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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벤토탐방] 현지화 성공한 '비빔밥 벤토'

"벤토 알면 문화 보이고, 문화 알면 일본 보인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 bsjang56@hanmail.net | 2017.06.07 10:59:45

[프라임경제] 비빔밥을 일본어로 표기하면 '비빈바' 또는 '비빈파'가 된다. 다소 생뚱맞아 보이지만 붙여 읽으면 그런대로 우리 말 같이 들린다.

혼케카마도야의 야키니쿠 비빔밥 벤토. ⓒ 혼케카마도야 홈페이지

위키피디아 일본어사전에서 비빈바를 찾으면 근사한 돌솥비빔밥 사진과 함께 어원·종류·역사 등이 비교적 소상하게 나온다. 같은 한국어사전보다 내용이 충실하고 사료도 풍부하다. 

비빔밥은 일본에 건너간 우리의 여러 전통음식 중 원형을 지키며 현지화에 성공한 대표적 음식이다. 

일본에 비빔밥이 본격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대한항공이 기내식으로 내놓은 1992년 이후로 추정된다. 기내식하면 서양풍이 주류를 이루던 그 시절, 대한항공이 기내식 한식화를 표방하며 세계인을 대상으로 야심차게 내 놓은 작품이 비빔밥이다. 

비빔밥은 곧 세계인의 눈과 입맛을 사로잡았다. 밥 위에 형형색색 올라가는 나물과 계란 프라이가 눈을 즐겁게 해주고 어딘지 한국적 분위기가 묻어난다. 

거기에 고추장 한 숟가락과 참기름을 넣어 비비면 누구나 감탄하는 오묘한 맛으로 변한다. 취향에 따라 구운 김을 첨가할 수도 있다. 

비빔밥은 식욕을 돋우는 외관 못지않게 건강식으로도 정평 나 있다. 각종 나물에 탄수화물·단백질·미네랄·비타민 같은 필수 영양소가 고루 들었다. 호기심 많은 일본인들이 그냥 지나칠 리 없다. 

일본에 비빔밥은 이전에도 재일교포들이 운영하는 야키니쿠집의 사이드메뉴에 들어가기는 했으나 그다지 존재감이 없었다. 

처음에는 매운 맛에 약한 일본인들이 과연 고추장을 받아드릴까 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그들도 곧 한국 고추장의 마력에 빠져들고 말았다. 비빔밥의 핵심은 고추장이다. 

고춧가루를 메주·쌀·엿기름 등과 함께 숙성시키는 고추장은 사람의 입맛을 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것은 적당히 매운 맛과 함께 단맛을 함유하고 있는 고추 때문이다. 

이 고추를 햇볕에 말려(최근에는 주로 건조기 이용) 빻은 고춧가루가 중독성 맛의 원천이다. 일본에도 고추가 있지만 맵기만 할 뿐 단 맛이 없다. 

일본인들은 기본적으로 돈부리 같은 일부 요리를 제외하면, 밥에 음식을 올리지 않고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는다. 국물 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각자 공기에 덜어 젓가락으로 건더기를 건져먹으며 국물을 입에 대고 마신다. 

그들이 밥 위에 나물을 얹어 숟가락으로 비빈다는 것은 좀 과장하면 혁명 같은 변화다. 

일본에서 만나는 비빔밥은 우리나라와 고명이 좀 다르다. 우선 계란이 프라이가 아닌 반숙이거나 날달걀 형태다. 또 쇠고기 고명이 크고 양도 많아 얼핏 보면 전주 육회 비빔밥 느낌이 난다. 점포에 따라서는 배추김치가 올라가기도 한다. 

이제 비빔밥 하면 돌솥이 용기의 대명사가 된 느낌이지만 우리나라 전통은 유기(놋)그릇이다. 유기가 귀했던 시절 사람들은 대부분 알루미늄이나 스테인리스 그릇을 사용해왔다. 

돌솥 비빔밥을 창안한 것은 뜻밖에 1970년대 오사카에서 조선요리 식당을 운영하던 재일교포들로 알려졌다. 

교포들은 '이시야키(石焼き)비빈바'라는 이름에서 보듯 밥과 나물을 굽듯이 데웠다. 바닥에는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누룽지가 보너스로 생긴다. 이것을 우리가 역수입한 것이다.

한 때 일본을 휩쓸었던 한류 바람이 정치적 이유로 잦아들었지만, 비빔밥은 조용한 가운데 그 곳 식문화에 깊이 스미고 있다. 벤토체인·돈부리점·야키니쿠점·편의점 등 전국 어디를 가도 비빔밥이 없는 곳은 없다. 

최근 몇 년 사이 비빔밥이 일본 국민메뉴에 편입된 게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붐을 이루고 있다. 

인기 가정요리 사이트 '쿡패드'에 들어가면 이달 현재 무려 1300개가 넘는 레시피가 등록된 것을 볼 수 있다. 라쿠텐이나 아마존 같은 거대 통신판매 사이트에도 고추장 상품이 넘친다. 

삿포로맥주는 '스키렛토(skillet)비빔밥'을 생맥주 추천안주로 소개하고 일본 파스타협회는 밥 대신 파스타를 바닥에 깐 레시피까지 선보인다. 심지어 '학교급식연구개선협회'라는 공익재단이 급식으로 추천하는 메뉴에 비빔밥을 넣고 있다. 

요즘 일본인들은 우리보다 더 비빔밥을 사랑하고 즐기는 것 같다. 집 나간 비빔밥이 이국에서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어 마음 뿌듯하다면 지나친 애국일까? 

비빔밥 벤토는 '홋토못토' '혼케카마토야' '홋카홋카테' 같은 대형 벤토 3사가 '야키니쿠 비빔밥' 형태로 내놓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이 중 혼케가마토야(本家かまど家) 벤토를 권한다. 

전국 2300여개 점포를 가진 이 회사 오너 재일교포 2세 김홍주씨(일본명 金原弘周)는 조국에 대한 자긍심이 큰 인물로 알려졌다. 

가격은 3사 모두 500~600엔대로 중저가 수준이고 밥이나 고기를 추가하면 60~100엔이 추가된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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