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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정선의 시대정신] 초원복집 사건과 부산 대통령

 

소정선 칼럼니스트 | sjseond@naver.com | 2017.03.20 19:00:17

[프라임경제]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고질적 지역감정 조장 발언이 쏟아지면서 진흙탕 선거판이 우려된다. 대선 본선이 아닌 당내 경선에서 지역감정이 표면화된 것은 이례적 현상이다. 민주당 주자 간 경쟁이 박빙 양상을 보이면서 추월을 우려한 선두주자의 불안심리를 반영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9일 부산에서 열린 민주당 문재인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시민통합캠프'발족 기자회견에서 오거돈 선대위원장은 "부산 사람이 주체가 돼 부산 대통령을 만들자"고 역설했다. 그는 "시민통합캠프가 이제 다시 한 번 부산 사람이 주체가 돼 부산 대통령을 만들어낼 것"이라면서 "부산시민의 압도적 지지가 전국 지지율을 견인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명백한 지역감정 자극 발언이다. 후보의 이념이나 정책으로 당원, 시민들의 지지를 호소하지 않고 해당지역 출신인 점을 부각시키며 지역주민의 감정에 호소한 것이다.
 
망국병으로 불리는 지역감정의 선거이용은 우리 정치사의 가장 아픈 부분이다. 인간이라면 으레 갖는 고향에 대한 애착심을 공동체적 감정으로 연결시켜, 선거에서 특정후보를 편들게 하는 극히 비이성적 작태다. 이러한 지역감정은 일제나 독재정권이 국민들을 지역으로 분열시켜 지배를 용이하게 하려는 통치방법으로 이용됐다.

현대 정치사에서는 1963년 5대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였던 박정희는 영남권 선거운동 중 "우리 경상도 사람 대통령으로 한번 뽑아보자"고 호소, 상대 후보 윤보선을 물리치고 당선된다.

1987년 13대 대선에서도 영남의 노태우 후보, 호남의 김대중 후보로 지역 감정에 의한 투표가 이뤄지면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된다. 1997년 지방선거에서는 충청인을 비하한 이른바 '핫바지론'이 거론되면서 충청권에서 자민련이 압승하기도 했다.
 
당시 지역감정 자극 발언을 보면 "전라도 대통령을 뽑으면 경상 푸대접 내지는 보복이 온다. 전라도에서도 이번에는 꼭 대통령을 내어 푸대접을 면해야 한다. 전라도여 뭉쳐라" 등 지극히 말초적이고 자극적이다.

지난 2015년에는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선거 운동 과정에서 특정 지역과 지역 주민을 모욕하는 등 지역감정을 조장하면 당선무효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아직도 일부 정치인들은 지역주의에 기대려는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 실제 선거에서 표결집에 효율적 선거수단임이 입증되기 때문이다.
 
이번 문 후보 부산선대위원장 발언은 지역감정 선거이용의 표본으로 널리 언급되는 1992년의 '초원복집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박근혜 게이트의 주역 중 한 명인 김기춘(당시 법무부 장관)이 부산 기관장 8명을 모아 식당에서 선거대책회의를 하면서 '지역감정을 부추겨 김영삼 당선을 돕자'고 노골적 부정선거를 지시했다.

신문사 간부를 매수해 민간단체를 동원하고 검찰, 경찰, 안기부가 이를 측면 지원키로 했다. 결국 지역감정이 효과를 내면서 김영삼 후보가 당선된다.
 
당시 김기춘 법무부 장관은 "당락을 불구하고 PK(부산·경남)표가 적게 나오면 우리는 멸시받는다. 다른 사람이 되면 부산·경남 사람들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불러일으켜야 된다"고 말한다.

오거돈 선대위원장이 "부산시민이 압도적으로 지지하자. 부산 대통령 만들자"는 말과 형용와 표현법만 약간 다를 뿐 내용은 동일한 맥락이다. 더구나 오 선대위원장의 '다시 한 번'이란 발언은 지역감정에 힘입어 당선된 '초원복집'의 부정선거를 묵시적으로 인정하자는 공개적 선언에 다름 아니다.
 
오 선대위원장의 "우리 부산이 다시 한 번 만들어 낼 부산 대통령은 고질적인 지역구도를 타파하고 진정한 동서화합이 만들어낸 최초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발언은 지역감정 선동이라는 비판을 교묘히 비켜가겠다는, 속보이는 얄팍한 속임수다.

어떻게 특정 지역 대통령이 전국민적 화합을 주장할수 있는가. 그렇다면 호남출신 후보가 광주 대통령이 돼 동서화합을 만들어 낼 수도 있지 않는가.

과거 지역감정의 피해자였던 민주당 등 야당은 항상 여당의 '지역주의, 지역감정 악용'을 비판하면서 이를 일소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최근 민주당도 은근 슬쩍 지역감정을 이용하려는 기미를 보인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참여정부 시절 문 실장이 부산가서 부산정권 운운해 호남의 미움을 받아 지난 총선 때 호남에서 안철수에게 패했는데 이를 다시 거론하다니 아무래도 문 후보 측이 이성을 잃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스스로가 노무현의 적자라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렇게 싫어하던 지역주의를 다시 부추기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지역감정 조장이 우리정치의 고질적 병폐라면서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안희정 후보의 대연정론을 야합으로 규정하고 적폐청산을 외친 문 후보가 스스로 적폐를 답습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당내 경선에서 대연정론을 앞세운 젊은 안희정 후보가 문 후보를 추월할 기미를 보이면서 다급한 나머지 써서는 안 될 카드를 내보인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과 악화일로의 남북한 대결 등 하나로 뭉쳐도 대처하기 힘든 상황에서 모든 것을 좌우로 나눠 대립케 하는 지역감정은 결국 국력약화와 서민들의 희생을 초래하고 정권이 바뀌면 똑같이 복수하는 피의 보복정치를 부르는 원인이다.

소정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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