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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편의점 살인 사건 '구조변경' 덕에 BGF리테일 '본사' 책임 드러나

[아르바이트 살해 사건이 남긴 것 中] 미국 '제조물책임법' 선도적 논리로 채택…일부 주만 옛 논리 답습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7.04.27 09:08:48

[프라임경제] 아르바이트생이 근무 중 괴한의 공격을 받고 살해당해도 개별 편의점 사장과의 고용관계만 강조하며 도의적 책임 이상을 인정치 않는 편의점 가맹본부가 있다. 이 가맹본부는 그 도의적 책임도 자사 홈페이지에 띄운 모호한 사과 팝업공지 하나로 다했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100일이 넘게 유가족과 노동문제 전문연구기관 알바노조는 이 가맹본부 '본사'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대치 중이다. BGF리테일(027410), 그리고 CU편의점의 이야기다.

좁디좁은 공간, 각종 업무로 정신없는 환경과 항상 현금이 보유돼 있는 가게 상황, 그리고 졸음과 피로로 인해 특히 야간 흉악범에 대처할 능력이 현저히 저하돼 있는 한 아르바이트생의 안전 보장이란 도달 불가능한 목표일지도 모른다. 이는 BGF리테일과 CU편의점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렇더라도 최소한의 비상구는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현재의 편의점 인테리어 패턴, 그리고 이를 공급, 관리하는 편의점 가맹본부의 책임은 인명 사고가 터진 개별 편의점의 점주에 비해 결코 작지 않다는 지적이 여전히 나온다.

고전적인 보호의무, 안전배려의무만으로도 이론 구성이 가능하지만 이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내놓는 보수적 법조인들도 존재한다. 이에 현재 BGF리테일은 법적 책임의 인정이나 유가족에 대한 실질적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도 이미 제조물책임법이 도입돼 있다. 경산 CU편의점 사건처럼 공격을 받고, 몸을 다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다른 논리의 개발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편의점 개업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고, 간섭하며 관리하는 한, 인테리어 문제에까지 제조물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BGF리테일의 반격 포인트? '위험인수'에 의한 면책 주장도 가능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이 같은 제조물책임 성립에 다시 고개를 흔들 수 있다. 제조물책임법이 만능키가 아니라는 비판론은 민사법의 기본적 책임구조를 지나치게 확장한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 점에서 타협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앞의 기사에서 설명한 개발위험의 이론 즉 당대의 기술상으로는 그 이상 안전한 물건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는 면책 근거다.

또 하나는 바로 위험인수에 의한 면책이다. 이 논리는 제조물책임법으로 막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원고들에 대항하려는 사업자들에 의해 깊이있게 연구돼왔다.

CU 한 점포에서 경찰관이 안전 대책 점검을 하고 있다. CU 측은 지난달 말 경산 사건 직후 안전 강화 대책을 대대적으로 집행한다고 밝히고 나섰다. ⓒ BGF리테일

비단 우리나 일본 등 피해자 구제에 대한 연구와 발전이 상대적으로 늦고 제조물책임법의 도입과 운영 역사도 상대적으로 짧은 경우만이 아니다. '소비자들의 천국'인 미국에서도 제조물책임법에 대한 막강한 방패로 이 같은 위험인수 논리가 사용된다.

다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우선 그 박봉을 받고,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이 그 어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극히 비좁은 계산대(일부에서는 옆으로 들어가는 형식도 아니고, 앞의 나무판을 살짝 들어 그 아래로 들어가는 형식까지 운영 중에 있다)에서 모든 공격에 대한 회피 기회를 포기하고 일하라는 뜻인지 규명해야 한다.

BGF리테일이 '그렇다'고 전제 사실을 깔고 이 위험인수 주장을 해야 한다. 양심상 거리낌은 차치하고라도, 자칫 한국 최고의 '블랙기업'으로 보광그룹 전체가 급부상할 수 있는 이슈다.

유가족 측의 재반론 '위험 인지와 실제 사고 발생, 그 이후의 변경'

BGF리테일 측이 이 주장을 무리하게라도 편다 치더라도, 그 다음 재반론의 기회가 있다.

