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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경총, 대통령이 콕 찍은 이유 있었네"

전경련 주도로 설립, 노동관계 TF 역할

이수영 기자 | lsy@newsprime.co.kr | 2017.06.01 17:25:13

[프라임경제] 최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일자리 문제를 두고 '공개저격'을 당한 재계가 또 곤경에 처했습니다.

전국경제인연합(전경련) 등 5대 경제단체를 비롯한 사용자(기업)연합인 경제단체협의회(경단협)의 내부문건 내용이 기사화되면서 가뜩이나 재계에 불친절한 새 정부와 더 어색해진 겁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로고. ⓒ 한국경영자총협회

문건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것으로 40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단 "공식문건이 아니며 관련된 논의도 없었다"라는 해명이 빠르게 나왔는데요. 자료를 요청한 기자에게 실무자가 정리해둔 파일을 넘겨준 것뿐이라며 진화에 안간힘을 쓰는 모습입니다.

한편, 소동이 벌어지는 동안 상당수 언론이 경단협과 함께 주목한 재계단체가 있습니다.

바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입니다. 재벌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까지 아우르는 전국 단위 조직이라는 점, 매년 양대 노총과 함께 임금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익숙한 이름입니다.

경총은 사실상 경단협의 운영 주체로 지목됐고 해당 문건도 이곳에서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경총과 정부의 어색한 관계, 새삼 처음이 아니라는 것을 아셨나요?

◆전경련 필요에 의해 조직

경총은 1970년 7월에 탄생했습니다. 당시 정식 명칭은 한국경영자협의회로 1969년 섬유노조와 대한방직협회 사이의 갈등(면방쟁의)이 결정적 설립계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수출 우선 정책은 재벌에 엄청난 수혜로 돌아갔는데요. 동시에 노동자의 권리는 철저히 외면당했습니다.

과도한 부(富)의 집중은 1960년대 후반 노사갈등으로 번졌고 갈수록 전국적, 정치·사회적 이슈로 확대됐습니다. 노사관계에 대한 지식과 전문성에 한계를 느낀 기업들은 노조에 맞설 사용자단체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대를 형성했죠.

당시 전경련 회원사였던 일신제강(현 동부제철) 주창균 창업주,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의 부친이자 전남방직을 이끈 김용주 사장 등이 설립 추진자로 꼽힙니다. 그중에서도 노동쟁의가 잦았던 섬유, 건설, 광산, 운송업종 중심으로 일본 '일경련'을 모델 삼아 구체적인 조직도가 마련됐는데 처음에는 전경련 파견 직원 3명을 포함해 상주인력이 5명밖에 안될 만큼 단출했다고 합니다.

경총은 재벌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단체인지라 철저히 사용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곳인데요. 일각에서는 전경련의 노동관계 전담부서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다시 재계와 정부 이야기로 돌아가서, 1963년 정부는 산별노조체제를 강제하는 노동법을 내놓았습니다. 기업 입장에서 노조는 적을수록 유리한데 이는 정반대의 정책이었죠. 기업들은 노조의 연대를 최대한 제어할 수 있도록 1사 1노조(기업별노조체제)를 입법화해야 한다며 다양한 로비를 벌였지만 박정희 정권은 어떤 단체든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1973년에야 겨우 산별노조 의무조항이 삭제됐는데요. 경총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해당 기업에 고용된 노조간부에게만 교섭권을 인정하는 법이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죠.

◆경총, 그리고 전두환 정권

이 같은 '제3자 개입금지' 조항은 경총이 정치권 인사들을 모아 수차례 정책포럼을 열고 힘을 쏟은 덕분에 전두환 정권에서 마침내 실현됩니다. 경총으로서는 정부와 기업 중심으로 노동 통제가 가능한 상황을 만든 것으로 만족스러운 결과였습니다.

1986년 12월 한국노총이 제3자 개입 예외조항 신설을 관철시키지만 이 역시 경총의 묵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입니다. 적당한 선에서 노동계의 요구를 들어줘야 새로운 연대조직이 생기는 것을 차단할 수 있으니까요.

모순적이지만 경총이 본격적인 사용자대표로 날개를 단 것은 1987년 6월 항쟁 이후부터입니다. 노동자의 법적권리가 커지고 노동운동이 급격히 팽창하자 위기감을 느낀 기업들이 경총을 대리인으로 내세웠기 때문인데요.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기업도 속속 회원사가 되면서 조직 자체가 커졌습니다. 특히 규모가 크고 노조활동이 왕성한 대기업일수록 경총 가입기간도 긴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경단협이 탄생한 것도 경총이 한창 세를 불리던 1989년 12월입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이듬해 탄생한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지금의 민주노총)를 견제하기 위해 조직한 것으로 재벌들의 전략적 선택이었죠.

(왼쪽부터)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과 박병원 경총 회장이 지난 2월 경총 정기총회 및 한국노사협력대상 시상식에서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습. ⓒ 뉴스1


앞서 설명했듯 경단협의 운영은 경총이 맡고 있습니다. 경단협은 1990년대 초 노태우 정권 당시 전국 단위로 노동단체의 동향을 파악해 공유했는데 최근까지도 경총은 노사갈등이 벌어지는 기업 현황자료 등을 회원사에 한해 제공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정부를 상대로는 노조의 '비합법적' 파업에 강경한 대응을 촉구하는 식으로 목소리를 내왔는데요. 불법파업에 소송으로 맞서라는 조언을 하거나 아예 법률팀을 파견하는 등 기업의 교섭지원에도 힘을 쏟고 있는 게 경단협, 그리고 경총입니다.

이렇듯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용자단체는 근로자들이 뭉치고 한목소리를 낼수록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왔습니다. 임금격차로 대표되는 비정규직 문제가 '헬조선'의 상징이 된 지금도 물론 마찬가지겠죠.

참고로 경총은 2017년 임금가이드라인으로 2년 연속 '동결'을 권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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