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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벤토탐방] 미야자키 명물 '치킨난반'

"벤토 알면 문화 보이고 문화 알면 일본 보인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 bsjang56@hanmail.net | 2017.04.11 13:42:54

[프라임경제] 기온이 올라 몸이 나른하고 식욕이 떨어질 때 주목받는 벤토가 있다. '치킨난반'이라는 서양풍 닭튀김요리다.

외형이 일본 돈가스를 닮았지만, 재료나 맛이 다른 음식이다. 입에 넣으면 달달하면서도 상큼한 감식초 향이 후각을 자극하고 부드러운 야채 타르타르소스가 남국의 풍미를 느끼게 해준다. 

벤토체인 '홋카홋카테이'의 치킨난반. ⓒ 홋카홋카테이 홈페이지

'난반(南蛮)'은 남만(南蠻)의 일본어 표기로 남쪽 오랑캐라는 뜻으로, 중국이 동남아시아 일대 나라들을 비하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일본에서는 15세기 유럽과 무역을 시작한 이후 동남아시아 외에도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을 난반에 포함시킨다.

특히 일본 식문화와 관련된 문헌에 나오는 난반은 이 두 나라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치킨난반의 발상지는 큐슈(九州) 동남쪽 끝 미야자키(宮崎)현 '노베오카(延岡)'라는 아담한 항구도시다. 

쇄국정책을 고수하던 에도시대에도 큐슈는 교역창구로 서양문물과 교류가 활발했다. 치킨난반 같은 서양풍 요리가 탄생하는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요리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서양풍 카라아게' 정도가 된다. 

일본전통 튀김요리인 카라아게에 감식초와 남만 소스를 가미한 음식으로, 튀김의 재료는 6개월가량 사육된 닭의 가슴살이다. 본 고장에서는 '지톳코(地頭鶏)'라는 미야자키현 브랜드 닭을 사용한다. 

치킨난반은 보통 튀김에 비해 공정이 하나 더 늘어난다. 튀김옷을 입혀 튀긴 닭을 감식초에 2~3분 담그는 것으로, 비린 맛을 억제하고 풍미를 배가시킨다. 요리법에 따라서는 그 위에 타르타르소스를 올리기도 한다. 밥맛없는 여름철 '테이반(고정)'으로 손색없는 메뉴다. 

치킨난반 원형은 지난 1950년대 노베오카의 경양식점 '론돈(런던)'이 종업원 식사로 제공된 요리다. 이러한 요리를 '마카나이'라 하는데, 일본에는 종업원을 위한 별도메뉴를 설정하는 식당이 많다. 

이 요리가 손님용으로 세상에 나온 것이 1964년이다. 론돈에서 근무하던 한 직원이 자신 이름을 따 '나오챵'이라는 점포를 열고 치킨난반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그후 1년 뒤 같은 점포에서 근무하던 또 다른 직원이 나와 '오구라'를 오픈하며 역시 치킨난반을 메뉴로 내걸었다. 이번에는 치킨난반 위에 자체 개발한 타르타르소스를 뿌려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같은 명칭에 구성과 맛이 다른 두 가지 요리가 거의 같은 시기 등장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나오챵을 치킨 난반의 원조로 보지만, 대중화에 있어서는 단연 오구라 스타일이 주류다. 전국단위 벤토 체인점에서도 오구라 방식을 채택해 타르타르소스를 얹어준다. 

개발자의 애제자로 '세가시라(瀬頭)'점을 운영하는 와타베씨(渡部寛)는 지난 2009년 타계한 스승의 "이 정도로 만족은 곤란. 아직도 남았나요? 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계속"이라는 가르침을 항상 명심하며 오구라 맛을 지킨다고 한다. 

최근 치킨난반의 재료를 놓고 벌어지는 재밌는 논쟁 하나를 소개한다. 치킨난반은 전통적으로 가슴살을 주재료로 하는데, 언제부터인지 일반가정에서 허벅지살을 쓰기 시작했다. 가슴살이 담백하고 부드러운 반면, 허벅지살은 씹는 맛이 있고 고소한 지방질이 들어있다. 

당연히 노년층은 기존 가슴살을 선호하고 젊은층은 허벅지살을 찾는다. 그러자 본 고장 미야자키현 각 가정에서도 이 문제가 뜨거운 이슈로 등장한다. 미야자키현을 배경으로 한 '히마와릿!(해바라기)'이라는 인기 만화가 이 문제를 고부갈등의 원인으로 그려 더욱 화제가 됐다. 

하지만 '쿡 패드'나 '라쿠텐' 같은 유명 요리 사이트가 선정한 레시피 순위를 보면, 대부분 허벅지살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결국 치킨난반 재료는 부위에 상관없이 취향대로 선택해도 된다는 판결이나 다름없다. 

생각해 보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진화 과정일지 모르겠다. 치킨난반은 2007년 일본 농수산성에 의해 농어촌 향토요리 100선에 선정됐다. 

이에 따라 노베오카시는 2009년 9월 위 두 식당과 학계 및 요리 연구가를 한자리에 모아 세미나를 열어 '치킨난반의 발상지는 우리 시'라고 선언한다. 또 7월8일을 '치친난반의 날'로 정해 도시 곳곳에 깃발을 세우고 기념품을 나눠주는 이벤트도 마련했다.

큐수 맨 아래 위치한 미야자키는 한 때 일본의 하와이로 불릴 정도로 남국의 정서가 넘치는 지역이다. 

우리에게는 프로야구단 동계 훈련지로 귀에 익은 지명이다. 

이곳을 여행할 때는 본 고장 치킨난반의 유혹에 한번 빠져보자. 1000엔 정도면 미야자키 혼이 담긴 '소울(soul)푸드' 치킨난반 세트를 즐길 수 있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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