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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칼럼] 산마리노 공화국 가는 길, 의심과 두려움

 

서유순 코치 | usoonsuh@gmail.com | 2017.03.18 11:06:27

[프라임경제] 내가 아는 조직의 한 부서장이 부하 직원에 대한 아주 안 좋은 사건의 전화가 낯선 사람으로부터 왔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평소 그 직원이 그렇게 안 좋은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부서장은 무척 당황하고 실망감 때문에 화가 났다. 당장 그 직원을 불러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징벌을 하고 싶었지만, 우선 본인이 직접 낯선 제보자와 확인하고 싶어 그의 전화를 기다리기로 했다.

낯선 제보자는 결국 전화를 다시 하지 않았고, 부서장은 해당 직원을 불러 사실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없이 그 사건은 싱겁게 끝났다.

"제가 화가 났을 때 그 직원을 불러 사실 확인을 재촉했더라면 자신을 믿어주지 않은 상사 때문에 오히려 그가 얼마나 상심하고 실망했을까요. 이번 일을 통하여, 직원을 우선 믿어준다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이 점을 항상 잊지 않으려 합니다."

자신의 최근 경험담을 들려준 그 부서장을 보며, 나라면 과연 그럴 수 있었을까. 자문해 보고 존경심이 일었다. 오래 전 채근담을 풀어 쓴 책을 보며 밑줄을 그었던 한 구절도 생각났다.

"사람을 믿는 것은 남들이 성실치 못하더라도 자신만은 성실한 때문이요,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남들이 속이는 것이 아닐지라도 자신이 먼저 속이는 까닭이다."

나는 잘 알지도 못하고, 겪어보지도 않고, 주워들은 소문을 믿어 불신을 키우고 남의 호의를 오해한 부끄러운 경험이 있다.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작은 나라이자 중세 이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공화국인 산마리노를 가는 길이었다. 이 곳으로 가는 관문인 이탈리아 동북부 작은 도시 리미니에 내가 도착했을 때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초봄이지만 꽤 추웠던 이 날 오후 산마리노행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린 끝에 일곱 시 막차를 탈 수 있었다.

시골 완행버스처럼 이곳 저곳에 승객들이 하나 둘 내리더니 어느덧 여자 승객 한 명과 나만 남게 되었다. 버스 기사인 중년 남자와 조수로 보이는 청년 한 명이 뭐가 그리 즐거운지 신나게 웃고 떠들며 노래까지 하고 있었다. 그 사이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고 밖은 가로등 하나 없이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이정표마저 보이지 않으니, 이 버스가 과연 산마리노로 가고는 있는지, 하나뿐인 여자 승객마저 내려버리고 두 남자와 관광객인 나만 남게 된다면? 갑자기, 이탈리아 도둑과 강도에 대해 들었던 안 좋은 이야기들이 생각나며 몹시 불안해졌다.

기사에게 내 호텔 주소를 보여주며 얼마나 더 갈지 물었더니, 버스 종점까지 가서 잠시 휴식하고 다시 출발하여 호텔까지 데려다 주겠단다. 어두운 버스 종점에서 휴식을? 나는 더욱 불안해지고 두렵기조차 했다.

마지막 여자 승객이 내리는 순간 나는 어디인지도 모른 채 후다닥 따라 내렸다. 이곳 주민인듯한 그녀에게 내 호텔 주소를 보여주었더니, 아는 곳이라며 안내를 했다. 작은 우산을 그녀와 함께 쓰고 오르막 내리막 빗 길을 한참 걷는 동안 옷과 가방이 흠뻑 젖었지만 버스 안에서의 불안과 두려움에 비하면 견딜만했다.

다음날 아침, 밤새 내린 눈 속에 덮인 공화국의 산과 마을 풍경은 고요하고 평온하며 신비로운 느낌의 동화 속 같았다.  마을 이곳 저곳을 걷다 보니 아담한 정부 청사와 성당 부근의 버스 종점에는 순박한 마을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버스에 오르고 내리고 있었다.

쌓인 눈 위를 비추어 반짝이는 순백의 평화로운 햇살 속에서 전 날 밤 어둠 속에 공화국을 오며 느꼈던 나의 의심과 두려움이 어이가 없었고 부끄러웠고 미안했다. 육안으로 잘 안 보여서, 이미 가지고 있던 선입견 때문에, 혹시라도 피해를 입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처음 만난 이곳 사람들을 불신부터 했기 때문이다.

설사 잘못 판단하여 실패를 하더라도 직원을 우선 믿어 주겠다는 그 부서장처럼 내가 대하는 코칭 고객을 무조건 믿어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해본다.

서유순 코치 / (현) 코칭경영원 파트너코치 / (전) 라이나생명 인사 부사장 / (전) 듀폰코리아 인사 상무 / 공저 <여성리더가 알아야 할 파워코칭> <조직의 파워를 키워주는 그룹코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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