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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대의 글쓰는 삶-39] 내려놓는 마음

 

이은대 작가 | prewss@newsprime.co.kr | 2017.07.14 14:49:54

[프라임경제] 백곰 실험이라는 것이 있다. 두 집단에 똑같은 백곰의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한 개의 집단에는 '절대 백곰의 모습을 기억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나머지 집단에는 아무런 주의를 주지 않는다. 실험이 끝나고 나면, 기억하지 말라는 당부를 들은 사람들이 백곰의 모습을 훨씬 더 많이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

유사한 경우가 우리 일상에도 많다. 잠을 자야 한다는 강박으로 잠자리에 들면 몇 시간이나 뒤척이게 되고, 프레젠테이션을 잘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무대에 서면 실수를 연발하게 된다. 무슨 일이든 '해내야 한다' 혹은 '해서는 안 된다'라는 강박에 짓눌릴 때, 결과는 기대와 정반대일 경우가 많다.

필자는 최근 금전적으로 그리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좋지 않은 일들을 겪고 있다. 한편으로는 과거의 치명적인 경험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근심할 만한 거리가 못 된다며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역시 사람은 마음이 불편할 때 생기를 잃게 되는 듯하다.

기분전환을 위해 몇 가지 노력을 시도해봤다. 매일 글을 썼고, 산책을 하고, 산에 오르기도 했다. 차를 마시고, 독서를 하고, 명상을 했다. 다양한 시도에도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한 불안함과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심할 때에는 식은땀을 흘리며 새벽잠을 설치기도 했다.

세상의 뒤편에서 수감생활을 할 때, 내가 가장 바랐던 것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가족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욕심나지 않았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싶은 욕망도 없었다. 그저 매일 아침 가족과 함께 눈을 뜨고, 따뜻한 저녁밥 한 그릇 오붓하게 먹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간절한 바람을 창살 사이로 보이는 달을 보며 밤마다 빌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지금 가족과 함께 살고 있으며, 매일 아침 가족과 함께 눈을 뜨고, 매일 저녁 따뜻한 밥을 가족과 함께 식탁에 앉아 나누고 있다.

아무런 걱정도 없는 삶, 그저 편안하고 즐겁기만 한 삶, 문제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평화로움.

어쩌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삶일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삶이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완벽한 평화로움이 아니라 '문제' 그 자체라는 사실을. 그래서 언제나 조금은 염려되고, 조금은 부담스럽고, 조금은 어렵고 힘든 시간들이 늘 곁에 있는 것이다.

내려놓는다는 말은 '문제'를 무시하거나 회피하라는 뜻이 아니다. 내 삶에 어려움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먹구름이 지나면 다시 파란 하늘이 드러나듯이, 우리 삶에 다가오는 모든 역경들도 결국은 행복과 기쁨을 뒤에 달고 오기 마련이다.

잠시의 기쁨에 취해 기고만장 하지 말아야 하며, 순간의 무거운 마음으로 삶을 비관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백곰의 사진들을 볼 때는 그저 '백곰이구나'라는 생각만으로 충분하듯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그저 흐르는 강물처럼 여길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을 만날 수 있으리라.

벗어나려고 발버둥치지 않기로 했다. 내 삶에 다가오는 모든 시련과 고통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왕이면 환영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시련과 고통 뒤에 만난 지금의 삶이 얼마나 값지고 행복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듯이, 이번에 만나는 힘겨운 시간 뒤에 만나게 될 희열을 또 한 번 기대해본다.

이은대 작가/<내가 글을 쓰는 이유>,<최고다 내 인생>,<아픔공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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