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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정리 거자필반] 사무직 10년인데…지원계로 돌아가라고?

'불분명한 직제' 근무 형식 변경 등 손해만 커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7.06.12 10:18:17
[프라임경제]사람은 모이면 언제고 헤어지게 마련(會者定離)이고 헤어진 사람은 다시 만나게 마련(去者必反)입니다. 하지만 반갑게 만나서 헤어지지 못하는 관계도 있습니다. 바로 근로고용관계인데요. 회사가 정리(會社整理)해고를 잘못한 경우 노동자가 꿋꿋하게 돌아온 거자필반 사례를 모았습니다. 갈수록 교묘해지는 징계나 부당노동행위를 극복한 사례도 함께 다룹니다. 관련 문제의 본질적 해결은 무엇인지도 함께 생각하겠습니다.

사용자 주장: 안녕하세요? 우리는 전국 각지에 호텔과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원래 처음에는 무역회사의 한 사업부로 호텔업을 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주력이 이 레저·관광 분야로 바뀐 경우지요. 

우리가 아직 호텔 전문 업체로 자리 잡기 전, 그러니까 처음 문을 연 몇몇 호텔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던 때의 일입니다. 당시엔 호텔리어라는 개념이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때도 아니고, 인식이 그렇게 높지 않을 때입니다. 그래서 호텔 근무 직원들은 인사 분류상 '지원계'라는 명칭으로 뽑았었지요. 신입일 때에는 호텔 접수계에서 프론트 근무를 하면서 응대와 접수, 예약 처리 등을 맡도록 했고 호텔 업무를 총괄하는 팀에서 내근을 시키기도 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무역 사업부의 총무과 등 내근 부서에 발령돼 근무하기도 했지요. 

초반에 호텔 사업이 좌충우돌할 때 이 지원직 인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자신이 없었던  탓도 있지만, 오일쇼크나 훗날 IMF 구제금융 위기 등 때때로 닥치는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입사 초반에 호텔 영역에서 큰 두각을 나타낼 기회를 얻지 못하고 일반 사무직으로 전환 근무를 하게 됐다고 해도, 정리해고 등 조치 없이 고용 융통성을 발휘해 준 회사에 고맙게 생각할 일이 아닐까요?

마찬가지로, 이제 지원계로 입사한 인력을 다시 일선으로 보내는 '정상화'도 어디까지나 회사의 재량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사무직으로 둘 필요나 일자리가 적어진 마당에 사무직원으로 계속 일하게 해달라는 건 아무래도 억지가 아닐까요? 항공사 스튜어디스들의 경우를 봐도, 사무장으로 중년까지 비행기에 근무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지상직이나 내근직 전환을 오히려 싫어하지 않나요? 

노동자 주장: 안녕하세요? 호텔리어의 자긍심을 갖고 일선에서 근무하라는 회사의 방침은 겉으로 보기에는 타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는 겉만 그럴듯한 말입니다. 우선 우리가 들어올 때 지원계라는 명칭으로 입사했지만, 이후 각 부서에서 사무직으로 일하다 보니 지금 '호텔경영계 직렬'로 입사한 후배들과 직급 체계와 상당히 다릅니다. 이쪽으로 이동을 하게 되면 대단히 큰 급여 손실이 나게 됩니다.

또 각 일선 호텔의 관리직이나 본사의 사무지원부서에도 자리가 적지 않은데, 이들 자리는 내주질 않습니다. 과거 무역회사 시절부터 자리를 잡아온 '일반직렬 공채' 출신 간부들 몫으로 떼어놔서 우리 설 자리가 없다는 속셈입니다.   

무엇보다 회사에서는 접수계 채용 당시부터 이것을 별도의 직제로 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우리도 이번에 소송 준비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직원 관리 현황에 '지원계'라는 명칭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관리상 명칭 표시와 분류를 한 해에도 '지원계 0명(없음)'으로 처리한 예도 있습니다. 그러니 지원계 입사자는 그냥 '공채 인력 중에 B급쯤'으로 생각을 하고 관리를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주장이 호텔리어로서의 자존심도 팽개친 무리한 억지인가요, 아니면 사무직으로 10년 넘게 20년까지 일해온 최소한 자긍심을 요구하는 주장인가요?  

-서울고등법원 2016누67242사건을 참조해 변형·재구성한 사례

불경기가 만성이다 보니 직렬이나 직급을 통폐합하는 예가 적지 않습니다. 이 같은 경영 효율화가 부당노동행위의 핑계로 악용되는 경우도 왕왕 있는데요. 특히 사업이 어려워져 말썽이 생기는 경우만이 아니라, 이 사례에서처럼 사업이 더 잘 되고 운영 실적도 좋아지는데 직원들만 붕 뜨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외관상으로는 '지원계'로 들어온 이들이 지금의 '호텔경영계' 후배들과 다른지 다툼으로만 보입니다. 하지만 이 사안에는 두 직렬 사이의 차이점, 즉 중간에 처우나 급여 등이 달리 매겨졌다는 점 이상의 문제가 숨어있는 것 같습니다. 단순히 이렇게 자존심도 없다는 식의 공격이나 유사한 입사자들 간의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게 옳은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단순히 이들이 운이 좋아(?) 일반 공채 출신이 가야 할 사무직원 자리에 가서 일을 했을 뿐이니, 이제 와서 돌아가기 싫다고 요약하기 전에 함께 따져볼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그간 그런 근무 관행이 어떻게 내부적으로 받아들여졌는가의 문제입니다. 10년에서 20년간 그런 고용과 인사가 유지됐다면, 신뢰 보호 원칙상 무리가 있다는 것이죠. 

원래 호텔 업무를 위해 채용된 인력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새삼 지원계 업무를 맡게 됨으로써 자긍심에 큰 상처를 입는 부작용이 크다고 법원은 봤습니다. 더욱이 근무 방식도 교대제로 바뀌게 됨으로써 입는 부담도 참기 어려운 점이라는 대목 역시 회사 측에 불리한 정황으로 법원은 판단했습니다. 굳이 이런 문제를 무릅쓰고 인사 전환을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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