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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 워킹맘에게 가장 잔인한 나라

법적으로 육아휴직 보장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는 미국

이수영 기자 | lsy@newsprime.co.kr | 2017.01.10 14:02:47













































[프라임경제] #1. 쌍둥이를 낳고 7주 동안 '무급휴가'만 받았어요. 분만과정에서 엄청난 하혈을 했고 회음부 상처가 빨리 아물지 않는 바람에 앉았다 일어나는 것, 걷는 게 정말 괴로웠죠. 그런데 제 상사는 "제일 바쁠 때 휴가를 쓰는 것은 사칙에 어긋난다"며 절 비난했습니다.

#2. 제 직업은 교도관입니다.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고 8주 만에 복직했어요. 그런데 같이 일하는 남자직원이 제 휴가에 대해 엄청난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그는 제가 아이에게 줄 젖을 짜는 동안 일부러 사무실 문을 열고 서있었어요. 수감자들이 제 모습을 볼 수 있게 말이죠.

흔한 '헬조선 워킹맘'의 하소연과 닮았지만 놀랍게도 이는 우리보다 선진국인 미국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컨설턴트이자 작가인 제시카 쇼톨이 2015년 10월 TED 강연에서 소개한 미국 워킹맘들의 실제 사연들은 충격적이다.

◆워킹맘에게 유독 잔인한 선진국

세계 경제를 주도하며 민주주의와 아동인권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사실 미국은 육아휴직에 대해서만큼은 후진국으로 분류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법적으로 유급 육아휴직을 인정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작년 9월 퓨리서치센터가 41개국을 대상으로 유급 육아휴직 기간이 긴 나라 순으로 줄을 세웠다. 1위는 에스토니아(87주·약 22개월)가 차지했고 △불가리아 △헝가리 △일본 △리투아니아 등이 60주(약 15개월) 이상을 법으로 보장했다. 한국도 48주로 18위에 올랐다.

반면 유급 육아휴직 보장기간이 0인 나라는 미국이 유일했고 당연히 최하위에 처졌다. 물론 미국에도 FMLA(Family and Medical Leave Act)라는 무급 출산휴가 제도가 있지만 까다로운 기준 탓에 수혜를 받는 비중은 절반 정도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중요하게 여기는 탓에 미국 사회는 여성의 출산과 복직을 개인의 영역으로 치부하는 인식이 강하다. 이를 반영하듯 구글에서 '워킹맘'을 검색하면 비슷한 이미지들이 상단을 차지하는데 깔끔한 차림새의 엄마와 얌전히 안겨 있거나 잠든 아기가 함께 등장하는 화사한 모습이 대부분이다.

작년 10월 제시카 쇼톨은 TED 연단에서 이를 정면으로 꼬집었다. 그는 "매년 수많은 여성들이 출산 직후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일터로 돌려보내진다"며 "대부분의 일하는 엄마들에게 (이런 화사한 이미지는)불가능하고 비현실적인 상황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사회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은 '진짜' 현실이 너무 충격적이기 때문"이며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미국 사회는 꾸며진 이미지를 사실처럼 믿게 됐다"고 비판했다.

◆시스템의 보호 필요한 윤리·경제적 이유

출산과 육아가 사회 시스템으로 보호받아야 할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분명하다. 아이를 낳는 것은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을 남기며 태어난 아기는 전적으로 부모의 영향력 아래 놓인다. 산모에게 충분한 회복기간을 보장하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 워킹맘 중 23%는 출산 후 2주 안에 복직을 '선택'하고 상당수는 경제적 곤궁함에 떠밀린 '타의적 선택'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 노동부 통계를 보면 전체 가정의 약 40%는 여성이 실질적 가장이며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47%에 이른다. 즉 국가적으로 여성의 노동은 선택이 아니라 경제의 중요한 축이며 태어난, 혹은 태어날 아기들은 세금을 내고 병역의무를 수행할 중요한 국가자산이다.

그렇지만 시장경제가 최고의 가치인 미국사회는 민간기업에 모든 것을 일임하는 것으로 책임을 회피한 셈이다. 미국에서 유급 육아휴직을 받는 비율은 전체 산모의 12%에 불과하다. 이들은 대부분 높은 교육수준을 가진 고소득 전문직 여성이다. 이들은 체계적인 복지 시스템을 갖춘 민간기업에 소속돼 있다.

문제는 정작 도움이 필요한 나머지 88%의 중간, 저소득 여성들이 출산과 복직에 따른 모든 비용을 개인의 책임으로 떠안는다는 점이다.

다행스럽게도 2000년대 이후 캘리포니아주를 중심으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2002년 캘리포니아주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유급 가족휴가를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아기를 낳은 부모는 부부가 번갈아 기존 급여의 55%를 받으며 6주 동안 쉴 수 있다.

법 시행 5년 만인 2007년 뉴욕 시티대 루스 밀크먼(Ruth Milkman) 교수의 연구결과 해당 지역 기업의 90% 이상이 유급 육아휴직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 법안 통과 당시 경제계의 비관론은 크게 수그러들었다. 직원들의 생산성과 사기가 높아졌다는 점에서 기업들도 유급 육아휴직의 필요성에 공감한 것이다.

이 같은 인식 변화에 힘입어 캘리포니아주는 근로자의 일자리 보호를 강화하는 한편 2018년부터 휴직급여를 현재 55%에서 60%까지 늘리고 저소득층은 70%까지 보장할 계획이다.

결국 워킹맘에게 잔인했던 미국사회의 반성은 저출산 부담이 커진 탓이다. 지금의 인구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출산률은 2.1명으로 추산된다. 미국은 2.0명 수준을 꾸준히 유지해왔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급감해 최근 1.86명 수준에 멈춰있다.

그런데 이를 국내 상황에 투영해보면 뜻밖의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일본과 함께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저출산국가다. 2014년 대한민국 출산률은 1.205명으로 이민 등 외부 수혈을 감안해 현재 인구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 1.5명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아예 관련법이 없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3개월의 출산전후 휴가와 12개월의 육아휴직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다양한 출산장려 정책이 있음에도 말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1~2015년까지 민간기업 근로자 중 육아휴직 사용비율은 34.5%, 즉 10명 중 3명꼴에 머물러 있다. 특히 비정규직의 경우 1.9%만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다.

이를 여성 근로자의 선택으로 보기도 어렵다. 같은 기간 모성보호 위반으로 적발된 건수는 2537건. 그러나 과태료 이상 처분을 받은 것은 2%에도 못 미치는 46건뿐이다. 나머지는 계도조치 정도로 유야무야 넘어갔으며 이유는 단순했다. 단속 인력이 부족하고 근로자들이 회사와 맞서는 것을 꺼린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하나의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법이 아예 없는 것과 법은 있으나 지키지 않고 무시하는 것. 무엇이 나라에 더 위험하고 부끄러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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