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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노무현의 빨치산, 문재인의 신천지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7.04.21 19:04:55

[프라임경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내 대선후보 경선을 치를 때다. 당시 경쟁자였던 이인제 전 의원이 권양숙 여사의 부친(즉 고인에게는 장인이 되는) 사상 문제를 집요하게 공략했다.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행각을 했다는 점을 문제삼은 것이다. 사위된 입장에서 장인의 허물을 어물쩍 넘기면 이념 문제에 걸리고, 그렇다고 자신의 이념이 자유민주주의에 한치에 어긋남이 없다고 주장하려면 장인을 공격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인간적으로 참 어려운 문제를 낸 것이다.

이때 고인은 "그러면 지금 와서 마누라를 버리기라도 하란 말입니까?"라고 일갈했다. 사실 논리적으로만 보면 잘 된 답변도 아니고, 동문서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전쟁 후 우리나라가 부역자 처리와 그 가족에 대한 탄압을 어떻게 해 왔는가를 기억하는 갑남을녀들의 마음에 깊은 공명을 남긴 답변이었다.

주지하다시피, 고인은 판사 생활도 했고 변호사 개업을 했다. 국회의원도 지냈었다. 그런 자신까지도 이미 세상을 떠난지 오래인 장인의 이념 문제로 공개석상에서 공격을 당한다는 점에 강하게 반발한 것이었다. 그건 세상에 대한 비명이었다. 아직도 법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많은 이유로 숨죽여 사는 이들에 대한 동류의식의 확인이기도 했다. 이 발언을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이런 일만큼은 없게 하겠다는 약속으로 받아들인 이도 많았다.

지금 그런 고인의 이념과 지지층을 그대로 계승한 문재인씨가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로 활동하고 있다. 조사에 따라 수치는 조금씩 다르지만 그가 1등 주자임에는 큰 의심이 없다.

그런 그가 약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보호 정신이 없는 언행을 보이고 있다. 문 후보가 북한을 대단히 의식하는 태도를 보였고 끌려다니다시피 했다는 의혹(송민순씨 회고록 논란 및 메모 공개 파동)은 이런 문제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그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신천지 연루설을 과도하게 공격 도구로 삼을 때 아무런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면, 또 인권변호사 출신 정치인이라면, "특정 종교 사람들을 당에 단체로 입당시킨 의혹은 분명히 규명하고, 안 후보에게 책임을 묻겠다. 다만, 이런 의혹 규명은 특정 종교가 가진 그 부정적 이미지를 활용한 이중적 의미를 지닌 공격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 지지자들이 '신천지 의혹'이라고만 어젠다 세팅을 하면 이는 일명 사이비종교로 구박받는 이들에 대한 공격, 그들이 국민의당 경선 과정에 개입했는지 여부에 대한 공격으로 두번 때리는 것이 된다. 그것은 소수종교에 대한 모욕이다. '신천지 단체 입당 의혹'에 대해서만 우리는 철저히 검증, 규명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교통정리를 해줬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상황을 즐겼다는 식으로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는 태도였다.

그런데다 이번에는 아예 전인권 적폐가수 논란에 "내가 그런 건 아니잖느냐?" 화법을 내질렀다. 다들 아는 바와 같이 전인권씨는 진보적 정치성향을 가진 이였다. 촛불집회 등에도 여러 번 나섰고, 정치가 잘못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해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그런데 그가 안 후보 진영을  지지하자, 일명 '문빠'들이 그를 적폐가수로 규정, 공격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한 질문이 티비 토론회에서 나왔다. "당신 지지자들 좀 심한데, 이것 좀 말려달라"는 의미에서였다. 그런데, 문 후보는 그런 기대감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 단지 "내가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잖느냐?"는 식으로 모호하게 굴었다. 물론 그는 전인권씨 애국가 관련 글을 SNS에 올리기는 했다. 하지만, 다수에게 돌팔매질을 당하는 한 늙은 연예인 문제,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지지자들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 보인 태도로는 온당치 않아 보인다. 모호하게 눙치고 넘어가기 혹은 일종의 유체이탈 화법 같다.

대체 왜 이런 태도를 견지하는지 의문이다. 물론 1등은 조용히 있으면 된다는 게 정치공학적 상식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지금 그의 태도는 도가 지나쳤다. 신천지 신자들을 피눈물 흘리게 하는 잔인한 친노 지지층 일부의 공세 효과를 수혜하고, 전인권씨를 짓밟아 표를 결집해서 재미를 보고 그러지 않아도 지금 1등 아닌가? 더욱이, 고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철학을 승계했다는 이미지 하나로 이 자리까지 선 입장에서는 더더욱 이렇게 나가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기자는 생각한다.

지금 같아서야 문재인 후보, 당신의 어록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 유체이탈 화법'과 다른 게 무엇인가? 나중에 대통령 될지는 모르겠는데, 정치 그렇게 하는 것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어법 빌려 말하자면, "나 정치 좀 해 봐서(정치부 기자 좀 해봐서) 그 정도 기초 상도덕은 안다".

청와대 입성하는 날, 신천지와 전인권씨에게 분명히 사과하시라. 그걸 빼놓고 그 대문으로 들어간다면, '근혜스러운 대통령'으로 업무를 개시해서, 고 노 전 대통령을 욕보이는 것이다. 수많은 연좌제 피해자들을 어루만진 고 노 전 대통령의 "그럼 마누라를 버리기라도 하란 말입니까?" 외침을 다시 한 차례 상기해 보라. 지금 지지자들에게 "왜 이럽니까? 다들 전인권씨를 생매장이라도 시키자는 겁니까?"라고 일갈하는 게 어렵다 해도, 나중에 인간적으로 심심한 사과쯤은 꼭 하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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