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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노량진에서 숭인동 자주동샘을 향해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7.05.10 09:19:04

[프라임경제] 단종을 폐하고 끝내 사사한 뒤 세조가 집권한 것은 많은 비판을 받았다. 왕실조차 잘못된 정변을 바로잡는 문제를 놓고 일찍부터 절차에 착수했는데, 결국 숙종 이후부터 본격적인 복권 작업들이 이뤄질 정도였다.

계유정난을 둘러싼 여러 이야기 중에 의거를 순위 매기자면 사육신의 이야기가 첫손에 꼽힐 것이다. 역적으로 처형당한 이들의 시신을 위험을 무릅쓰고 수습해준 이가 생육신 중 한 사람인 김시습이었으며, 사육신과 김시습의 정절을 기리는 공간이 오늘날에도 노량진 쪽에 있다.  

계유정난의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는 폐비가 된 단종의 비 정순왕후였는데, 왕비에서 군부인, 결국 관노비 신분으로 강등돼 한많은 삶을 살다갔다.

정순왕후는 노비 신분이 된 후 서울 숭인동에 살았다고 하는데, 이 동네는 주로 왕실 여인들이 들어가던 절인 정업사 부근이라 한다.

함께 궐 밖으로 나온 궁녀 한두 명과 염색으로 호구를 해결했다고 야사는 전하는데, 샘물에 옷감을 담그면 자주색이 저절로 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가끔 유배를 가 살해당한 단종을 생각하며 곡을 했다고도 한다. 

지금은 별세한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는 '나무야 나무야'에서 그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궁중에서 추방당한 그녀는 서울 교외의 초막에서 동냥과 염색업으로 한많은 생애를 마친다. 그녀의 통곡이 들려오면 마을 여인들도 함께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동정곡(同情哭)을 하였다고 한다."

쿠데타에 저항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이들, 그리고 이를 기려 역시 목숨을 걸고 나선 '저항정신'이 노량진에 남아있다면, 대중들이 서슬퍼런 새 집권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도 안타까움의 '인지상정'을 표시해준 '공감대'는 숭인동 자주동샘 쪽에 남아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노무현의 친구에서 5000만의 친구가 됐다'고 어느 신문이 표제를 뽑은 것처럼 국민의 벗이 되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역대 최대 표차를 기록했다고 일부에서는 강조하지만 그 반대편에서 보수 결집과 부활 신호탄을 쏘아올린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득표율을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중에 꺾였지만 '문재인만 아니면 된다'는 심리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쪽으로 집결했던 표심과 이들이 만들어 준 문-안 사이의 지지율 추격전의 숨막히는 경험도 두고 곱씹을 일이다.

이런 모든 문제는 바로 상대와의 갈등을 승리를 위한 '수단'으로 정당화하고 나만 옳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스타일의 '관념'으로 뭉친 새 대통령 당선인의 지지층 속성이 빚은 자업자득이다.

전직 대통령이 궁지에 몰려 자살을 하는 상황에 대한 분개, 개혁의 노력이 전면적으로 부정당하는 억울함이 지지층들을 결집시키고 새 정권을 창출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을 모두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들에게 선뜻 전폭적인 지지를 보여주지 않는 모든 이들을 적폐로 단정하는 방식으로는 '그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 

지금 친문 세력 중 일부는 자주동샘의 공감대를 두고 그것이 바로 조선시대의 촛불정신이고, 세월호 진실의 인양을 바라는 국민적 염원이고, 정권 교체에 표를 보탠 수많은 민초들이라고 비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꼭 그렇게만 볼 것은 아니다. 자주동샘에서 정순왕후의 흐느낌에 함께 동정곡을 하고 먹을 것을 보태주던 숭인동 주민들 중에는 분명 이씨들 사이의 정권놀음, 양반들 사이의 변고에 아무 관심이 없는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앞서 그들의 그런 심경이 빚어낸 뭐라 간단히 말하기 어려운, 그러나 아름다운 행보를 인지상정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작은 이야기를 모두 세세히 들여다 보고 아름답게 여겨 기록하는 신영복 선생 같은 마음이 과거 일명 민주화운동가들, 진보세력에게는 있었다. 

지금 극성 문빠라고 비판받는 이들은 이런 점을 잠시 잃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자는 결기를 다지던 노량진 마인드에서 벗어나 자주동샘을 둘러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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