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데스크칼럼] 미개한 국민, 과분했던 대통령

 

정금철 자본시장부장 | jkc@newsprime.co.kr | 2017.03.14 17:14:36

역사의 법정 앞에 서게 된 당사자의 심정으로 이 선고에 임하려 합니다.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에 따라 이뤄지는 오늘의 선고로 국론분열과 혼란이 종식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이 사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고자 파면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보충의견이 있습니다. - 탄핵결정문 중 일부 발췌

[프라임경제] 잊히기 싫어 추억이 되는 가슴 시린 기억은 누구나 있다. 마치 정신감응(精神感應)처럼 한반도에서 호흡하는 우리 모두에게 쓰라림이라는 동일한 아픔을 전달한 많은 일이 있었다.

열강들의 침탈에 이은 남북 분리, 어렵사리 찾은 평화 뒤를 쫓아온 지역 대립, 여기에 촛불과 태극기의 이념 분쟁까지….     
 
과거 날 섰던 민주 항쟁의 소소리바람 덕에 우리는 과거보다는 영바람 나는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지금 또 한 번 다툼에 속박된 채 대변혁의 시기를 맞았다. 희나리의 매운 연기를 내던 촛불민심은 마른 장작보다 건조해져 사회를 훈연하는 재료가 됐다.

이제 수첩공주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적자생존(수첩에 적는 자만 생존) 시대는 갔다. 미개(未開. 아직 꽃이 피지 않은 상태)한 국민에게 과분(瓜分, 오이를 나누듯 토지를 신하에게 분배)이 뭔지 보여주던 대통령은 떠나고 국민보다 한 발자국 더 앞서 손잡아 이끌 나라의 대표를 맞을 때다.

지역과 세대 간 벽을 무너뜨린 범국민적 증오를 야기해 국민 대통합을 유도한 전 대통령은 물러나는 당일까지 경제발전을 도모했다. 탄핵일인 10일 치킨과 맥주 판매가 급증하고 잔치국수 무료 이벤트가 곳곳에서 열리는 등 모처럼 경제에도 창조적인 분위기가 번졌다.

아울러 외국인(특히 미국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상당수 국민들과 보조를 맞춰 외국 주요 신용평가사의 진단을 살펴보면 향후 우리나라의 경제전망은 긍정적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정치적 불확실성 해소에 따른 국정정상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앞서 피치는 지난해 12월 올해와 내년의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2.5∼3.0%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AA-'의 신용등급을 재확인한 바 있다.

이와 함께 탄핵 이후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탄핵이 한국 국가 신용등급에 미치는 즉각적 영향은 없다"며 "이른 시일 내 성숙한 제도적 기반을 바탕으로 국정을 정상화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무디스는 '차기 대통령이 한국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위한 개혁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짚었다.

국민에게는 미쁜 구석이 없는 지도자였지만 자기 사람은 언제까지나 신뢰하는 의리파였다. 칩거의 신비주의로 지지자들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흔들었던 전략도 여전했다. 청와대를 벗어나 삼성동 자택에 다다랐을 때 뿌연 차창 밖으로 보인 끊임없는 미소는 그를 추앙하는 이들의 팬심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다. 충분하다. 이만큼 국민에게 충격을 줬으면 됐다. 5월의 신부보다 아름다울 5월의 대통령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홀가분하게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수사에 성실히 임해 스스로 무죄임을 증명하면 된다.

조사를 피할 명분도 찾기 힘들뿐더러 미루면 미룰수록 자승자박의 오라는 더욱 옥죄는 강도가 세질 게 분명하다.

편을 들어줄 세력도 얼마 남지 않았다. 탄핵이 인용된 만큼 검찰과 경찰도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나 현재 검찰은 소환불응 시 체포영장 등 강제수사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대통령이었던 인물의 우아한 유종의 미를 기대한다.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