁업체 대표, 120다산콜센터 노조위원장이 참석한 이날 공청회는 지난 8월 1일 열린 토론회 형식의 공청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서울시의회 문광위 소속 위원들은 상담사들의 실상과 재단설립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한 날선 질문으로 공청회 내내 참석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반해 재단설립을 주도하는 서울시는 공청회 내내 위원들의 질문에 재단 설립 이후 노사 간 논의를 통해 해결한다는 미봉책만 제시해 위원들의 공분을 샀다.

이런 가운데 심명숙 다산콜센터지부 사무국장은 공청회 초반 다산콜센터에서 근무하면서 화장실도 못가고, 각종 불의를 참아야만 했다며 눈물을 보여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으나 이 모든 것이 4~5년 전의 일이란 것이 밝혀져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위원들은 120서비스재단 설립의 타당성에 대해 △원콜 시스템 구현을 위한 구체적 대안이 있는가 △상담사들의 처우 및 지위는 이전보다 나아지는가 △IT기술의 발달로 120의 수요가 줄어드는데 재단 설립 이후 이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는가, 세 가지 쟁점으로 설전을 벌였다. 그러나 재단 설립 이후 노사 간 협의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말만 되풀이됐다.

이에 대해 박성숙 부위원장은 "아직 재단 설립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서울시는 이미 지난달 말 120서비스재단 명칭공모전을 마친 상태"라며 "이미 재단설립을 기정사실화하고 '끼워 맞추기식' 뻔한 공청회는 왜 하는 것인가, 이는 위원들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날을 세웠다.

'닭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한 이날 공청회 분위기는 서울시 용역결과만 앞섰다. 120다산콜센터 담당자들의 안일한 준비, 재단설립 10년 후의 모습에 대해서는 아무도 담보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의견이 팽배했다. 일부에서는 '짜고 치는' 공청회였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번 조례안이 통과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방청객으로 참석한 A씨(55·남)는 "9일 조례안이 시의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 이는 그렇게 많지 않다"며 "오늘 공청회 분위기와 투표할 때의 분위기는 분명 다를 것이고 박원순 시장의 공약이었기 때문에 9일까지도 지켜볼 필요가 없다"고 결과를 속단했다.

정규직 VS 비정규직 기준 논란, 뭣이 중한가?

다산콜센터가 현재 아웃소싱으로 운영 중인데 문제가 무엇이고 꼭 재단이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이번 공청회의 핵심이었다. 공청회에 참석한 대부분의 의원들은 상담사들의 고용안정에 대해서는 대체로 꼭 필요하다는 의견에 무게를 뒀다.

상담사는 비정규직인가 정규직인가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재단이 된다면 우려되는 부분과 보완되는 부분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의응답도 이어졌다.

위탁업체 대표로 나선 이상범 메타넷MCC 이사는 "메타넷 소속으로 4대 보험과 각종 처우를 보장하고 메타넷 소속으로 근무하고 있어서 상담원들은 메타넷의 정규직"이라고 답변했다.

여기 맞서 김애란 전국운수노조 사무처장은 "120다산콜센터의 콜센터업무는 서울시의 업무로 이 업무를 아웃소싱업체에 업무위탁했기 때문에 기준은 서울시로 봐야 한다"며 "지금의 상담사는 서울시가 해야 할 업무에 고용된 간접고용 노동자로 봐야 하고 아웃소싱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채용했든 비정규직으로 채용했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을 달리했다.

업무주체의 기준을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비정규직이 되기도 하고 정규직이 되기도 한다. 아웃소싱기업 소속 근로자는 아웃소싱입장에서 보면 정규직이나 사용기업 입장에서 보면 직접 고용이 아닌 아웃소싱, 즉 간접고용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재단소속이 된다 해도 서울시 공무원이 아닌 이상 재단도 서울시가 출현한 하나의 산하 단체로 본다면 이들 또한 비정규직이라는 게 맞다는 의견도 있었다.

한편 김문수 위원은 재단설립 필요성에 대해 "다산콜센터는 국민의 각종 알권리를 채워주는 좋은 곳이지만 처우는 매우 열악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민간위탁, 청년실업, 노인빈공 등 각종 사회 현안 등이 있다. 또 가계부채도 증가 중이며 학벌위주 사회와 스펙위주 사회 현상 등 사회 양극화 빈부격차 해소가 시급하다. 이런 측면에서 다산콜센터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며 "서울시에서 모범적으로 민간위탁, 소득하위계측 소득향상, 직업안정 등의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문상모 의원은 "고용안정, 정규직화는 시대흐름에 반드시 이뤄져야 하는 문제로 역사적 통찰력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며 재단을 설립했을 때 우려스럽거나 보완할 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해 이상범 메타넷MCC 이사에게 질의했다.

