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코칭칼럼] 우슈토베의 리더 헬렌

 

서유순 코치 | usoonsuh@gmail.com | 2017.06.08 10:30:37

[프라임경제] 1937년 가을에서 겨울에 걸쳐 러시아는 연해주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의 허허벌판으로 대대적인 강제이주를 시켰다.
 
이들 고려인 이주자들이 첫 번째 도착한 곳이 카자흐스탄의 우슈토베이다.  이 곳 기차역에 맨 몸으로 버려지다시피 도착한 그들은 언덕을 향해 무작정 걸어갔다.  언덕 아래 토굴을 팠고, 거기서 첫 겨울을 났다.  지독한 바람을 피해 그들이 내린 지혜로운 결정이었다.   
 
이제는 고인이 되어 흔적만 남은 토굴 앞 벌판에 옹기종기 안치되어 있는 그들의 무덤을 지인 일행과 함께 방문했다. 한글 이름과 고생의 흔적이 깃든 사진, 생존 기간이 박혀있는 묘비를 보고 있자니, 그들의 슬프고 고달픈 삶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목이 메이고 코끝이 시려왔다.    
 
토굴을 나와 맨손으로 땅을 파 농사를 지으며 일구었던 그들의 마을에는 이제 후손들이 평온한 삶을 살고 있다. 근면한 조상 덕이다. 차들이 여기저기 파인 신작로를 지날 때마다 희뿌연 매연이 길 가의 집들과, 구멍가게, 오가는 사람들을 덮치는 모습은 오래 전 우리나라의 작은 지방 마을을 연상하게 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세련된 새 건물은 한국인 선교사가 운영하고 있는 교회이다.  미국 시민권을 가진 그녀를 이 곳 주민들은 헬렌이라 부른다. 목사였던 남편의 마지막 소원이었던 고려인 사역을 위해 7년 전 이 마을에 오게 된 헬렌을 주민들은 그리 환영하지 않았다. 어떤 일을 벌일지, 얼마나 머물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헬렌은 서두르지 않았다. 목사의 아내로 평생 바보같이 부엌 일한 것이 나중에 보니 큰 봉사요 사랑의 실천이었음을 깨달았듯이 이 곳에서도 바보의 길을 가자고 다짐했다. 

우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나갔다. 아픈 노인들 찾아가 씻기고 식사를 챙겼다. 방황하는 청년을 불러 대화하고 가르치고 그래도 안되면 친부모처럼 야단도 쳤다. 그러는 가운데 청년의 어머니가 감화하고, 세상을 뜨면서 헬렌에게 그를 부탁했다. 그는 헬렌을 어머니로 대하며 건실한 성인이 되어 일가를 이루었다. 
 
주민들이 점점 헬렌 곁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같이 기도하고 노래도 하며 실컷 웃었다. 함께 음식을 나누며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도시락 배달도 시작했다. 씨를 뿌려 야채를 기르고 돼지를 쳐 새끼들을 팔아 돈을 모았다. 오갈 데 없는 노숙자를 거두었더니, 마을에서 제일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다.
 
미국에 있는 교회 재단의 도움으로 교회를 짓고 이 곳을 찾아오는 이들을 위한 숙소도 마련했다. 마을의 사랑방이자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것은 물론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돌아가며 이 곳을 방문해 아이들을 가르치고, 교회 재단의 세계 여성 지도자들이 매년 세미나를 열기도 한다. 
 
"헬렌 선교사님, 정말 감동이에요. 어떻게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 많은 것을 이루셨어요?" 

말 마디마다 그리고 얼굴 자체에서 사랑과 헌신이 느껴지는 그녀에게 우리 일행이 물었다.  
 
"나는 이렇게 하자, 이렇게 하면 된다고 말한 적이 한번도 없어요."

그녀의 첫 마디에 우리가 다시 물었다.

"그럼, 사람들이 왜 달라졌지요?"

"7년간 바보처럼 같은 행동을 하니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하더군요. 그러면서 깨달았지요, 변화는 시간이 필요한 거구나. 앞에서 외쳐서 될 일이 아니라고요."

그녀는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꿈을 꾸니까 다 이루어지더라고요. 오늘이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이분들을 잘 모시자 했어요. 할 일이 있으면 안 미루고 즉각 해버려요. 무엇보다 내가 자신들과 끝까지 살다 죽을 줄 아니까 어떤 말이나 일을 해도 나를 믿어요." 
 
그녀의 담담한 일상과 그 속에서 깨달은 지혜는 어떤 리더십 이론과 강의보다 우리 일행의 가슴을 울렸다. 리더의 언행일치, 솔선수범, 인내와 기다림, 비전과 실행, 함께 간다는 신뢰가 얼마나 결정적이고 중요한지를 굳이 말할 필요 없이 온 몸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진정성의 정수를 보았기 때문이다.                                  

리더의 삶 자체가 가장 훌륭한 리더십이 될 수 있음을 배우고 깨달으며, 온전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코치로서 나 자신의 일상은 나의 코칭에 어떻게 투영될지 다시 성찰하고 반성해본다.  

서유순 코치 / (현) 코칭경영원 파트너코치 / (전) 라이나생명 인사 부사장 / (전) 듀폰코리아 인사 상무 / 공저 <여성리더가 알아야 할 파워코칭> <조직의 파워를 키워주는 그룹코칭>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