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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영웅문'의 시작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발탁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7.05.17 17:22:28

[프라임경제] 1990년대 중반의 일이다. 아직 IMF 위기를 맞이하기 전, 선진국으로의 도약은 멀지 않은 것 같고, 민주화도 이뤄냈으며 한창 자신감이 충만하던 때의 얘기다. 당시 청주대 법학과에서는 법철학 참고 교재로 '영웅문'을 쓰겠다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행정법 연구자이던 박모 당시 청주대 교수는 법철학이 인간사의 각종 분쟁과 제도와 인간의 투쟁, 기존 질서에 대한 도전과 응전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 과목이냐는 점에 착안했다. 그는 그래서 동양 소설 중 영웅문을 법철학 수강생들에게 한 차례 읽거나, 하다못해 당시 이 작품이 인기리에 무협영화화된 바 있으니 비디오로라도 빌려보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다.

대체 '무협지'가 어떻게 학교 교재로 사용 가능한지 논란이 컸던 게 아니냐, 중도하차한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할 독자들이 많겠으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미국 유수 대학 중 일부도 이 영웅문을 법대 참고교재(인간의 갈등 국면과 기존질서와의 대립)로 한다는 점을 감안해 큰 탈 없이 교재 활용이 가능했다 한다.

이 대목에서 한 학자의 얘기를 하려 한다. '김상조' 격렬한 갈등과 재벌과의 논쟁을 상정하지 않고는 떠올리기 힘든 이름이다. 서울의 대학에 진출한 학자라면, 무릇 세칭 명문대에 적을 두고 싶어하게 마련이다. 그런 끝없는 욕심과 주류사회에의 편승 욕구가 인간 세상을 발전시키는 '기본' 동력임을 많은 독자들은 아실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한성대에 자리 잡은 이래 논문을 쓰며 교과서를 집필하고 주류 사회가 좋아할 만한 강연에 얼굴을 내미는 대신, 재벌 개혁을 외치는 수많은 자리에 학술적 근거를 대줬다. 심지어 그런 노력의 동반자로 함께 뛰어주거나, 혹은 앞서 견인하거나 독촉하기까지 했다. 혹은 아예 창조적으로 일을 벌이는 상황을 감당해왔다.  

박사 학위를 받은 모교 서울대에 교수로 돌아가고픈 욕심이 그에게 애초 한톨도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초장에 잘라내고 저런 파부침정 행보를 일관했으니, 그런 일이 어디 쉬우랴!

그런 그가 연구비 한푼 풍족하게 쓰거나 마음놓고 좋은 환경을 누리지 못했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지금 보수 진영의 논리에 찬성해 글을 쓰는 경제, 경영 혹은 법학교수들 전반을 김 교수만 못하다거나 혹은 그에 비해 인격이 떨어진다는 식으로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보수적이고 친자본적인 색채를 갖는 소신도 분명 있고, 예컨대 친전경련 학술 논의도 분명 건강한 학문적 발전과 토론을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다만 우리는 어용 학자와 어용 학술 이론만 경계하면 된다).

다만 '김상조 스타일'의 학문이 데스밸리에 돋아난 난초처럼 얼마나 위태롭게 생존 투쟁을 하면서도 한국 사회에 놀라울 정도로 에너지를 공급했는가를 언급하고자 한다.

영웅문을 읽으며 법률 논점을 찾아 토론하는 이색적인 사제들의 모습처럼 대단히 이례적인 경제 연구자의 모습을 김 교수는 펼쳐왔다. 

김상조라는 경제학자,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감히 대기업을 논박하는 모습을 다양하게 진행해온 것을 기억한다. 그가 우리나라 경제 연구, 재벌 논의, 그리고 한국 사회의 미래상 검토에 제시해온 점을 많은 기자들이 떠올릴 것이다.

그래서 기자들은 프리드먼이나 하이예크나 프리드먼까지는 몰라도(아, 기자들이 학문적으로 대단히 약하다고 해도 케인즈나 스미스나 슘페터 정도까지는 '이름은' 안다), 김상조 그 이름 석자는 인지한다.

그와 견줄 수 있는 일 많이 한 경제학자가 누가 있을까, 혹은 실마리를 던져준 이가 누굴까. 이런 물음에 거론될 이는 조순, 이준구 등 원로학자 몇에 장하성 등 일부 석학만 있을 정도라 하면 지나친 헌사일까.

그런 김 교수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이끌 사령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오늘 임명됐다. 권오승 교수가 서울대 법대 대표 교수였던 시절, 당시 민법학자로는 이례적으로 '경제법' 교재를 펴내면서 공정거래법 연구의 뼈대를 세우는 외도를 한 바 있다. 그는 이 공로로 나중에 공정거래위원장을 한 적이 있다. 권 교수 발탁에 견줄 만한 이번 김 교수 임명을 기념하고자 몇자 적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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