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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칼럼] 코치의 사진 찍기

 

김종성 코치 | keb065614@hanmail.net | 2017.06.20 07:54:48

[프라임경제] 나는 결혼식장에 카메라를 들고 갈 때가 많다. 그 1차적인 이유는 내가 사진을 즐기기 때문이지만, 또 다른 이유는 하객으로 그냥 앉아 있기 보다는 의미 있는 순간을 적극적으로 기록하여 선물해 주고 싶기 때문이다.

결혼식장에는 대부분 웨딩 사진 전문업체의 사진사가 있게 마련인데, 나는 그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나만의 눈에 비친 현장의 이런 저런 장면을 찍는다. 이른바 '스케치 사진'이다.

스케치 사진을 찍다 보면 예기치 못한 순간을 만나기도 하고 대기실에 있는 신부의 미묘한 감정 변화를 읽을 때도 있다. 가장 친한 친구의 표정에서 부러움을 읽을 때도 있고, 뭔가 표현되지 않는 마음 속 깊은 아쉬움이 안개처럼 희미하게 보일 때도 있다.

최근에도 결혼식이 있었다. 그날도 사진을 찍었는데 그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평소 존경하는 코치님의 아들 결혼식, 신랑 역시 코치이고 나와도 가까운 사이였다. 나는 그 결혼식 사진을 찍겠다고 먼저 제의했고, 혼주 측에서도 고맙다면서 수락했다. 결혼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나는 기쁜 마음으로 카메라도 점검하고 어떻게 하면 두고 두고 남을 결혼식 사진을 찍어줄 수 있을까를 궁리했다. 그리고 당연한 절차로서 전화를 걸었다.

"결혼식에 사진 업체는 언제 오나요? 저도 비슷한 시간에 가려고요."

내가 물었다.

"그날 다른 사람은 사진 안 찍어요. 전체 사진을 다 찍어주셨으면 합니다."

"네?……"

쿵 하고 머리를 한 대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이 왔다. 멋진 사진을 찍으려는 마음이 가득하기는 했지만 내가 전체를 다 찍는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뭔가 의사소통에 오해가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보조로 스케치 사진을 찍으려던 것인데, 어떻게 하지?'

한동안 시간이 지나고 처음의 당황스럽던 마음도 조금 가라앉았다. 이 때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이것은 소중한 기회다. 결혼식 전문 사진 업체가 아니면 좀처럼 얻을 수 없는 경험을 우연히도 갖게 된 것이 아닌가? 분명 새로운 도전의 기회이고 멋진 사진을 찍으려는 내 의도를 더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거야.'

그렇게 나는 그 결혼식의 '공식 사진사'가 되었다. 그것은 내가 혼자 결정했다기 보다는 주어진 조건에 내 열망과 의지를 결합시켜서 새로운 경지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러면 뭐가 더 필요할까? 삼각대, 플래시, 추가 렌즈, 그리고 결혼식 순서도 미리 익혀야겠네. 그리고 또…'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결혼식 당사자들의 마음 상태를 읽고 공감하며 그 마음이 표출되는 순간을 잡는 것이었다. 필요한 장비들이 하드웨어라면 당사자의 마음을 읽고 그 의미를 찾는 것은 소프트웨어인 것이다.

결혼식 당일, 나는 1시간 전에 도착했다. 결혼식장은 교회였다. 이 일생 동안 기억될 자리에 어머니는 병환으로 인해 참석하지 못한다. 어머니가 설 자리에는 누나가 선다. 그런 사정을 잘 아는 나는 당사자들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그런 면은 전혀 없었고, 하객을 맞는 분주한 모습만이 보였다.

신부 대기실에서 나는 아름답고 순결한 흰색 웨딩 드레스의 신부를 보았다. 어쩌면 이 사진은 신부에게도 신랑에게도 일생 최고의 사진으로 남을 수도 있다. 내가 이 새로운 가정의 출발을 증언하고 오래도록 수호신 역할을 할 사진을 찍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곳곳에 십자가가 보였다. 강단 뒤편에도, 양쪽 스크린에도, 또 맞은편 객석에도 있었다. 마치 십자가가 공간 전체를 감싸는 듯한 모습이었다. 결혼식은 익숙한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목사님의 찬송가, 주례사, 성혼 선언, 그리고 신랑 신부의 양가 부모님에 대한 인사 시간이 됐다.

