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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대의 글쓰는 삶-33] 한 걸음 다가서는 자세

 

이은대 작가 | press@newsprime.co.kr | 2017.03.24 18:32:16

[프라임경제] 막노동을 그만 둔 후부터 아침에 글을 쓰고 나면 잠시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다. 커피 한 잔을 타서 집 앞 공터로 나간다. 책상 앞에 앉아 편안하게 커피를 마시지 않고 굳이 밖으로 나가는 이유가 있다. 까치 우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예로부터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오거나 기쁜 소식이 전해진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까치를 길조라 불렀다. 들에 나가 하루 종일 허리를 굽혀 농사를 짓던 옛 어른들에게 허공을 가르며 맑게 우는 까치 소리는 그야말로 마음을 흐뭇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음악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반가운 손님이 오지 않아도, 기쁜 소식이 들려오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저 까치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좋은 마음을 갖는 자체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도시생활을 하면서 자란 나는 까치를 비롯한 새 소리를 자주 듣지 못했다. 주변에 새가 없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사는 게 바쁘다는 이유로 새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는 이유가 더 적절하겠다. 아주 어렸을 적, 집 앞에 둥지를 튼 비둘기떼가 구구 거리는 음침한 소리만이 귓가에 남아 있을 뿐이다.

지금도 여전히 바쁜 생활을 하며 살고 있다. 시간적으로만 본다면 직장 생활을 할 때보다 오히려 일이 더 많아졌다. 그러나 마음은 한결 여유롭다. 긴 터널을 빠져나와 이제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조금은 깨닫게 된 탓일까. 아무튼 예전보다는 훨씬 더 자주 새 소리를 듣는다. 내가 사는 주변 세상에 이토록 새가 많고 다양했던가 싶을 정도다.

까치 울음 소리를 듣기 위해 커피잔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일종의 나만의 의식이다. 오늘 하루, 반갑고 기쁜 소식을 내 스스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가만히 앉아서 까치가 날아와 행복한 소리를 들려주기 기다리지 않고, 내 발로 직접 그 멋진 소리에 다가가겠다는 마음의 실천이다.

한 때, 행운이란 것을 간절하게 바랐던 시절이 있었다. 모든 것을 잃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잠을 자고 일어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지냈던 날들이었다. 복권을 얼마나 샀던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삶이 한 순간에 무너졌듯이, 내일 아침이면 한 순간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허황된 망상에 기대 살았다. 그러나 내 삶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나는 결국 무너졌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원인 없는 결과도 없다. 실패의 원인도 나에게 있고, 불행의 근본도 나에게 있다. 바꿀 수 있는 것도 오직 나 뿐이며, 노력하고 움직이는 자만이 행복도 행운도 움켜쥘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다. 적당한 노력 끝에 이 정도면 운이 따라 주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도 품지 않는다. ‘악착같이 살아간다’는 말이 내 삶의 좌우명이 됐다. 한 걸음을 떼면, 정확히 내가 뗀 발걸음만큼 정상에 가까워진다. 그 이상 주어지는 것은 내 것이 아니다. 그래서 노력한 만큼 주어지는 보상에 충분히 만족할 수 있게 된다.

아침 공터에 나가면 어김없이 까치를 만난다. 그들도 새로운 하루를 반기듯 힘차게 울어댄다. 주변 아파트 벽에 부딪쳐 메아리처럼 울려퍼지는 까치의 울음소리가 그렇게 청아할 수 없다.

마치 오늘 하루 나에게 온갖 행복과 행운과 축복의 소식을 있는대로 전해주겠다는 듯 목소리를 높인다.

까치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를 기다리는 소극적인 삶의 자세를 벗어나 내 삶의 행복과 행운을 직접 만들겠다는 의지의 실천이 오늘을 행복하게 만든다.

이은대 작가 / <내가 글을 쓰는 이유>,<최고다 내 인생>,<아픔공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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