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소정선의 시대정신] 대선정국 되살아난 'SNS 기동대'

 

소정선 칼럼니스트 | sjseond@naver.com | 2017.03.28 13:49:27

[프라임경제] '상황의 정의(definition of situation)'를 강조하는 토마스 정리(Thomas theorem)에 따르면, 사람들은 주어진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보다는 주관적 이해를 통해 자기 나름대로 파악하며 그들의 행동 또한 그러한 주관적 이해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예를 들어, 어떤 은행의 재무 상태가 실제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주변사람들이 그 은행이 곧 파산하게 될 것이라는 루머를 퍼뜨리게 되면 자기 스스로도 은행이 파산할 것이라고 실제로 믿게 된다.

이 결과 모두 은행으로 달려가서 예금을 인출해 결국 그 은행은 정말로 파산하고 만다. 주식 투자자들의 행동도 이와 같다. 본인의 합리적 판단과 관계없이 주변의 투자자들이 투자하는 기업의 주가가 상승할 것이라고 믿고 그 기업의 주식을 구입하는 경향이 있다.

토마스는 이런 경향을 "만일 사람이 상황을 현실로 정의하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고 주장한다. 선거 국면의 밴드웨건효과도 같은 맥락이다. 토마스의 정리는 여론조작과 대중조작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느 특정인이나 그룹이 의도를 갖고 여론을 몰면 다수 대중들은 자기도 모르게 따르게 된다.
 
자유한국당은 이달 17일 '문재인 캠프, SNS 여론조작 우려'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타 정당의 내부 일, 더구나 특정 후보캠프 활동에 관심을 쏟는 것은 의외의 일이다.

논평의 골자는 '문재인 캠프에 지난 18대 대선 당시 불법 사회관계망서비스(SNS)활동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조모 전 뉴미디어지원단장이 경선 캠프에 합류해 문재인 캠프의 SNS상 여론을 조작할 지 우려가 커진다'는 것이다.

일명 'SNS기동대'로 불리는 이 조직은 지난 대선 당시 전 민주통합당 소속 국회의원 보좌진들이 모여 만든 사조직이다. 이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에서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위해 각종 콘텐츠의 기획·제작·유포는 물론 흑색선전 업무도 수행했다.

상대 후보에 대한 원색적인 비판과 악성 선전선동이 있었다. 주요 관계자들은 공직자선거법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 논평은 "그렇지 않아도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인 네이버 부사장을 캠프에 합류시켜 포털의 중립성 훼손이 우려되는 상황에  이들의 합류는 또 다른 범죄를 불러일으킬까 우려된다"는 내용이다.

아니나 다를까 선거인단 모집 초기부터 최근 호남 경선에 이르기까지 문 후보 경쟁상대인 안희정 지사와 이재명 시장 측은 인터넷 댓글을 비론한 각종 SNS에서 집중공격을 받기도 했다.

전략기획팀과 메시지팀, 실무지원팀 3개 팀으로 구성된 SNS 기동대는 국정원이나 보안사의 댓글부대 '십알단'을 연상케 한다. 전략기획팀은 콘텐츠의 기획, 메시지팀은 각종 메시지 생산, 실무지원팀은 메시지 전파를 담당했다.
 
이들은 오전 9시 오프라인 회의를 시작으로 오전 10시와 오후 1시 반 집중 유포, 오후 1시 온라인 회의, 오후 3시 반응 모니터링 등 시간대에 맞춰 조직적인 활동을 펼쳤다는 전언이 돈다. 1인당 하루 100건이상의 트위터를 작성하기도 했다. 

이후 SNS기동대는 10개 팀, 70여명 규모의 SNS지원단으로 확대·개편되고 이를 위해 당시 민주통합당은 여의도 신동해빌딩 6층에 새 사무실을 냈다. 사용된 컴퓨터 수는 90대가 넘었다.
 
이들의 활동은 선거 당일까지 계속됐으며 보안도 철저했다. '조직적 대응 분위기가 풍기지 않도록 엄중 경계해야 한다'(SNS기동대 백서). '언론에 유출되면 심각해질 수 있으므로 보안에 신경 쓰라'(차00 보좌관의 이메일). '조직적 SNS 대응 활동이 알려지면 문제가 생기니 노출되지 않게 주의하라고 했다'(차00 보좌관의 검찰 진술)

당시 재판부는 이들의 범죄에 대해 "선거 관계인 신분으로서 선거 승리에만 집착해 그 위법성을 인지하고도 범행했고, 단순한 온라인상에서 개인의 정치적 의견을 표현한 정도의 것이 아니라 위법한 유사기관을 기반으로 특정 후보에 대한 유리한 자료 등을 조직적으로 취합했다"고 판시했다.

