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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벤토탐방] 가성비 만점 '노리벤토'

"벤토 알면 문화 보이고 문화 알면 일본 보인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 bsjang56@hanmail.net | 2017.04.27 11:06:47

[프라임경제] 김(노리)은 양질의 단백질과 철분·비타민이 풍부해 피부에 좋고 빈혈 예방에 도움되는 해조류다.

홋카홋카테이 노리벤토 734㎉. ⓒ 홋카홋카테이 홈페이지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적합하지만, 세계적으로 김을 반찬으로 상식(常喰)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한국과 일본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는 신라시대부터 김을 밥상에 올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지역 특산물로 진상돼 임금님 수라상에 빠지지 않는 메뉴였다. 

지난 1650년경 전남 광양의 김여익에 의해 양식법이 고안돼 일반대중에 보급되기 시작한다. 김이라는 명칭도 이 사람의 성씨에서 따온 것이다. 

최근에는 한류 문화가 확산되며 김은 이제 한국을 대표하는 반찬 중 하나가 됐다. 들기름을 발라 바삭하게 구어 내는 우리 전통조리법은 세계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는다.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 시기 김이 나타난다. 나라시대(710~794년)초기 문헌에 노리(乃理)라는 기록이 나온다. 그 후 에도시대 중기(1700년대)에 이르러 김 양식법이 등장한다. 우리보다 50년쯤 늦게 대중화된다. 아마도 당시 문물이 앞선 조선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한편 중국에서도 김을 양식하고 있으나 육류중심 식문화 때문인지 아직 대중화와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와비사비(詫び寂び)'라는 좀 어려운 단어가 있다. 일본인 특유의 검소하고 조용한 미의식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는 '빈약하고 부족한 가운데 마음의 충족을 찾아내는 의식'이다. '노리(김) 벤토'의 성격을 설명할 때 이보다 더 적합한 용어를 찾아내기 어려울 것 같다. 

노리 벤토를 흔히 노리벤이라 부르는데, 이 말에는 어떤 격식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서민들의 고집과 친근감이 스민 것으로 보여 진다. 

우리나라 김밥 같은 '노리마키'와는 형태나 맛이 다르다. 노리벤은 용기에 밥을 펼쳐 담고 김을 덮은 후 그 위에 반찬을 올리는 벤토다. 

이때 '이타노리(板海苔)'라는 두툼한 조미 김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위에 흰 생선살 프라이와 어묵튀김을 올리는데, 이 세 가지 식재가 노리벤의 포인트다. 

소박하지만 영양가 풍부하고 반찬도 남기는 일이 없는 실용적 벤토다. 지역이나 점포에 따라서는 밥과 김 사이에 카츠오부시 같은 양념을 첨가하기도 하는데 모두 해산물 가공품이다. 

노리벤은 일본 벤토 체인의 효시라 할 수 있는 '홋카홋카테이(ほっかほっか亭)'가 1980년을 전후해 출시한 메뉴다. 이 벤토는 강산이 몇 번 바뀌는 동안에도 변함없이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킨다. 외형이나 맛도 초기 그대로다. 

노리벤의 강점은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데 있다. 원조 표준형이 300엔대 초반이고 반찬을 몇 개 추가해도 대부분 400엔이 넘지 않는다. 반면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아 국민 벤토로 불려 손색이 없다. 

특히 김 밥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이 먹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전국 어디를 가도 노리벤이 없는 곳은 없다. 원조 홋카홋카테이 체인점은 물론, 경쟁사나 편의점에도 빠짐없이 진열되는 메뉴다.

'노리벤 대수사선(大搜査線)'이라는 책을 쓴 '타케다(竹田あきら)'는 노리벤을 "회의나 모임에서 흔히 먹는 마쿠노우치가 비싸다는 느낌이 들 때 주저 없이 선택하는 벤토다. 애들이 유아용을 먹으며 즐거워하듯, 어른들이 좋아하는 어린이 벤토"로 묘사한다.

그는 또 "칸 없는 용기에 밥과 김 그리고 반찬을 포개 놓으면 노리벤, 반찬 칸이 따로 있으면 노리 벤토"라며 정체성에 대한 정의도 내리고 있다. 

보통 노리벤토는 노리벤에 카라아게나 연어구이 등이 추가돼 가격이 비싸고 외관도 마쿠노우치와 유사한 경우가 많다.

노리벤은 일본 음식으로는 드물게 남성 이미지가 강한 벤토로 분류된다. 맛이 담백하고 군더더기가 없어 남성들이 좋아한다. 반면에 모양이 투박하고 거칠어 보인다. 

한때 편의점 미니스톱에서 햄버거와 우엉을 추가한 여성용 노리벤을 출시하기도 했지만, 그다지 이목을 끌지 못하다가 슬그머니 뒷자리로 밀려났다.

르포작가 '이시하라(石原たきび)'는 홀로 공원에 앉아 노리벤을 먹으며 그 소감을 다음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안에 우주와 철학이 들어 있다. 황금 밸런스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세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빠지면 균형이 무너진다. 밥과 반찬 사이에 놓인 김이 '식사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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