중요한 순간이다. 부모님께 인사드릴 때는 여러 가지 내면의 감정이 얼굴에 나타난다. 말로 표현되지 않는 수많은 것들이 얼굴 표정과 호흡, 눈빛을 타고 외부로 표출된다. 그것을 잡아내야만 한다. 어쩌면 단 1초 동안의 기회일 수도 있다.

나는 양가 부모님과 신랑 신부가 인사하고 껴안아주는 그 짧지만 중요한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신랑 신부를 아버지와 누나가 안아 준다. 나는 셔터를 눌렀다. 자동 초점 모드이지만 워낙 짧은 순간이기 때문에 잘못하면 초점이 안 맞거나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그 순간이 지나가고 나는 땀에 흠뻑 젖었다. 왜 갑자기 이렇게 더워진 걸까? 손수건으로 땀을 훔친다.

코칭을 할 때 코치는 상대의 눈을 보고 말을 따라 하면서 그의 모든 것을 보려고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것은 지금 사진에 몰입하는 순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신랑 신부와 가족의 마음 속에 어떤 물결이 소용돌이치고 있는지, 어떤 갈망이 있는지를 나는 카메라 파인더를 통해서 보고 대화한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나타난 사진을 보면서 다시 한번 대화하고 소통하고 성찰할 것이다.

며칠 후 나는 새로 밴드를 만들고 사진 파일을 올렸다. 그곳에 당사자들을 초대했다. 그리고 가장 마음이 담긴 사진에 정성껏 댓글을 달았다.

"저는 이 때가 최고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결혼은 두 사람의 결합이고 두 존재의 만남입니다. 입맞춤은 서로에게 헌신을 맹세하는 순수함을 상징합니다. 이 새로운 부부의 뒤에서는 십자가가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들에게 부부의 연을 맺어 주었고, 지금도 이들의 출발을 축하하고 증언하며 사랑으로 감싸주고 있습니다. 화면에 보이지 않는 뒤편에서는 수많은 하객의 축하 박수가 들려 오는 듯합니다. 제게는 천사들의 나팔 소리도 들립니다. 믿음으로 사는 분들의 특권입니다. 아, 대단히 중요한 분이 빠졌군요. 마음으로만 함께 하고 계신 어머니의 모습도 겹쳐 보입니다. 아마 너무나 큰 사랑을 주는 분이라서 오히려 안 보였나 봅니다. 이 장소 전체를 감싸고 있던 밝은 기운이 무엇이었는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결혼을 축하 드립니다."

"조금 전 결혼식이 다 끝나고 신랑 신부는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런웨이를 함께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가족사진, 친지 사진도 다 찍은 다음입니다. 친구에게 부케를 던지는 신부, 친구는 그 꽃다발을 받습니다. 옆에서는 신랑이 박수를 쳐주고 있습니다. 신부의 얼굴에는 기쁨이 담겼습니다. 박수치는 신랑은 진지하고 행복한 모습입니다. 이들은 사랑을 던져줍니다. 친구는 기쁨, 행복, 사랑을 모두 나눠 받습니다. 보십시오. 저 천상의 장면을. 천국이 있다면 바로 지금, 여기에 내려와 있습니다."

댓글을 다는 내 마음에도 알 수 없는 충만한 기운이 가득히 번지고 있었다.

코치의 태도는 코칭 장면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며 지지하고, 그에게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을 함께 하는 파트너가 되어 주는 것, 그럼으로써 그가 가진 잠재력을 창조적으로 발휘하며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코치가 지녀야 할 태도, 즉 코칭 프레젠스(Coaching Presence)이다.

김종성 코치 / (현) 코칭경영원 파트너코치 / 사진작가 / (전) 외환은행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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