이를 파급효과가 큰 SNS 매체를 이용하여 선거일 전날까지 집중 전파시킨 것으로 선거에 미친 영향력이 작다고 볼 수 없다는 내용도 있었다.

당사자의 재합류에 대해 문 후보 측은 "내부적으로 SNS 팀장으로 활동하는데 결격사유가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답했다.
 
최근까지 인터넷상의 친문 댓글이나 반문 국회의원들이 받은 문자폭탄이 이들의 작품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이들의 활약상을 입증하는 자료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유명 네트워크인 디시인사이드에 '문재인 캠프 인터넷 여론 선동과 조작을 고발합니다!'라는 글은 댓글부대의 최근 활동상을 상세히 묘사하기도 한다.

구체적으로 <~마음>이라는 계정은 지난해 4월부터 오유에 가입해 2006건의 글을 게재했는데 이중 1959건이 베스트 오브 베스트 게시물로 선정됐다. 오유에서 베스트게시물이 되려면 20명이상의 추천이 필요하고 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되려면 40명의 추천을 받아야하기에 보통 게시물의 20~30% 정도 이상이 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되기 힘든 구조.

그런데 이 계정의 2000여건 게시물 중 97%가 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된 것은 분명 조직적인 백그라운드가 있다는 것이다.
 
게시된 글은 대부분 문재인 후보에게 긍정적인 글이나 기사, 문재인 후보 관련하여 부정적인 이슈를  옹호하는 글과 기사에 집중됐고 안희정 후보와 이재명 후보에 비판적인 글과 기사를 집중 게시한 후 이를 지속적으로 확산해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고 있으며 이러한 조직적 활동이 의심되는 계정은 계속 발견된다는 것.
 
문 캠프와 대립각을 세우는 안희정 지사 측의 박영선 의원은 "문재인 지지층 댓글부대는 '십알단'과 유사하다"면서 "소위 문빠들은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는 악질적 표현을 서슴치 않는데 문제는 문재인후보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은근히 즐긴다"고 비판한다.

정보화 사회의 선거에서 SNS가 여론형성에 끼치는 영향을 막대하다. 대중조작(大衆操作)은 정치권력을 가진 엘리트가 매스미디어 등을 이용해 자기 의도대로 대중(大衆)이 동조(同調)하도록 교묘하게 유도하는 것이다.

정치권력자가 권력을 유지·재획득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동조와 지지가 필요한 만큼 반대 세력의 결속을 파괴하고 그것을 대중의 속으로 해체시켜 버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토마스 정리를 들지 않더라도 오늘날 정치권력자는 고도로 발달한 매스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일방적 선전과 설득, 혹은 상징조작(象徵操作)을 구사하며 대중이 무의식적으로 동조, 지지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정보화 사회에서 대면보다는 화면에 익숙한 대중들에게는 SNS야말로 상징조작의 맞춤도구인 셈이다. 지난 18대 대선 당시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댓글조직'운영이 대표적 사례다. 최근 경찰이 수사 중인 선거법 위반 사건 20건중 14건이 사이버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일각에서는 '포털-SNS 관련 법' 제정의 필요성도 거론한다. 날로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포털과 SNS, 인터넷 방송 등에 대한 효과적인 규제와 함께 포털이나 SNS에서 여론을 조작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명확한 처벌 규정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법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기원전 81년 중국 전한시대에 소금과 철의 국가 독점여부를 놓고 대신들이 논쟁했던 당시를 기록한 '염철론(鹽鐵論)'의 한 구절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토론을 하는 사람은 의(義)로써 서로 돕고, 도(道)로써 서로 깨우치고, 선(善)을 따를 뿐 반드시 이길 것을 구하지 않으며, 의에 승복할 뿐 말이 막히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거짓으로써 서로 미혹케 하고, 화려한 언사로써 서로 혼란스럽게 하고, 나중에 멈추는 것을 서로 자랑으로 여기며, 어떻게든 이기기만을 바라는 것은 토론을 함에서 본받을 바가 아닙니다."

소정선 칼럼니스트

※외부 필진의 의견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