이에 이 이사는 "향후 AI콜이 도입되고 정보를 접하는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콜이 줄어들 것이다. 질적으로 성장하겠지만 단순 문의 콜이 줄어드는 것은 시대 흐름이다. 이런 것을 감안하고 재단을 운영했을 때 한 번 더 짚어보고, 과연 지금의 선택이 10년 뒤에도 적절했느냐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아울러 "콜센터가 전문화된다는 것은 수탁사에서 위탁사에 얼마의 권한을 위임하느냐의 문제다. 예로 건보공단은 개인의 모든 신상정보 등 빅데이터를 다루는 곳이다. 이곳의 상담사들은 개인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권한이 있어 고객에게 질 높은 상담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는 보안에만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고 토로하며 권한 위임을 강조했다.

현행체제에서 메타넷MCC의 정규직인데 재단설립을 요구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냐는 문상모 위원의 질문에 심명숙 사무국장은 "다산콜센터에서 7년을 근무했지만 메타넷MCC의 정규직은 지난 1년 반 동안이었다"며 "재단설립을 통해 비정규직의 불안감이 해소되길 기대한다"고 응대했다.

재단 설립되면 이후 계획 논의? 앞뒤 바뀐 전시행정 극치

이번 공청회에서 문광위 위원들이 가장 분개했던 것은 근로자들의 고용승계, 급여, 지위, 향후 사업계획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서울시에서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정협 시민소통기획관은 설립 이후 노사 간 협의를 통해 논의하겠다는 말과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답변만 녹음기처럼 반복했다. 특히 이미 120서비스재단의 명칭공모까지 끝낸 상황이라 '답정너(답은 정해졌으니 너는 대답만 해)'식의 공청회가 이어졌다.

담당 공무원은 서울시 산하 비정규 인원수를 묻는 질문에 콜센터 인력 수만을 답변하는 동문서답을 늘어놨고, 전체 내용은 알 수 없다는 준비되지 않는 자세에 의원들을 기만하는 것이 아니냐는 고성도 오갔다.

재단 설립 이후 근로자의 고용승계도 아직 명확히 정해진 것이 없고, 재단소속 정규직이 되면 호봉제로 도입이 될 텐데 이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도 없다. 무엇보다 연구용역에서 제안했던 내용 중 재단설립 이후 업무영역을 확대해 상담내용 분석, 타 기관 콜센터 운영 등 수익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이에 대한 논란도 뒤따랐다.

다산콜센터 입장은 기존 상담사들의 업무강도를 줄이고, 효율화를 위해 시립기관 9곳의 착신을 금지시켰는데 이와 상반되는 내용을 재단 설립 이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에 서정협 시민소통기획관은 '수익사업을 무조건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답변으로 추궁을 회피했다.

이에 불만은 가진 김미경 의원은 "할 수 있다는 것은 해도 된다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상담사들의 노동 강도는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반문했다.

김 의원은 원콜에 대해서도 "원콜을 위한 전문 콜센터를 운영하려면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던가, 기존 인력의 고용승계와 분야별 전문가 교육 등 구체적 논의가 있는가? 한 예로 재택근무에 대한 고민도 해야하지 않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여기에 서 기획관은 "향후 논의할 것이다. 콜센터 이직률이 40%가 되는 상황에서 전문가 육성이 어려워 재단 설립으로 이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두루뭉술한 답변을 했다.

서 기획관의 답변에 김 위원은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공청회에서 판단이 가능한데 전혀 구체적 내용이 없다. 이 자리는 재단 설립 유무만을 논하는 자리가 아니라 재단 전반에 걸쳐 논의하는 자리"라고 꼬집었다.

서 기획관은 "연구 용역 이후 여러 문제점을 보완 중이다. 제기된 문제점은 향후 전문가들을 통해 수정할 것"이라는 단답으로 일관했다.

모든 위원들이 질의를 마치자 이성희 문광위 위원장은 "2014년 연구용역 이후 2년간 논의된 것이 하나도 없다. 연구용역 얘기만 하는데 이는 결국 집행부 의견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연구용역 만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각종 현안에 대한 구체적 준비가 아쉽다"고 제언했다.

여기 보태 "한 예로 경전철도 연구용역을 했을 때 13만명의 이용고객을 예상했지만 지금은 이용고객이 5만명도 안된다. 이런 사례가 또 나와서는 안된다"고 일침하며 공청회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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