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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벤토탐방] 니혼바시서 태어난 '돈부리' 벤토

"벤토 알면 문화 보이고 문화 알면 일본 보인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 bsjang56@hanmail.net | 2017.04.05 11:09:21

[프라임경제] 스피드와 실속을 중시하는 일본인들이 즐겨 찾는 메뉴가 '돈부리(丼)'다. 이 음식의 특징은 밥 위에 요리 한 세트가 온전히 덮여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는 점이다.

벤토 전문점의 '카라아게마요동'. ⓒ 혼케카마도야 홈페이지

돈부리는 밥이나 면을 담는 두툼하고 깊은 도자기 그릇 '돈부리바치(丼鉢)'가 어원으로, 한자 '丼'은 돌 같은 물체가 우물(井)에 떨어지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일본어는 그 사물이 수면에 부딪칠 때 나는 소리를 차용해 사용한다. 

반찬은 용기 한 귀퉁이에 초절임 생강 몇 쪽 놓이는 게 전부다. 그렇다고 영양분이 부실한 것은 아니다. 보통 돈부리 1식에는 900㎉ 정도에 해당하는 식재와 양념이 들어가 한 끼 식사로도 손색없다.

돈부리는 밥 위에 올리는 토핑에 의해 명칭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쇠고기를 올리면 '규동', 돼지고기는 '부타동', 텐푸라는 '텐동', 톤카츠는 '카츠동', 민물장어는 '우나동', 카레는 '카레동' 하는 식이다. 

최근에는 '카라아게(닭튀김)'와 마요네즈를 뿌린 '카라마요동' 같은 퓨전풍도 나오고 있다. 특정 돈부리를 호칭할 때는 '~동' 형태로 부른다. 

돈부리의 고향은 에도시대 상업 중심지였던 토쿄의 니혼바시(日本橋)다. 각 지역 물산이 모이고 유통되던 곳이다. 토쿄까지 ○○㎞할 때 기점이 되는 장소다. 

이곳에 지난 1899년 '요시노야(吉野家)'라는 돈부리집이 문을 열었다. 이 점포는 당시 길거리 인기메뉴였던 '규메시(牛めし)'를 지금의 규동으로 탈바꿈시켰다. 1973년부터는 프랜차이즈를 통해 돈부리 대중화를 앞당긴 곳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같은 지역에 그보다 140년 앞서 '타마히데(玉ひで)'라는 토종닭 전문점이 문을 열었는데 이곳에서 탄생한 돈부리가 '오야코동(親子丼)'이다. 오야코(親子)는 닭과 계란을 가리킨다.

탄생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史實)이 흥미롭다. 타마히데는 에도시대 중기인 1760년 창업돼 현재 8대 점주가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창업자는 토쿠가와 장군가에서 '매 장인(匠人)'이라는 직책에 있던 '야마다(山田鐵右衛門)'라는 관리였다. 

매 장인은 장군가의 매나 학 같은 조류를 사육하고 명령에 따라 잡아 해체하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그들은 장군가 어전에서 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신속히 살점을 발라냈다. 누대에 걸쳐 전수된 가전의 비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한편으로는 특정한 고객을 상대로 식당을 운영했다. 5대 점주 시절 전골요리를 먹고 난 손님들이 마무리로 남은 육수에 밥과 간장을 넣고 계란을 풀어 죽을 만들기 시작한 것. 이 음식이 인기를 끌자 손님들은 처음부터 이것만을 먹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점주는 업소의 격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점포 내 제공을 고사했고, 당시 사람들은 이 요리를 '오야코니'라 불렀다. 지금부터 126년 전으로, 이 음식이 오야코동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온 것이 1979년이다. 

이 점포 앞에는 항상 행렬이 늘어서는데 오후 1시30분까지 줄에 합류한 사람에게만 주문할 기회가 주어진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닭은 에도시대 투계로 이름을 날린 '샤무(軍鷄)'라는 재래종 수탉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조류지만 닭싸움 경기가 없어진 요즘은 특별한 허락 없이 식용이 가능해졌다. 

규동과 오야코동 이 두 가지를 일본 전통 돈부리의 양대 산맥으로 봐도 무리가 없다. 그러나 두 음식은 스타일이나 성격이 많이 다르다. 규동 주재료가 쇠고기인데 반해 오야코동은 닭고기다. 전자가 대중적이라면 오야코동은 귀족적이다. 육류 원산지도 수입산과 국산으로 구별된다.

젓가락 문화가 발달한 동양권에는 식사할 때 주식인 밥과 반찬을 따로 구분하는 전통이 있다. 일본도 예외가 아니었다. 사찰이나 중국의 영향으로 일부 계층에서는 밥 위에 야채 요리 등을 올리는 문화가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밥과 반찬을 무질서 하게 섞는 것을 기피하는 풍습이 지금도 남았다. 

하지만 에도시대 들어 각종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쵸닌(町人)'이라 부르는 기술자와 상인 무리가 등장하자 기존 식문화에 변화가 일어난다. 성격이 급하고 격식보다 실용을 중시한 그들은 밥이나 면 위에 예사로 반찬을 올려 먹었다. 

어디서든 큼지막하고 보온성 좋은 돈부리 그릇 하나만 있으면 식사가 가능했다. 편의성 있고 가격이 저렴한 돈부리 문화는 곧 대중에 널리 보급된다. 돈부리는 식품코너나 편의점 벤토 코너 등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기성 메뉴가 마음에 안 들 때는 '요시노야'나 '스키야(すき家)' 같은 돈부리 체인을 찾으면 된다. 전국 4000개가 넘는 이들 체인점에는 규동을 비롯한 여러 돈부리가 늘어섰다. 

이곳에서는 밥의 양을 조절할 수 있고 된장국이나 샐러드 같은 사이드 메뉴도 구입할 수 있다. 주문하면 놀라울 정도로 빠른 시간 내 완성품이 나온다. 불과 1~2분 정도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어서 장어나 참치 같이 비싼 식재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면 500엔 내외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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