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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홍준표와 보수의 슬픈 자화상

 

김희정 세종대 겸임교수 | press@newsprime.co.kr | 2017.05.07 10:55:22

[프라임경제] 홍준표 후보가 며칠 전, 김종필 전 총리를 찾았다. 홍 후보는 김 전 총리로부터 "얼굴에 티가 없어…대통령 됐으면 좋겠다"는 덕담을 들었다. 막말과 궤변을 수시로 뱉어내는 홍 후보가 티 없는 얼굴이라니.

사실, 홍 후보가 자서전에 쓴 성폭력 모의 전력에 비춰보면 그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지는 않은 것도 같다. 막나가는 후보의 티 없는 얼굴,  홍 후보는 가히 한국판 '도리안 그레이'라 할 만 하다.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이라는 소설은 외모가 뛰어난 주인공 도리안 그레이라는 청년은 한 화가가 그린 자신의 아름다운 초상화를 보고 스스로 매료된다.

그리고 이 모습이 유지된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다며 은밀하게 보관한다. 도리안 그레이는 한 쾌락주의자의 궤변에 홀려 순수함을 잃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게 되는데, 웬일인지 그 추한 행실이 얼굴에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은밀히 보관한 초상화가 추하게 늙어 갔고, 도리안 그레이는 내면의 파탄을 견디다 못해 결국 흉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는다는 내용이다.
 
인간의 내면은 어떤 식으로든 외모와 언행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시대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의학이 발달해 돈만 있으면 누구나 도리안 그레이가 될 수 있다. 피부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각종 주사들을 이용한다면 피부 노화는 쉽게 막을 수는 것이 현실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홍 후보는 눈썹 문신을 했다. '홍그리버드'라는 별명은 어느 날 갑자기 진해진 눈썹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속된 말로 그가 '티 없는' 얼굴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현대 의학의 수혜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는 의구심이 든다. 그래서일까. 홍 후보의 막말은 거침이 없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TV토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버릇없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버릇없다'는 단어는 연장자가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을 꾸짖을 때 쓰는 말이다. .

자신보다 나이가 적더라도 성인에게는 쓰지 않는 말이다. 성인이 듣기에는 인격모독적인 어감이 있기 때문이다. '너는 아직 덜 자란 상태에서 좋은 습관을 익히지 못했으므로 좋은 버릇을 들이도록 훈육 받아야 하겠구나.'라는 뜻의 함축이다.

즉, 응징을 예고하는 말이다. 특히 남성 간에 '버릇없이…'라고 할 때는 이제 말로 하지 않고 주먹을 쓰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와 다름 아니다. 문 후보가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면 우리는 꽤 험한 장면을 목도할 뻔했다.

홍 후보는 심상정 후보에게 '배배꼬였다'고 하고, 유승민 후보에게는 '비열하다'고 했다. 이것은 토론이 아니라 인신공격이다.

상대 후보의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아무 단어나 내뱉는 것은 대통령 후보가 토론장에서 할 행동이 아니다. 물론 국민들이 토론장에서 매너 좋은 신사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품격과 금도를 아는 후보를 국민은 원하고 있다.

상대방의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주장이 틀렸음을 논리적으로 공박하는 것이 토론이다.

홍 후보는 국민과 직접 만나는 유세장에서 자신의 장인어른을 '영감탱이'라고 했다. 26년동안 장인을 집에도 못 오게 했는데 어쩌다 장인이 집에 들르면 '저 영감탱이 나가면 들어온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자랑을 했다.

그런데 정작 홍 후보의 아내 이순삼 여사는 TV 찬조연설에서, '남편은 집에서는 한없이 부드럽고 착한 남자'라고 말했단다.
장인어른을 집에도 못 오게 하는 남자를 한없이 부드럽고 착한 남편이라니. 둘 중 한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막말을 뱉어내는 홍 후보의 초상화가 어디서 고통 받으며 추하게 변해갈지 돌아봐야 한다. 당분간 홍 후보의 얼굴은 티가 없이 보일지라도, 한편에서 일그러져갈 우리의 초상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 대표적인 세대는 자라나는 아이들이다. 스펀지 같은 아이들은 '리더가 되려면 저 정도 파괴력은 있어야 하나보다' 생각할지 모른다.

차후 초등학교 회장 선거에 나간 어느 아이는 '담탱이(담임교사를 낮춰 부르는 속어)가 버릇없이 굴면 제가 손 좀 보겠습니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깔깔대고 한바탕 웃어젖힌 학생들은 '담탱이'가 맞으면 속 시원하겠다며 기꺼이 한 표를 던질지도 모른다.

일그러질 우리의 초상 중 취약한 계층은 빈곤층이다. 삶의 무게로 짓눌린 심신을 막말의 일탈로 벗어버리고 싶을 것이다. 고시까지 패스하고 도지사까지 지낸 사람이 저럴진대.
 
어르신 세대도 예외일 수 없다. 관심과 애정으로부터 소외된 어르신들은 홍준표 식 막말을 통해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어질지 모른다.

사실 대통령 후보의 막말로부터 자유로운 국민은 없다. 홍 후보는 막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가 막힌 수사(修辭)와 프레임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온갖 막말과 궤변에도 두 배로 상승한 지지율이 그것을 증명한다.

필자조차 홍 후보의 시장유세를 듣고 감동했던 적이 있다. '까막눈이 엄마를 둔 아들도 대통령 한번 해보입시다'하고 유세하는데 가슴이 뭉클했다.

자신의 어머니를 문맹이라 고백하고 모성애가 강한 이 땅의 어머니들에게 동정표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속지 말자. 그는 더 이상 무식하고 가난한 이의 아들이 아니다.

20억 이상의 자산가이며 두 아들 모두 강남에 아파트를 가진 부자 아빠다. 큰아들은 재산공개 마저 거부하고 있다. 홍 후보는 여성에게 걸핏하면 '집에 가서 애나 보라', '맞는 수가 있다'고 하는 폭력적 남성우월주의자이다.

홍 후보의 막말과 그로인한 폐해는 지면에 도저히 열거하기 힘들다. 그로인한 사회, 문화적 손해를 비용으로 계산하면 얼마나 될까. 솔직히 측량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땅의 보수가, 혹은 이 땅의 장년층이 홍 후보에게 적지 않은 지지를 보내고 그로 인해 상당한 정치적 지분을 넘긴다면, 국가적 손해는 치명적일 것이라는 점이다.
 
주요 정치 지도자의 언어수준으로 인해 국민의 정서가 황폐해 질 것이며, 정치수준은 퇴락하고, 국격은 손상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내면을 돌아볼 조금의 시간이 우리에게 허락돼 있다. 투표장으로 향하기 전, 막말 잔치를 끝내고,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성숙한 보수의 자화상을 기대한다.

김희정 세종대 겸임교수 / 전 K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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