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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벤토탐방] 육식문화 여명기에 태어난 '스키야키'

"벤토 알면 문화 보이고, 문화 알면 일본 보인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 bsjang56@hanmail.net | 2017.05.29 14:24:31

[프라임경제] '스키야키(すき焼)'는 얕은 철 냄비에 저민 육류와 여러 야채를 끓이거나 굽는 요리다.

이 요리는 에도시대 농부들이 가래(스키)에 두부나 생선을 구워(야키)먹은 데서 유래한다. 가래 테두리에 둘러진 철판이 구이용 불판으로 쓰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얇은 고기(스키미 니쿠)를 구운 데서 유래한다는 견해도 있다. 

벤토전문점 '이마한(今半)'의 스키야키 벤토. ⓒ 이마한 홈페이지

스키야키는 일본요리를 대표하는 스시나 텐푸라와 동급으로 분류될 정도 위치에 있는 음식이지만 의외로 역사가 길지 않다. 일본은 에도시대 말기인 1800년대 초까지 소의 식용을 법으로 금지했다. 소는 농경사회 중요한 노동력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서민들은 단백질 섭취를 위해 은밀히 산돼지나 사슴 같은 야생고기 외에도 쇠고기를 먹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1859년 토쿄 인근 요코하마가 개항되고 많은 외국인이 집단으로 거주하기 시작하며 육식문화의 새로운 장이 열린다. 

그때까지 일본에는 도축이라는 산업분야가 없어 필요할 때마다 중국·조선·미국에서 식용 소를 들여오고 있었다. 하지만 일시에 늘어난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막부는 1864년 요코하마에 소 도축장을 허가한다. 

이 무렵 요코하마의 '이세쿠마'라는 선술집이 일본 최초로 '규나베(牛鍋 쇠고기 전골)'라는 신개념 요리를 선보인다. 곧이어 1868년 메이지 유신과 함께 일본 심장부 토쿄에 도축장이 들어서고 마침내 천황이 공식적으로 쇠고기를 먹는다. 그리고 육식금지법이 폐지된다. 

이를 신호탄으로 토쿄와 그 주변 칸토(関東)지역은 규나베가, 오사카 등 칸사이(関西)지방은 고기와 야채를 구워 먹는 스키야키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쇠고기를 먹는 것이 곧 개화라는 사회분위기도 대중화를 앞당겨준 요인이었다. 

당시 개화세력의 우두머리 격이었던 '후쿠자와 유키치'는 "예로부터 일본인이 육류를 안 먹어 병약한 자가 많으니, 지금부터라도 고기와 우유를 먹어 자양을 보충해야 할 것"이라며 육식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또 같은 시대 한 유명 희극작가는 "누구를 막론하고 규나베를 안 먹으면 미개인"이라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그 결과 1877년에는 토쿄시내 규나베 전문점이 550개가 넘을 정도로 크게 유행한다.

스키야키는 지역에 따라 조리법이나 명칭이 다르다. 홋카이도와 동북지역 스키야키 재료는 돼지고기가 일반적이어서 쇠고기를 사용할 때는 '규(牛)스키야키'라는 별도 이름이 붙는다. 과거 쇠고기가 비싸기도 했지만 먹는 습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토쿄와 요코하마 지역은 요즘도 메이지시대 유행하던 규나베 전통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이 지역에서 사용하는 육수를 '와리시타(割下)'라 하는데, 일반 다시에 간장·술·설탕·된장을 첨가해 농도를 높인 복합조미료로 보면 된다. 

와리시타는 돈부리와 우동 그리고 전골요리 맛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 이것을 이용하는 요리 전반을 스키야키풍으로 부를 만큼 일본요리에 빠질 수 없는 존재다. 

오사카를 비롯한 칸사이 지방에서는 이를 '츠유'나 '다시'로 부른다. 와리시타는 기본적으로 맛이 짭짤하고 들큼해 한국인에게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한편 중부지역 아이치(愛知)현은 토종 닭 '나고야(名古屋)코친'을 이용한 '히키즈리'라는 스키야키가 유명하다. 또한 '스키야키'라는 명칭을 탄생시킨 칸사이 지방에서는 우리나라 삼겹살처럼 고기와 야채를 따로 구워 먹는다. 

간장과 설탕으로 밑간이 된 고기에 대파·배추·미나리·두부·실곤약 같은 야채류가 함께 나온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리가 간편하고 맛을 내기 수월한 토쿄풍 와리시타 방식을 택하는 점포나 가정이 늘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칸토식 전골과 오칸사이식 구이가 접점을 넓히는 모양새다. 이밖에 긴 해안선을 따라 생선이나 게 등 해물을 주제로 하는 스키야키도 있지만 대세는 쇠고기다.

스키야키는 소스가 이색적이다. 일반적으로 소스라 하면 대부분 매콤하거나 새콤한 맛을 떠올리지만 스키야키 소스는 '토키타마고(溶き卵)'라는 으깬 날계란이다. 예로부터 일본은 '전골요리에는 날계란'이라는 음식문화가 있다. 

날계란이 뜨거운 음식을 식혀주고 진한 육수 맛을 중화시켜서다. 체력 강장제이기 때문이라는 그럴듯한 설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종류와 지역에 상관없이 스키야키 집 소스 접시에는 날계란이 통째로 나온다.

스키야키는 겨울 요리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전국 벤토 체인들이 이 메뉴를 내놓기 시작한다. 와리시타 육수가 배어 초콜릿색으로 변한 고기와 야채류 토핑이 돈부리를 닮았지만 날계란이나 반숙이 따라 붙는다면 그것은 스키야키 벤토다.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스키야(すき家)'라는 외식점포를 종종 만나게 된다. 자칫 스키야키 전문점이라는 오해를 받기 쉽지만 이곳은 기본적으로 돈부리 체인점이다. 

1983년 창업초기에는 스키야키 디너세트 같은 메뉴를 출시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규동과 카레를 주력으로 하는 대형 외식그룹이다. 

물론 겨울철에는 계절메뉴 스키야키가 등장하고 벤토 테이크아웃도 가능하다. 

스키야라는 브랜드에는 스키야키 이미지 외에도 '좋아함(스키)'의 의미도 포함돼있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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