BGF리테일로서도 이 사건으로 인해 비판 여론이 조성되는 사정을 견제할 필요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말 회사 측은 '안심 편의점'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각종 범죄 예방 관련 점검을 진행한다고 선언했다. 전국 1만1000여 매장을 대상으로 하고, 특히 매장 근무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 대한 우려가 커짐에 따라, 112 핫라인 신고 시스템 작동 여부와 폐쇄회로(CC)TV 해상도, 외부에서의 편의점 계산대 주변 시야 확보 등 셉테드(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범죄 예방 환경디자인) 기준 준수 여부도 확인한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바로 이 지점,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지난 살해 사건 후 사건 장소인 경산 편의점의 구조와 그 변경 등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 법리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오하이오주 대법원은 프레스기의 안전 문제와 설치 결함, 그 이후 설계 개선 상황에 대해 1994년 2월 다룬 바 있다. 법원은 문제의 프레스기 사건 이후 설계가 바뀐 점을 주목했다.

물론 오하이오주에는 "사고가 발생한 후에 만약 사고 발생 전에 행했더라면 사고의 발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개선책을 실시하는 경우, 이 사후의 개선은 당해 사고에 과실 내지는 비난할 만한 행위가 있었음을 보이는 증거로 쓸 수 없다"는 취지의 오하이오주 증거법이 있었다. 이는 연방 증거규칙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러면 왜 판결은 원고의 책임을 인정했을까? 기계의 문제점을 자신들이 수긍하고 설계 수정 책임을 명백히 인정한 경우에까지 이 규칙을 적용하고, 배상을 하지 않도록 판결하는 것은 정의에 어긋난다고 오하이오주 대법원은 판단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이 규칙은 과실을 문제로 하지 않는 제조물책임소송에 있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제조물책임법 도입의 기본정신이 무과실책임주의이므로, 과실책임주의 틀에서 만들어진 증거법 규정에 앞선다고 지적하면서 새 지평을 연 것이다.

물론 펜실베니아나 미시간 등 일부 주에서는 이 같은 오하이오식 논리에 반대하고, 기존의 논리를 고수한다. 하지만 이 논리가 미국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2015년 7월 부산 CU 아르바이트생 '절규' 귀담아 두었다면…

한 변호사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오하이오주 논리를 제조물책임법 운영에 받아들일 여지가 더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우리 법상으로는 미국과 달리 과실 혹은 결함의 증거에 대한 특별한 법적 규율이 존재하지 않는다…모든 자료를 기초로 자유롭게 판단하여 심증을 형성할 수 있는 자유심증주의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사고 후의 개선을 그 개선 전의 제조 등에 대한 결함 내지 과실을 인정할 증거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증명력에 대해서는 (개별 사건의 담당 변호사의 증거 제출 능력에 따라) 별개의 문제로 다뤄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바노조에 따르면, 경산 사건의 경우 CU 내부는 보수 작업이 있었다. 앞서의 가맹본부 차원의 안전 보강 조치 역시도 문제로 삼을 수 있다.

알바노조가 경산 사건 이후 구조 변경에 대해 사진을 찍어 공개했다. ⓒ 알바노조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2015년 7월 부산의 한 CU 매장에서 아르바이트생이 흉기를 든 강도의 습격을 당했다. 좁은 계산대로 밀려들어가 어떤 짓을 당해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CCTV 등에 찍혀 공개된 바 있다. 이는 이 아르바이트생이 기지를 발휘, 방범벨을 눌렀다고 강도에게 겁을 줘 그가 달아났기 때문이었고 그 소식이 일부 언론에 보도됐기 때문.

좁은 공간에 밀려들어간 아르바이트생. CU 매장의 위험성, 즉 강간이나 살해 등 최악의 가능성은 이미 2015년 여름 이 사건에서 확인된 것이다. ⓒ 부산 연제경찰서

강간이나 살인 등 피해를 입는 데 좁은 계산대 구조가 큰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이 사건에서 당연히 경찰, 그리고 해당 편의점 가맹본부는 인지했을 것이다.

그러나 BGF리테일은 이 사건에서 얻은 교훈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듬해 경산에서는 사소한 시비 끝에 잔인한 한 손님에 의해 아르바이트생이 좁디좁은 계산대에 갇혀 난자당했다. 그럼에도 이제서야 안전과 방범 강화를 논의한다고 한다.

제조물책임법상 책임이 성립하지 않는지, 또 이번 사건이 계산대 구조로 일어난 경우가 아니더라도 그간 일어난 혹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에 대해 계산대 구조로 인해 피해가 가중된 것은 아닌지 규명 노력이 필요하다. 이는 앞으로 우리나라 법조인들은 물론 민사법 연구자들이 풀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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