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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벤토탐방] 동북지방 명품 벤토…성게와 전복

"벤토 알면 문화 보이고 문화 알면 일본 보인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 hyi@newsprime.co.kr | 2017.07.25 14:10:58

[프라임경제] 성게는 전 세계 연안에 고루 분포하는 해산물로 단백질 함량이 풍부해 '바다의 호르몬'이라는 별명이 있다. 바다 생물로는 특이하게 인삼이 가진 사포닌을 함유해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비만 예방에 도움을 준다.

쿠지(久慈)시 리하스테이의 성게벤토. ⓒ 철도가 보이는 호텔 홈페이지

최근 연구결과에 의하면 200년 넘게 생존하는 개체가 발견되는 등 아직도 베일에 싸인 부분이 많은 생명체다. 

성게를 채취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바닷속으로 잠수해 바위에 붙은 것을 따내거나 모래 속에 파묻힌 것을 찾아내야 한다.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른 채취방법이나 도구가 발명된다면 소비가 더 대중화되고 갯녹음(백화) 방지에도 도움 될 텐데 아직 원시적 방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전부터 산모용 미역국이나 고급젓갈 재료로 사용했으며 요 근래는 고급 비빔밥에 들어가기도 한다. 

일본도 성게가 귀하기는 마찬가지다. 일본은 옛날부터 성게를 숭어 어란, 해삼 내장젓갈과 함께 3대 진미로 꼽았다. 이전에는 젓갈 형태가 대부분이었지만 현대로 넘어오며 회·초밥·담금 술 등에 귀하게 사용된다.

그러나 공급량이 많지 않고 선도유지가 어려워 일반 벤토로 상품화되기에는 난관이 많다.

혼슈(本州) 동북부의 이와테(岩手)현 해안을 달리는 산리쿠(三陸)철도 '쿠지(久慈)'역에 '리하스 테이(亭)'라는 매점이 있다. 이 매점에는 산리쿠 지역에서 채취한 성게로 하루에 20개만 만든다고 알려진 '환상의 벤토'가 있다.

지난 1986년부터 열차 내에서 판매되던 이 지역 에키벤이 전국 지명도를 얻게 된 것은 2000년 NHK뉴스에 소개되면서다. 당시 전국에 보편화된 열차여행 붐도 이름을 알리는 데 도움 됐다.

이 벤토의 소박한 포장지를 벗기고 뚜껑을 열면 사방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성게 양에 놀란다. 족히 5개는 넘을 것 같은 엄청난 양이다.

'철도가 보이는 호텔'이라는 여행지 사이트는 "일단 먹기 시작하면 젓가락을 놓을 수 없다. 정말 맛있다. 이것은 하늘이 준 선물"이라며 극찬한다. 판매가격 1470엔인데 과연 수지가 맞춰질까 걱정될 정도다.

이 점포는 오전 7시에 문을 여는데 제한된 순번에 들기 위해서는 미리 전화로 예약해야 안심할 수 있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인 비수기에는 사전 주문받은 것만 제조한다.

성게를 일본어로 '우니(海胆, 海栗)'라 한다. 雲丹(운단)이라는 표기방식도 있는데 이는 가공한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한다. 성게가 가장 맛있을 때는 산란 직전 생식선이 팽창하는 6~7월경이다. 우리들이 흔히 알이라 생각하고 먹는 부분은 사실 성게의 생식선(정소와 난소)이다.

'패류의 여왕'으로 불리며 성게 못지않게 인기 있는 전복은 다른 해물에서 느낄 수 없는 담백하고 고소한 맛, 쫄깃하고 아삭한 식감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뭇사람의 입맛을 끌어당긴다.

한·중·일 3국도 이전부터 전복을 즐겼다. 실제 기원전 7세기 중국 춘추시대를 배경으로 탄생한 고사(故事) 관포지교에 나오는 '포(飽)'는 전복을 뜻한다. 전복이 사람 성(姓)으로 쓰일 만큼 친숙한 존재였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포(飽)는 일본어로 '아와비(飽)'라 발음한다. 일본은 에도시대 '明飽(메이호)'라는 마른 전복을 중국(당시 청나라)에 수출했다. 이 전복은 제조 과정이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한데 중국인들이 매우 귀하게 여기는 식재료다.

에도 말기에는 간장이나 소금에 절여 답례품을 만든 기록이 있으며 요즘은 회·미즈가이(물회)·찜·스테이크·죽 형태로 식탁에 오르고 있다.

일본 내 전복 주산지는 세토내해와 동북지방의 태평양 연안이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어획량이 줄어들자 수요 충당을 위해 산리쿠 종묘를 한국에 이식해 양식하는 등의 방법으로 외국산을 들여오고 있다.

전복 벤토도 성게와 마찬가지로 그다지 대중화 되지 않았다. 가격도 1000엔 중반에서 2000엔대로 꽤 고가에 속한다. 벤토에는 '사카무시(酒蒸し)'라는 전통방식으로 찐 전복이 들어간다. 이는 조개나 전복 등에 술(일본주)을 부어 2~3시간 동안 은근히 쪄내는 조리법이다.

일본에서는 아키타(秋田)현과 아오모리(青森)현 해안을 운행하는 JR 고노센(五能線)에서 판매하는 전복 벤토가 많이 알려졌지만, 맛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지 않다.

쿠지역 성게 벤토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철도가 보이는 호텔 리포터는 "단맛이 강하고 오래 쪄 풍미가 훼손됐다. 밥도 너무 질다. 책임자는 돈이 들더라도 다른 맛있는 요리도 먹어보고 업그레이드해주기 바란다"며 크게 한 방 먹였다.

그렇다면 제대로 된 전복 벤토의 모양과 맛은 어떨까? 각 분야 전문지식을 제공하는 JLogos가 찾아낸 2100엔짜리 통 전복 벤토에 대한 평가는 다음 같다.

"말 그대로 전복 한 개가 통째로 들어간 것이 최대 매력. 씹히는 감촉이 좋고 맛이 뛰어나다. 전복과 함께 들어있는 연어 알과 게살도 지나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용기 디자인도 유명 디자이너 작품으로 결코 돈이 아깝지 않은 뛰어난 벤토다."

이 벤토는 이와테현 미야코(宮古)라는 항구도시에 위치한 향토요리 전문점 '우오모토(魚元)'에서 만들고 있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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