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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믿어주세요. 외국인이라도…" 낙인에 생채기 난 대한민국

 

한예주 기자 | hyj@newsprime.co.kr | 2017.04.26 14:47:35

[프라임경제] "Oh koreans always make a problem.(한국인들은 맨날 사고나 치지)"
 
2007년 버지니아에서 일어났던 한국인 총기사건에 대한 반응이다. 당시 한 한국인 대학생이 33명의 미국 학생들을 살해한 사건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는 것은 위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명의 한국학생 탓에 다수의 한국인들이 '맨날 사고나 치는' '지구의 쓰레기' 등의 낙인이 찍힌 불행한 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당시 피해자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가해자에 대한 부끄러움, 그럼에도 한국인을 싸잡아 욕하는 데에 대한 분노 등 여러 가지 뒤섞인 감정을 공유했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 20일 평화롭던 경북 경산 자인농협 하남지점에 총기 강도범이 나타났다. 당시 농협에는 남자직원 1명과 여자직원 2명뿐이었는데, 범인은 그들을 총기로 위협했고 남자직원과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총알 1알을 발사했다.

다친 사람은 다행히 없었으나 강도범은 들어온 지 4분 만에 금고 안에 있던 1563만원을 탈취 후 도주했다. 뒤늦게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범인의 키나 옷차림 같은 간략한 인상착의와 총기소유자라는 것, '말씨가 어눌했다'는 정보만을 얻었다.

경찰은 인근 공장과 주변지역인 경주 외동읍, 영천 등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상대로 사건을 조사했다. 말씨가 어눌했다는 당시 농협 직원들의 말에 근방의 외국인 노동자들 위주로 수사망이 좁혀진 것이다.

그러나 사건 발생 나흘이 지나 경찰은 cctv를 통해 범인의 행방을 알아내 검거했다. 외국인일 줄 알았던 범인은 2007년 경산으로 귀농한 43세의 한국남성이었다.

범인 진술에 의하면 본인은 원래 말이 어눌한 편이고, 신변노출을 우려해 일부러 '담아' '휴대폰(치워)' '안에(들어가)'라는 딱 세 마디 말 밖에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말이 어눌하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을 외국인으로 한정한 것은 합리적 의심이었을까?

미국의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은 현대적 관점의 '낙인'을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낙인 또는 사회적 낙인이란 어떤 개인의 완전하고 평범한 속성을 부정하면서, 더럽혀지고 가치가 떨어지는 사람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어빙 고프먼의 정의를 빌리면 이 사건은 우리 사회 전반에 깔린 낙인찍기의 대표사례다.

외국인, 특히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에 대한 편협한 기준을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공유하고 있다. 눈빛이 불쾌하다거나 우리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단지 그들이 외국인이라는 점 때문에 비정상의 범주에 집어넣고 마음대로 우열을 가리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 100만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일자리 하나만을 보고 먼 타국에 온 그들을 상대로 행해지는 수많은 차별들이 그 증거다. 그들은 회사에서 왕따·따돌림을 겪거나 근로에 대한 합당한 임금을 제공받지 못하고, 신체적·언어적 폭력을 참고 일하는 등 겪어선 안 되는 일들을 당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차가운 시선과 불신이다. 유튜브 한 채널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국에 온 후 가장 힘든 것에 대한 인터뷰를 한 적 있다. 이에 베트남에서 온 한 여성은 외국인이기 때문에 나를 믿어주지 않는 게 제일 힘들었다고 대답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낙인찍힌 그들은 원래 자신들의 모습은 지운 채 '외국인노동자'라는 숨 막히는 프레임 안에 갇혀 살고 있다.

버지니아 총기사건에서는 우리가 외국인이었다. 그들이 표현했던 '한국인'이라는 프레임에서 우리가 매도당했다는 것 외에는 농협 사건도 일맥상통하다.

그들의 낙인과 우리 스스로의 낙인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은, 너무도 당연해서 더 어려운 '입장 바꿔 생각하기'다. 역지사지와 타산지석, 반면교사 등 우리가 교훈으로 삼을 성어는 얼마든지 있다. 배운 것을 사용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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