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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벤토탐방] 에키벤의 스타 '이카메시' 벤토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 bsjang56@hanmail.net | 2017.03.07 10:59:55

[프라임경제] '이카메시' 벤토의 이카(いか)는 오징어, 메시(飯)는 밥을 뜻한다. 우리나라 오징어순대를 연상시키는 벤토로 70년 넘는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오징어 몸통 속에 밥과 함께 버섯이나 생강 같은 야채, 그리고 손질할 때 떼어놓은 다리를 버무린다. 밥은 주로 찹쌀을 사용하나 지역에 따라 멥쌀을 섞기도 한다. 오징어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면 한 끼 별미로 손색없는 음식이다. 

'이카메시' 원조 아베상점의 포장지와 내용물. ⓒ 에키벤 홈페이지

두 개들이 한 팩이 본고장에서는 500~550엔, 여타지역은 650엔으로 에키벤 중에서는 저렴한 부류에 속한다.

이카메시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홋카이도(北海道)의 '모리마치(森町)'라는 한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탄생했다. 당시 소련과 북방영토를 놓고 대치 중이던 일본은 젊은 병사들을 대거 북쪽으로 보낸다. 

모리역은 전선으로 가는 열차를 바꿔 타기 위해 일시 하차하는 환승역이었다. 한적한 시골 역에 많은 병사가 몰려들자 에키벤 업체는 요즘말로 '멘붕'에 빠진다. 당시는 극심한 식량난으로 쌀 배급제가 실시돼 변변한 마쿠노우치 벤토 한 개 제대로 만들기 어려웠다. 

이때 눈에 띈 것이 주변에 넘쳐나는 '스루메이카'라는 작은 오징어다. 이 오징어는 크기가 작고 볼품없어 식용으로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천덕꾸러기였다. 

하지만 내장을 제거한 몸통에 조미된 쌀을 넣어 쪄내자 그럴듯한 퓨전요리가 탄생한다. 이 독창적인 음식을 개발한 것은 모리역에서 에키벤을 만들어 팔던 '아베(阿部)상점(舊 아베벤토점)'이라는 곳이었다. 

궁한 처지에 이르면 도리어 길이 열린다는 '궁즉통(窮則通)'의 묘수를 찾아낸 것이다. 단백질 풍부한 오징어에 찹쌀이 들어가니 포만감이 오래가고 영양 밸런스도 괜찮았다. 처음 맛보는 기발한 벤토에 병사들 호평이 이어졌고 이카메시는 곧 홋카이도 대표 음식이 된다.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한 것이 강점이었다. 한편으로는 절약이 미덕이었던 시대의 요구와도 잘 맞아 떨어졌다. 역사에 남을 또 하나의 유명 벤토가 탄생한 것이다. 이카메시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홋카이도 명물로 여행객과 지역민에게 사랑받으며 존속한다. 

이 벤토가 본격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는 것은 지난 1966년 케이오 백화점이 주최한 '전국에키벤 대회'에서 판매 1위를 기록하면서다. 1971년부터는 놀랍게도 30년 연속 1위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운다. 

이카메시가 벤토업계 스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자 홋카이도와 그 주변지역에 많은 제조업자가 나타났다. 전국 각지 백화점과 슈퍼마켓에 이카메시 코너가 생기고 통신판매도 활발해졌다. 지난해에는 유통기한이 3개월이나 보장되는 레토르트 식품으로까지 개발됐다.

그러나 이카메시의 원조 아베상점은 통신판매를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대신 전국을 순회하며 현장에서 만들고 판매하는 이벤트 방식을 택한다. 초창기 품질을 유지하고 원조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일본에는 백화점이나 전문행사장에서 상품을 제조하거나 전시하고 판매하는 행사가 많은데 이것을 '사이지(催事)'라 한다. 이달 만해도 본고장 홋카이도를 시작으로 토쿄·요코하마·나고야, 그리고 큐슈의 '하카타(博多)'까지 전 일본을 망라하는 사이지 스케줄이 빼곡히 들어찼다. 

1903년 창업 이래 현장을 고집하는 장인들의 프로정신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아베상점은 모리마치라는 인구 1만6000명 정도의 작은 어촌 마을에 본사를 두고 있다.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모리역도 하루 승차인원이 270여명에 불과하다.

이러한 역을 거점으로 100년 이상 터를 일구며 전국적 브랜드를 만든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어쩌면 많은 사람과 정보가 교차하는 역을 배경으로 삼았기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현재 이 회사 상설매장은 모리역사 구내와 역 앞 두 곳에 있다. 하절기가 되면 옛날처럼 직원들이 플랫폼에 나와 가두판매도 한다. 

아베상점은 이 밖에 벤토 이미지를 형상화한 캐릭터 상품을 판매 중이다. 

소박하고 클래식한 포치가방·키홀더·라이터·티셔츠 등이 그것이다. 가격도 비싸지 않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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