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비정규 제로정책…"아웃소싱산업 죽이는 정부 일방통행"

'규제·감독 실패' 비정규직 문제로 덮어…반성·성찰이 먼저

이준영 기자 | ljy02@newsprime.co.kr | 2017.05.26 10:57:40
[프라임경제] "우리도 정규직 되는 건가?" "예? 여사님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요즘 다들 정규직 된다고 난리니까 우리도 혹시 되나 해서…. 안되면 말고, 그래도 정규직 되면 지금보다 더 좋아지는 거지?"

서울시내 모 대학교 청소근로자가 용역업체 담당자에게 지나가는 투로 던진 말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정규직 전환이란 부푼 희망이 번지며, 사회 각 계층에서 이 같은 의견들이 접수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 제로정책'으로 인해 아웃소싱 산업의 존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업계 내 번지고 있다.

문 대통령의 1호 지시로 국가일자리 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일자리 상황판'이 집무실에 세워지는 등 관련 정책이 속도를 내면서 업계 불안감은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대통령 집무실에 세워진 일자리 상황판을 문재인 대통령이 설명하고 있다. ⓒ 뉴스1


기획재정부는 지난 17일 공공기관 주요 10곳의 기관장과 회의를 진행하고 향후 정규직 전환을 위한 실태조사와 대책을 논의했다. 인천공항은 1만여 명의 비정규 인력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밝힌 가운데 타 기관의 행보에도 귀추가 주목된다. 

당시 참가했던 공공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모든 기관이 선뜻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진 못했다. 전환형태, 예산, 구체적 일정 등 기관별로 온도차를 보여 향후 내부 논의를 거치겠다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 곳도 있다는 것.

◆ 점점 강력해지는 정책, 기업들은 따를 수밖에…

2017년 3월 말 기준 중앙정부부처 산하 332곳 등 공공기관 355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는 42만9402명으로 집계됐다. 이 중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소속 외 인원)근로자는 8만3328명으로 19.4%에 달한다.

문 정부의 비정규 대책은 △사용자유 제한 △상시지속 일자리 정규직 고용 △상시지속 일자리 정규직 전환(간접고용 포함) △무기계약직 불합리 처우개선 △정규직 전환 지원 확대(6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비정규직 고용부담금제 도입 △고용형태공시제 개선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에 인천공항을 필두로 한전, 우정사업본부, 서울대, 대구시, 광주시, 세종시, 인천시, 경상북도, 충청남도 등 주요 공공기관 및 지자체가 정규직 전환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한국씨티은행, IBK은행, SK브로드밴드, 롯데 등도 대규모 정규직 전환을 발표했다.

민간분야의 정규직 전환은 비용 문제로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으나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고용부담금제' 공약에 개정된 고용형태공시제까지 맞물리며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는 모양새다.  

올해 개정된 고용형태공시제는 기존과 달리 간접고용의 직종과 업무까지 표기해야한다. 지난 1월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밝힌 것처럼 기업이 간접고용을 사용하는 목적까지 알려야 해서 기업의 부담이 상당하다.

경영계는 전 세계에 기업의 근로현황과 형태를 공개하는 것은 우리나라뿐이라고 강력히 반발하면서, 근로형태는 기업 운영 전략으로 이를 정부에서 강제로 공개시키는 것은 억지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오히려 더 강력하게 개정됐다. 

◆"비정규직 개념부터 바로잡아야"

업계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비정규직 고용부담금제'다. 발표된 일자리위원회 보고서 초안을 살펴보면 300인 이상 기업체를 대상으로 비정규직 고용률 11%를 넘기면 부담금을 부과하겠다는 것.

기본 부담금을 7000만원으로 설정해 최소 7000만원에서 1억780만원까지 부과될 비정규직 고용부담금은 기업의 비정규직 고용 압박을 더욱 옥죈다.

경총 측은 협력업체 정규직은 비정규직이 아니라며 비정규직에 대한 개념 오류를 지적한다. 공공과 민간에 파견·용역 형태로 근무하는 근로자들은 협력업체의 정규직이기 때문에 이미 정규직을 다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얘기다.

특히 비정규직의 포괄적 해석으로 인한 일률 적용을 비판했다. 경총 관계자는 "비정규직엔 기간제, 파견, 용역, 외주, 하청, 시간제 등 수많은 종류가 있는데 이 모두를 비정규란 개념 안에 집어넣어 정규직화 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에도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도 인력운영에 있어 유연성이 있어야 고용이 창출되는 것인데 정규직으로 일원화시키면 오히려 고용창출이 줄어든다고 본다"며 "특히 아웃소싱 산업은 각 분야에서 세분화 분업화되면서 경쟁력을 갖췄다. 이를 무시한 일률적 정책은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정부가 주도하는 정규직 전환을 공공이나 민간에서 어떤 방식을 적용할지가 관건이라는 의견이 많다. 

첫째로 일반 정규직과 똑같은 직군전환 방식은 막대한 비용부담과 기존 직원이나 공무원의 반발로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는 중규직으로 불리는 무기계약직의 형태로 복지혜택은 정규직과 같지만 임금은 직무급으로 적게 주는 방법이다. 셋째는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채용이 있다. 

노동계는 무기계약직과 자회사 설립을 통한 정규직 전환은 '무늬만 정규직'이라고 비판하고 있어 향후 정부와 민간에서 어떻게 풀어갈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정책 수립 기본 원칙부터 점검 필요

정부가 OECD평균을 근거로 공무원 확대, 정규직 확대 등의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책 수립의 기본 수순은 유럽 국가들이 주도하는 OECD 평균과의 격차가 아닌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양과 질, 소비자·이용자의 요구와 불만에 대한 평가가 먼저라는 것. 그 다음이 예산대비 공공서비스 공급방식이라는 의견이다.

김대호 사회디자인 연구소장은 "한국처럼 비용이 많이 들고, 고용이 경직돼 있으면 직고용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공공부문 사건사고의 대부분이 하도급업체인 것에 착안해 이를 모두 정규직화 해야 줄어든다는 발상에서 시작한 공공부문 일자리 공약은 본질적인 해결방법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원전사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등은 외주화로 인한 사고가 맞지만 이 업무를 정규직이 한다고 사고가 발생되지 않을 것이란 보장이 없고, 사고가 나도 그에 맞는 보상이 이뤄졌을 것이다. 

김 소장은 "문재인 정부는 외주하청 기업에 대한 '규제와 감독'의 반성과 성찰을 건너뛰고, 바로 공공부문 직고용이란 결론을 냈다"며 "규제와 감독의 실패를 비정규직 고용 때문이라고 덮어버렸다.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수법"이라고 강하게 말했다. 

이어 "비정규직이란 고용형태를 문제 삼으니 오히려 비정규보다 못한 정규직이 양산된다. 좋은 일자리 창출이 아닌 저임금 고노동 일자리의 처우개선을 통해 그럭저럭 괜찮은 일자리로 만드는 것이 고용문제의 핵심"이라고 제언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말하는 것처럼 파견이나 용역의 일자리가 임금이 낮고 고용이 불안하다는 지적은 근본 문제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정부의 입찰 시 최저가 입찰이나 협상에 의한 계약이라 해도 가격 비중이 당락을 좌우하는 구조를 바꾸는 것이 전제돼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