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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파라다이스시티 '누군가는 불편한 낙원’

여직원 노출 강요, 사내 '몰카사건'도 발생

이수영 기자 | lsy@newsprime.co.kr | 2017.06.21 17:28:56

[프라임경제] #. "유니폼 때문에 일을 제대로 못할 정도에요. 등이랑 허벅지가 훤히 보일 정도라서요. 손님들도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종종 난감해 하시고. 얼마 전에는 어떤 손님이 '아가씨 부모님은 딸이 이런데서 일하는 거 아시냐'고 우리 직원에게 그러시더라고요. 유흥업소 접대부인줄 아셨는지…. 아예 퇴사하겠다는 친구를 회사가 겨우 붙들어서 다른 부서로 옮겨줬어요. 그만두는 직원들이 많다보니까 어쩔 수 없죠."

이는 최근 파라다이스시티 안에 있는 바(Bar) 소속 직원의 이야기를 일부 옮겨온 것입니다.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는 동북아 최대 복합리조트로 '낙원'이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은 곳인데요. 인천국제공항을 배경으로 외국인 카지노와 고품격 휴양시설을 앞세워 지난 4월 거대한 닻을 올렸습니다.

꿈의 휴양 낙원을 자처하는 파라다이스시티가 정작 직원들, 특히 여직원들에게는 거북한 장소가 된 모양인데, 어떤 사연인지 풀어보겠습니다.

영종 파라다이스시티 전경. ⓒ 파라다이스

파라다이스시티 개장 일주일 만인 지난 4월27일, 본지가 그곳에서 벌어진 성희롱 사건을 보도한 이후 사측으로부터 피해를 당했다는 내부제보가 꾸준히 쏟아졌습니다.

임원 간 파벌싸움에 휘말려 차별대우를 당했다거나 상사의 상습적인 폭언 탓에 병을 얻었다는 직원, 법으로 정해진 추가근무수당을 제대로 안 준다는 현실적인 주장까지 내용도 다양했죠.

특히 복수의 제보자들이 특정 영업장의 선정적인 유니폼을 문제 삼았는데요. 일하기 불편한 것은 물론, 지난 3월 소프트 오픈(가개장) 당시 직원들 사이에서 '몰카'(몰래카메라) 시비까지 붙었지만 회사는 손을 놓고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제보자들에 따르면 당시 상황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여직원들은 처음 유니폼을 받은 직후부터 지속적으로 디자인 수정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허리를 굽히기 어려울 정도로 등과 다리가 고스란히 드러난 탓에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존 디자인 그대로 소프트 오픈 일정에 맞춰 전 직원이 모이는 다과회가 열렸는데 그날 우려하던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다른 영업장 직원들이 직원들의 유니폼 차림을 스마트폰으로 몰래 촬영했다 발각된 것입니다.

카메라에 찍힌 직원들이 신입인지라 현장에서 범인을 잡을 엄두를 못 내다가 다과회 이후 해당 영업장 담당자에게 사실을 알렸다고 합니다. 그는 '범인을 찾아내 조치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한 달 넘게 아무 소식도 없었다는군요.

참다못한 직원들은 이후 상급자에게 유니폼 교체를 직접 건의했다고 하는데요. 이를 받아친 상사의 말이 걸작입니다.

제보자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너희(직원들) 입장만 생각하지 말고 손님 입장에서도 생각을 해라. 손님들 보기에 좋아야지"라는 답이 돌아왔다는 겁니다.

직원들은 개인적으로 유니폼을 수선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마저 거절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실이라면 파라다이스시티가 여직원을 서비스 상품이자 도구 취급하는 기업으로 낙인 찍힐 수 있는 대목입니다.

최근 명망 있는 법학자로 꼽히던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가 청문회 문턱도 못 밟고 장관 후보에서 물러난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를 낙마시킨 결정적인 흠결도요. 바로 저서와 과거 혼인 경력에서 드러난 부적절한 여성관이었죠.

비뚤어진 성(性)의식은 요즘 사회를 관통하는 이슈이자 누군가의 됨됨이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정도로 중요한 문제가 됐습니다.

그런데 제보 내용을 파라다이스 측에 확인하는 과정에서 묘한 기시감을 느꼈는데요. 회사 입장을 대변한 사람들이 직원들의 불만을 이해 못하거나 입을 다물었기 때문입니다.

파라다이스의 한 고위 임원은 "직원들끼리 도촬사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이후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진행했고 불미스러운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단단히 당부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책임자에 대한 문책이나 징계는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 역시 인정했는데요. 말로만 강조한 '당부'가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일부 직원들은 "한 번 벌어진 일이 두 번은 안 생기겠느냐"며 불안해했으니까요.

원흉이 된 유니폼 교체는 최근까지도 지지부진했다는데요. 정작 본사 측은 직원들이 한 번도 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적이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정확히는 '공식적으로 접수된 건의가 없다'는 것인데 어쩌면 논란이 진실공방까지 번질 수도 있다는 얘기죠.

한 가지 더 놀란 것은 직원들 편에 서야할 노동조합 내에서도 '뭐가 문제냐'는 반응이 나왔다는 겁니다.

파라다이스시티 노조 관계자는 기자에게 "안에서 그런(유니폼 불만 관련) 것까지 제보하느냐"고 되물었는데요. 노출이 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 삼을 정도는 아니라는 취지였습니다.

그러면서 "임금협상부터 시작해서 사측과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은데 이제 막 개장한 업장인데다 사드이슈 등 안팎으로 어려운 일이 닥치다 보니 분위기가 어수선하다"며 "회사가 잘 되는 분위기여야 하는데 지금은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을 아꼈습니다.

엉뚱한 곳에서 노사화합의 현장을 확인했지만, 어쨌든 파라다이스시티의 흥행 실패를 걱정하는 이들은 내부에서 반복되는 파열음이 반가울리 없을 텐데요.

금융투자업계 자료를 보면 파라다이스시티는 올해 1분기 124억원 상당의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속된 말로 '오픈발'을 제대로 못 받았다는 뜻이죠.

국내 카지노시장은 마카오(33조원 규모)의 3% 정도로 규모가 아주 작습니다. 공기업 GKL의 등장으로 독점권까지 놓친 파라다이스에 있어 1조2000억원 넘게 투자한 파라다이스시티는 그야말로 마지막 승부수인데요.

물론 개장한지 1년도 채 안 된 만큼 성급한 판단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심혈을 다한 초대형 프로젝트가 시작부터 '대박'을 터트려도 모자란 마당에 조직 자체가 흔들리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닙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직원들에게 가혹한 기업문화가 파라다이스시티를 점점 더 '불편한 낙원'으로 만들고 있음을 누군가는 빨리 깨닫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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