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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칼럼] 공감과 침묵: 간절함을 읽기

 

김종성 코치 | keb065614@hanmail.net | 2017.06.06 20:49:56

[프라임경제] 그날은 지수의 생일이었다. 벌써 4년3개월 전, 설날 아침에 예고도 없이 훌쩍 떠나간 딸아이.

아이가 있는 영생관리원에 가기 전에 꽃집으로 향했다. 인터넷으로 찾은 야탑역 뒷길에 있는 화원이었다. 주인은 자기가 최고의 플로리스트라고 다소 수다스럽게 이야기하면서 이 꽃은 얼마나 아름다우며 저 꽃은 얼마나 고급스러운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나는 아직까지 꽃이 그렇게도 다양한지, 색깔도 그렇게까지 귀족스러울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주인: 안녕하세요? 처음 오셨나 보네요.

고객: 네. 처음 와요. 여기는 꽃이 참 고급스럽네요.

주인: 네. 저희는 특별히 좋은 꽃들을 가져다 놓아요. 저기 액자 보이시죠? 저건 제가 캐나다에서 받은 플로리스트 자격증이예요. 어떤 걸 원하세요?

고객: 네, 우린 꽃바구니를 보러 왔어요. 어떤 게 있나요?

주인: 꽃바구니는 저 진열장 안에 있어요. 이쪽의 큰 건 7만원, 저건 4만원. 모두 사진 찍으면 그대로 화보가 될 정도로 화려하고 예뻐요.

고객: 음…, 저쪽 조금 작은 것이 좋아 보이네요.

우리는 작은 꽃바구니를 골랐다. 주인은 거기에 담긴 꽃들을 보면서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바꿔주겠다고 했다.

주인: 누구에게 주실 건가요?

고객: 음…, 산소에 가져갈 거예요.

주인: 아, 산소에 가시는군요. 여기는 메모리얼 파크가 가까워서 꽃을 사가는 분들이 많아요. 혹시 누구신가요?

고객: 음… 음…, 우리 애예요.

주인: 아! 그렇군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주인: 무슨 일이 있었나요?

다시 침묵이 흘렀다. 함께 간 아내의 눈가에 눈물이 비쳤다. 나는 고개를 돌려 보지 않고도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주인: 애에게 주는 꽃으로 어떤 게 좋을까요?

고객: 노랑색 꽃 몇 개를 빼고 저 연보라색 꽃하고 연한 파스텔톤으로 여러 송이 넣어 주세요.

주인: 네, 이것하고 또 이 꽃하고. 이 파스텔 색의 꽃은 참 고급스럽지요. 파스텔색을 좋아하시나 보네요?

고객: 네, 연보라색은 우리 아이 색깔이예요. 오늘은 그 아이 생일이구요.

주인: 아, 그랬군요. 아이 생일 꽃바구니로군요.

그 이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주인은 묵묵히 꽃바구니를 만들고, 우리는 물끄러미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주인: 사장님, 혹시 더 넣고 싶은 것이 있나요?

고객: 네, 저기 빨간 색 장미 하나 넣어 주세요. 그냥 빨간 거 말고 검은 색 나는 흑장미로요.

그랬다. 우리 부부는 원래 파스텔 톤의 색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미 꽃바구니에는 파스텔 톤의 노랑 미색 연보라 흰색 꽃이 가득했다. 나는 나를 나타내는 꽃을 추가하고 싶어졌다. 뭐가 좋을까. 가장 강렬하게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있는 꽃, 부드러운 파스텔 색 속에서 한 눈에 보일 수 있는 꽃, 그래서 내가 고른 것은 6월의 상징인 장미였다.

나는 어떻게든 나의 강렬한 마음을 꽃바구니에 넣고 싶었다. 아이를 보러 갈 때마다 솟아오르는 뭔가 말할 수 없는 느낌을 저 흑장미가 대변해줄 것 같았다. 꽃집 주인은 그 간절함을 읽은 듯 더 이상 묻지 않고 정성스럽게 꽃을 꽂고 다시 손질했다.

주인: 자, 다 됐어요. 그리고 이 조그만 꽃다발은 제 선물이예요. 집에 가지고 가서 보시면 좋을 거예요.

고객: 아, 네. 고맙습니다.

우리는 꽃집을 나왔다. 꽃바구니 속 꽃들은 은은함 속에 강렬한 화려함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처음에 약간은 수다스럽게 느껴졌던 꽃집 주인이 나중에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우리와 공감해 준 것이 고마웠다.

꽃집을 나와서 꽃이 가득한 바구니를 다시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과연 꽃 하나 하나가 평범한 게 없다. 얼핏 볼 때는 다 예쁜 꽃이라는 정도로만 보였는데 한참을 들여다보니 모양도 색깔도 각각 다른 꽃이고 아직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듯한 생각이 들었다.

이 꽃들은 내가 골랐지만 이렇게 다시 바라볼 때 꽃으로서의 생명을 얻어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 생명이 살아난 꽃을 아이에게 보여주면서 우리는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적인 교감을 느꼈다.

꽃집 주인이 우리 부부의 간절한 마음을 읽고 미묘한 감정에 공감하며 침묵의 시간을 함께해주었듯이, 코칭을 할 때 놓쳐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는 상대방 마음 속의 간절함을 읽어주는 것이다.

코치가 자신의 선입견을 버리고 순수한 호기심으로 상대를 바라볼 때 그의 숨어있던 모습은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고 생명을 얻어서 살아난다.

김종성 코치 / (현) 코칭경영원 파트너코치 / 사진작가 / (전) 외환은행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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