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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벤토탐방] 히가와리 벤토와 '타마고야'

"벤토를 알면 문화가 보이고, 문화를 알면 일본이 보인다"

장범석 칼럼니스트 | bsjang56@hanmail.net | 2017.05.14 12:39:17

[프라임경제] 회사원들에게 점심시간은 소중하다. 잠시 업무를 중단하고 동료들과 환담하며 식사를 나누는 즐거움은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와 다른 점은 일본 회사원 과반수가 사무실에서 벤토를 먹는다는 것이다.

타마고야의 히가와리 벤토 6종 중 하나. ⓒ 타마고야 홈페이지

지난해 6월 '신세(新生)'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회사원 35%가 출근할 때 벤토를 준비해 오고, 20%는 외부에서 구입한다. 사원식당을 이용하거나 외식하는 비율은 합해서 36% 정도다. 

450만 회사원이 밀집한 토쿄의 경우 근무일마다 외부 벤토 90만개가 사무실로 유입된다는 계산이다. 우리나라 전국에 산재한 총 3만여 편의점이 한 곳당 30개를 팔아야 맞춰지는 수치다. 우리 감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이다. 

외부에서 벤토를 조달하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체인점이나 편의점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이때는 보통 대표 한 두 사람이 다른 동료 것까지 일괄 구입한다. 

어떤 때는 실물을 싣고 사무실로 찾아오는 왜건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가장 보편적 형태는 배달전문 업체를 통해 공급받는 것이다. 

일본 회사원들이 점심용으로 구입하는 벤토 대부분이 '히가와리(日替わり)'다. 이것은 특정한 벤토의 이름이 아니다. 고정고객에게 매일 메뉴를 바꿔주는 '오늘의 벤토'다. 영어로는 'today's menu lunch box'라 번역된다. 히가와리 메뉴는 보통 일주일이나 월 단위로 사전에 고지된다. 

사람들이 히가와리를 선호하는 이유는 식사시간이 절약되고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또 집 밥 못지않게 볼륨이 풍성하고 영양 밸런스가 좋다는 것도 인기 요인의 하나다. 

여성들은 칼로리가 억제된 '헤루시(healthy)' 히가와리를 즐겨 선택한다. 보통 아침 10시까지 주문하면 점심시간에 맞춰 사무실로 갖다 준다. 

토쿄에 '타마고야(玉子屋)'라는 오피스 벤토 전문업체가 있다. 이 회사는 매일 한 가지만을 공급하는 데, 450엔이라는 가격이 믿기지 않을 만큼 내용이 알차다. 고급 전문점 벤토에 견줘도 전혀 손색이 없다. 

타마고야가 점심으로 배달하는 벤토는 자그마치 1일 평균 6만5000개다. 짧은 점심시간에 이렇게 많은 양을 오차 없이 배달하는 것은 직원들의 부지런한 발과 예측력 덕분이다. 

타마고야 벤토 용기는 1회용이 아니다. 직원들이 빈 용기를 회수하기 위해 오후에 한 번 더 사무실을 방문한다. 이때 먹다 남긴 음식을 살피고 익일 발주예정 정보를 체크한다. 

그들이 수집하는 정보는 가령 내일은 월초 금요일이니 몇 개, 회의가 있으니 몇 개, 비가 올 것 같으니 몇 개가 될 것 같다는 다소 막연한 내용이다. 이러한 정보에 경험칙(經驗則)을 대입해 납품수량을 예측하고 미리 제조에 들어간다. 당일 주문을 받아 움직여서는 도저히 타이밍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벤토가 완성되면 가장 먼 곳부터 배달에 들어간다. 일정 간격을 두고 2번 차량이 출발하고 곧 3번 차량이 그 뒤를 잇는다. 주문 마감 전 출발하는 차량은 예측치보다 약간 적은 양을 싣고 떠난다. 주문이 마감되면 차량별로 부족 수량이 나온다. 

그 부족분을 같은 구역의 뒤 차량이 메워준다. 메워준 차량이 부족하면 다시 뒤나 옆 차량이 채워주고, 마지막에는 총정리 차량이 출동하는 시스템이다. 잘 짜인 한편의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한다. 

이것이 업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타마고야의 독보적 배달 노하우다. 이 방식은 식품업계 최대 두통거리 폐기율을 0.1%까지 끌어 내리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지난 2015년 8월12일자 마이니치 경제프리미어는 "한 방송국이 취재하던 날, 6만3100개 예상에 6만3126개를 팔았다"며 타마고야의 신기에 가까운 예측력에 혀를 내둘렀다. 

빅 데이터 같은 IT 기술 도움 없이 오직 고객지향 마인드를 바탕, 발로 만들어 내는 놀라운 결과에 많은 매스컴이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1975년 창립해 종업원이 600명에 이르는 타마고야는 정확한 수요예측과 원가절감 공로로 '하이서비스 일본300선 상'을 2회나 수상했다. 

이 회사는 경영이념이 독특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업에 실패하는 비결'이라는 부제에서 보듯 반어법적 표현을 사용한다. 자신감 없이는 내세울 수 없는 구호다. 

총 12개 이념 중 대표적 몇 가지를 소개한다. 외식뿐 아니라 다른 분야 경영자들도 한 번쯤 음미해 볼만한 내용이다. 다음 예시한 이념에 순응하면 성공과 멀어지고, 거스르면 성공에 가까워진다. 

'좋은 물건은 가만히 있어도 팔리니 안심할 것'을 비롯해 △고객은 자기중심적이라 생각할 것 △장사꾼에게 인정은 금물이라 생각할 것 △싼 임금으로 사람을 쓸 것 △줄 돈은 가능하면 늦출 궁리를 할 것 등.

장범석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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