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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벤토탐방] 일본 도시락의 원점 '에키벤'

"벤토를 알면 문화가 보이고 문화를 알면 일본이 보인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 bsjang56@hanmail.net | 2017.03.02 18:03:43

[프라임경제] 에키벤(駅弁)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진귀한 '에키벤대회' 풍경을 소개한다.

매해 1월 설 연휴 여운이 사그라질 무렵, 토쿄 신쥬쿠(新宿)에 에키벤 300여종이 집결한다. 케이오(京王)백화점이 주최하는 '전국 에키벤대회'가 열리는 것이다. 지난 1966년에 시작된 이 대회에는 전국에서 한 이름 한다는 에키벤이 총출동한다. 

에키벤야마츠리 센다이역점. ⓒ 에키벤야마츠리 홈페이지

본고장까지 가지 않으면 구할 수 없는 명물 벤토가 한곳에 모이는 자리이니만큼 식도락가라면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다. 당연히 대회 첫날부터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한 경제지는 '에키벤은 유통기간이 짧아 사재기가 불가능하다. 팜프렛을 펼쳐 놓은 후 고민을 좀 해야 한다. 먹을 벤토를 미리 정하고 그것을 못 샀을 때 대안도 생각해 두도록 하자. 기간은 단 13일. 허둥거리다 놓쳤다는 등 후회하지 않으려면 면밀한 계획이 필요하다'며 조언인지 홍보인지 구별 안되는 기사를 싣고 있다. 

대회장에는 전국의 철도노선별로 부스가 만들어지고 그 앞에는 연일 행렬이 늘어선다. 메인이벤트는 고객이 보는 앞에서 즉석 벤토를 만들어 제공하는 퍼포먼스. 일본어로 '지츠엔 한바이(実演販売)'라고 한다. 

이벤트의 흥미를 더하기 위해 '대결시리즈'라는 장치가 세팅된다. 기존 인기 벤토에 같은 계열의 신상품이 도전하는 형식이다. 올해는 쇠고기를 주제로 하는 기획이었다. 승패는 판매량으로 결정되는데, 그렇다고 모든 벤토가 실연으로 판매되는 것은 아니다. 

현지에서 만들어 매일 아침 행사장에 도착하는 '유소(輸送)' 에키벤이 사실은 더 다양하고 실속 있다. 하지만 어느 것이나 한정된 수량이므로 적시에 줄을 잘 골라야 차례가 온다.

지난해 열린 51회 대회 때는 연30만개 판매에 6억1300만엔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한편 센다이·오사카·나고야·쿄토 같은 대도시에서도 유사한 행사가 있지만, 토쿄 케이오가 원조라는 데 이견이 없다. 

에키벤은 특정 벤토의 이름이 아니다. JR(일본철도)역 구내와 열차 안에서 판매하는 모든 역(驛)벤토를 가리킨다. 민간이 운영하는 시테츠(私鉄)역 벤토는 이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지역·계절별로 다양성이 풍부해 ​에키벤 홈페이지에 의하면 그 종류가 2000개 이상이다. 

에키벤은 공식적으로 1885년 7월16일 우츠노미야(宇都宮)역에 처음 나타난다. 줄잡아 130년이 넘는 역사다. 일본 벤토의 원점이자 미래의 이정표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JR이 국가기관이던 시절, 에키벤은 흰 밥이 들어간 '보통'과 기타 밥 계열의 '특수'로 규정됐다. 밥 대신 '소바(메일국수)'나 샌드위치·햄버거 같은 빵 종류가 들어가면 에키벤이 아니라는 이유로 역구내에 진입할 수 없었다. 

1987년 JR이 민영화되자 무풍지대를 달리던 에키벤도 긴 세월 역구내 진출을 노리던 일반 벤토와 맞닥트린다. 경쟁에서 밀리고 있던 2000년대 초, 에키벤은 마침내 원가를 낮추기 위해 일반 벤토처럼 중국산 냉동식재를 사용한다. 

하지만 정체성 시비가 끊이지 않고 2007년 광우병 파동까지 겹치자 미련 없이 이전 모습으로 회귀했다. 이 과정에서 생석회를 이용해 내용물을 데워주는 가열방식 에키벤이라는 신제품이 등장하기도 한다.

에키벤이 전문점이나 편의점 벤토보다 비싼 이유는 지역 특산물을 식재료로 써서다. 또 당일 판매 후 남는 재고를 전량 폐기하는 것도 원가산정 요인이다. 

에키벤은 현재 '일본철도구내영업중앙회'에 소속된 97개 회원사가 제조·판매하고 있다. 이들은 역사와 전통을 강조라도 하듯 일장기 마크가 찍힌 전용포장지를 사용한다. 민영화 후 '역구내'라는 전가의 보도가 빛을 잃었지만, 에키벤은 아직도 일본 벤토의 맏형 같은 존재로 남아있다. 

에키벤은 그 지역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물리적 한계를 새로운 전설을 만드는 기회로 극복하고 있다. 본 칼럼을 통해 이미 소개한 '카마메시' '시우마이'가 지역을 벗어나 전국적 명성을 누리고 있고 앞으로 소개할 '이카메시'나 '아나고메시' 등도 에키벤이 낳은 스타 상품들이다. 

일본여행 중 에키벤을 고를 때는 '에키벤야마츠리'를 찾으면 편리하다. 이곳은 JR자회사가 직영하는 전시판매장으로 주변지역에서 망라된 유명 벤토를 비교하며 고를 수 있다. 

일부 품목은 에키벤대회 행사장처럼 즉석에서 만들어 주기도 한다. 

다만 신칸센이나 장거리 열차가 운행되는 대형 역에만 있으니 사전에 장소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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