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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갑질 만연의 시대, 장판옥 되새겨야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7.07.31 14:54:55

[프라임경제] 임진왜란 의병장 중에 최진립 장군은 병자호란까지 생존했다. 병자호란 당시 기준으로도 고령이었다. 그럼에도 다시 전란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그가 향년 69세로 순절할 때 노비 둘이 함께 따라나섰다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주 최씨 집안에서는 최 장군을 제사지낼 때 이 노비의 제사도 함께 모신다.

반상의 구분이 엄격하고 노비를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던 조선시대의 분위기 속에서도 이렇게 공로를 기리고 죽음을 위로하는 경우도 있다.

집안 내부의 기억 정도가 아니라, 아예 국가 차원에서 노비의 희생을 조명한 사례도 있다. 단종이 숙부 세조의 손에 폐위되고 끝내 사사된 적이 있는데, 그 희생자들이 대단히 많았다. 훗날 정조의 지시로 계유정란부터 사육신 사건, 순흥 옥사 등에 연루돼 죽은 이들을 조사해 명부를 작성하고 위로하기로 했다.

널빤지 같은 큰 목판에 명부를 기록하고, 이를 모신 곳이 장판옥이다. 여기에는 충신위 32위, 조사위로 186위를 모시고, 환관군노위로 44위, 여인위로 6위를 함께 명단에 올렸다.

궁녀들은 물론 순흥과 풍산 지방 관노들과 무녀들도 역사 재조명 와중에 말석이나마 이름을 올리도록 배려한 것이다.

대기업이 인사 관리에서 효용을 다한 직원들을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내몬다고 해서 여러 번 문제가 돼왔으나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기계나 부품처럼, 효용 중심으로 사람의 값어치를 매기는 세태가 확고하게 굳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채소를 파는 유통체인부터 피자집, 설렁탕집 등 부문을 가리지 않고 속칭 갑질 사례가 거론된다.

주인이 생살여탈권을 갖는다는 노비조차 공적이나 억울함이 있으면 품격을 갖춰 기록하고 추모를 했는데, 오늘날 직원이나 거래처, 가맹점주 등을 대하는 태도가 오히려 그보다 못한 시대인 것이다. '종이나 노비 부리듯'이라고 갑질 논란을 포장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점을 기억하고, 문제를 빨리 해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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