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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벤토탐방] 센다이 풍미…가열식 '규탕벤토'

"벤토 알면 문화 보이고 문화 알면 일본 보인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 bsjang56@hanmail.net | 2017.03.29 09:46:28

[프라임경제] 규탕(牛タン)은 설렁탕 같은 국물음식이 아니다. 소의 혀(tongue)로 만든 구이요리다. 동북지방 최대도시 '센다이(仙台)' 명물로 혀 특유의 부드럽고 고소한 식감이 긴 여운을 남긴다.

코바야시의 특선 숯불구이 규탕벤토(가열식). ⓒ 코바야시벤토 홈페이지

소 혀는 멕시코·브라질 등 남미와 유럽 등지에서 중요한 식재로 활용된다. 한국도 옛날부터 탕(湯)에 넣는 식재나 안주감으로 애용하고 있다. 

육식문화가 늦게 보급된 일본은 센다이에서 '아지·타스케(味·太助)'라는 구이전문점을 운영하던 '사노(佐野啓四郎)'에 의해 지난 1948년 소금구이 요리로 처음 개발됐다. 

사노가 토쿄의 요리학교에 다닐 때 사사받던 프랑스인 요리사로부터 소 혀가 가진 식재로서의 우수성을 전해 듣고 연구 끝에 일본인 입맛에 맞는 소금구이를 만들어낸 것. 재료로는 당시 센다이에 주둔했던 미군 캠프에서 부산물로 나오는 값싼 혀와 꼬리 부분을 사용했다. 

요리법은 소 혀를 손바닥 절반만 한 크기로 잘라 소금과 후추를 뿌려 숙성시킨 후 은은한 숯불에 굽는다. 이 때 표면에 가는 칼집을 넣어 먹기 편하게 만들어 주는 밑 손질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먹기 직전 고춧가루를 적당량 뿌리는데 이들 세 가지 양념 밸런스가 맛을 좌우한다. 규탕에는 우리나라 꼬리곰탕과 유사한 스프가 콤비로 따라 나온다. 담백하고 개운한 이 스프에도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 

처음에는 일부 애호가나 취객들이 가끔씩 찾는 별미요리 수준이었다. 이 요리가 전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고도 성장기에 들어서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센다이는 원래 '숲의 도시'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나무와 숲이 많은 조용한 해안도시였다. 동북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라고는 하지만 지금도 인구가 100만명이 약간 넘는 규모다. 

이곳에 대기업들이 일시에 많은 지점을 내자 토쿄 등 대도시에서 단신으로 부임하는 회사원들이 몰려들었다. '센쵼조쿠(仙チョン族·센다이총각)'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도시가 갑자기 북적대기 시작했다. 

센다이 번화가에서 회사원에게 돌을 던지면 세 명 중 한 명은 센쵼조쿠가 맞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이들이 점심이나 저녁 술 자리에서 규탕을 먹자 그 존재가 외부에 알려졌다. 

고단백이지만 지방이 적은 다이어트 음식이라는 점도 대도시 샐러리맨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때맞춰 일기 시작한 여행과 외식 붐도 한몫한다. 

지난 1991년 쇠고기 수입 자유화로 값싼 미국산이 들어오자 곳곳에 분점이 생기고 신규 사업자가 증가하는 등 규탕은 빠른 속도로 대중 속에 자리 잡았다. 이때부터 다양한 에키벤이 나오고 전국단위 통신판매가 등장한다. 

이렇게 규탕이라는 퓨전요리가 비교적 단시간에 센다이를 대표하는 명물로 떠오르자 재료의 원산지 문제가 불거졌다. 미국산 축산물을 사용한 제품을 과연 센다이 특산물로 볼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었다. 

여론을 의식한 센다이시 상급기관 미야기(宮城)현은 지역농수산물 판매활성화 명목으로 센다이 소를 이용하는 규탕을 권장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미국산으로 개발한 음식을 지방 비율이 다른 국산재료로 바꾸면 본래 맛이 안 나고 가격이 올라간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규탕 점포연합체인 '센다이규탕 진흥회'의 서명운동이 대표적이다. 결국 이 문제는 미국산을 사용하는 점포나 업체들이 자율적으로 '센다이 명물' 대신 '센다이 발상'이라고 표기하는 선에서 일단락된다. 

규탕은 기본적으로 저렴한 서민음식에서 출발한다. 

센다이역 근처에서 부친의 가업을 이어받아 2대째 아지·타스케를 운영하는 '사노(佐野和男)'씨는 자신의 점포를 "값싸고 소박하지만 영양이 풍부하고 인정 넘치는 명물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소개한다. 이 말 속에 센다이 규탕의 성격과 이미지가 잘 드러나 있다.

규탕 벤토를 구입할 때는 가열식 용기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용기를 평평한 곳에 고정시키고 발열 끈을 당긴 후 5분 정도 기다리면 내용물이 데워진다. 

가열식 벤토는 생석회가 물과 혼합할 때 발생하는 열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육류나 해물류 에키벤에 가열식이 많고 그중에서도 규탕 벤토는 갓 담았을 때 풍미에 근접한 맛을 재현해준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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