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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칼럼] 어떤 엄마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선현주 코치 | hjsunlab@gmail.com | 2017.05.11 09:13:19

[프라임경제] 몇 해 전 이야기다. 거실 바닥에 앉아서 오늘의 운세를 위해 고개를 박고 화투 패를 떼고 계시던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요, 어떤 엄마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당시 첫 손주가 첫 아이를 얻어 막 증조 할머니가 되셨던 엄마는 번쩍 패에서 고개를 들더니, 오른 손을 불끈 쥐며 '불의에 굴하지 않는 엄마'라고 하셨다.

잠시 여기서, 엄마를 대신해서 '화투가 치매예방에는 그만'이라는 의견을 밝혀 둔다.

엄마의 주장은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나는 바로 형제들에게 엄마의 말을 전했다. 다들 "그래, 그래 울 엄마가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이 확실하시지"하며 자신들이 기억하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작은 언니가 국민학교 졸업하던 날 교사에게서 사과를 받았던 사건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언니가 6학년 때, 입에 욕을 달고 살던 교사가 있었다. 그 교사 반에서 학생회 회의가 있던 날, 주제가 '고운말을 쓰자'였다. 언니는 손을 들어 고운말은 선생님들도 써야 한다고 했다.

다음날 그 교사가 언니네 반 조회 때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와서, 언니를 나오라 하더니 담임 앞에서 주먹으로 얼굴을 쳐서 언니가 붕 날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 교사는 자기는 욕을 한 게 아니라고 일장연설을 하고 나갔다.

졸업식 날 행사를 마치고 집에 와서 학교 추억을 얘기하다, 이젠 괜찮겠지 싶어 그 사건을 엄마한테 얘기했더니 엄마는 바로 언니 손을 끌고 학교로 쳐들어 가셨다. 5분 거리에 있던 학교라 교사들이 퇴근 전이었다.

엄마는 먼저 담임에게 따져서 사과를 받고, 그 문제의 교사를 찾아오라 했다.  그 교사가 잘못했다고 엄마에게 사과를 하니, 엄마는 나 말고 우리 딸한테 사과하라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나도 한때 교사를 했다며, 교육자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일장훈시로 상황을 끝맺었다. 물론 그 후 언니는 중고등학교 생활을 통틀어 학교에서 맞은 얘기는 절대 엄마한테 안 했다고 한다.

엄마에게 그런 질문을 해대던 시절, 나는 첫 코칭 공부를 마치고 실습시간을 채우기 위해 주위 사람들에게 고객이 되어줄 것을 강권하고 있었다. 당시 흔쾌히 고객이 되어준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코치가 어설퍼서 코칭 환경도 안 갖추고, 고객의 코칭 목표설정도 도와주지 못하던 때였다. 그러나 어설프게 시작했던 ‘코칭적’ 대화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사람들의 감춰진 소망을, 그리고 알려지지 않았던 개인 비사(秘事)를 듣게 해준 고마운 계기가 되었다.

이어서 던진 질문은 "엄마는 어렸을 때 꿈이 뭐였어요?"였다. 돌아온 답변은 '메조 소프라노'. 이것 또한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성가대 봉사를 하는 언니가 노래하기를 좋아했던 엄마의 유전자 덕을 보는 듯 하다.

그리고 또 물었다. "엄마가 내 나이라면 뭘 해보고 싶으세요?"

돌아온 답은 여행이었다. 엄마가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 또한 처음 듣는 얘기였다. 좋아하는 게 확실하셨던 아버지와 달리 엄마는 본인이 뭘 좋아한다고 스스로 얘기를 하신 적이 없었다.

하얀 얼굴에 검은 뿔테 안경을 끼셨던 아버지는 핸섬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두 번의 혈서를 쓴 독함을 지녔다고 한다. 아직 살아 계셨다면, 코칭을 핑계로 아버지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었을 텐데.

긴 연휴로 즐거웠던 5월 첫 주에 청년이 된 조카들을 포함해서 지방에 있는 언니네까지 엄마를 중심으로 뭉쳤다. 얼마 전까지 건널목을 뛰어 건너시던 엄마가 같이 걷는데 자꾸 뒤쳐지는 걸 보며, 몇 년 전 엄마와 나누었던 위의 '코칭적' 대화가 생각났다.

만일 여러분의 부모님 중에 한 분이라도 아직 살아계시다면 한번쯤 '코칭적' 질문을 해보길 권한다. 어설퍼도 괜찮다.

'어떤 엄마, 아버지로 기억되고 싶으신지?', '어릴 적 어떤 꿈을 가지셨는지?', '지금 내 나이로 되돌아온다면 뭘 하고 싶으신지?'

질문은 아라비안 나이트의 '열려라, 참깨' 주문 같이, 스르르 보물창고의 문을 열어 그 안의 반짝이는 보석, 부모님의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근데, 정작 나는 어떤 딸로 기억되고 싶은 거지?

선현주 코치 / (현) 코칭경영원 파트너코치 / 썬랩(주) 대표 / (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산학협력실장·겸임교수 / 저서 <취업 3년 전> / 공저 <그룹코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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