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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삼성 오너 이재용을 '꼭두각시'로 만든 것

10개월 전 삼성전자 등기이사 '책임경영' 외쳤던 건 꿈이었나

이수영 기자 | lsy@newsprime.co.kr | 2017.08.04 18:41:11

[프라임경제] 소유주를 뜻하는 단어 '오너(owner)'는 우리나라, 특히 기업문화에서 하나의 대명사로 통한다. 기업의 소유자, 좁게는 재벌경영인을 지칭하는 이 말은 근래 '갑질' '편법승계' 등 부정적인 현상과 유독 자주 엮이면서 덩달아 눈총을 받고 있다.

오너의 독단적 판단 또는 불법행위로 인한 사건이 회사에 큰 손실로 이어지는 현상을 오너리스크(owner risk)라 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오너리스크가 심각한 기업을 꼽자면 단연 삼성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전직 대통령이 비선실세와 합작한 국정농단 스캔들에서 주조연급(?) 등장인물로 반년 가까이 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이 부회장뿐 아니라 선대부터 수십 년간 오너의 최측근으로 활약했던 고위임원들 역시 줄줄이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섰다.

탄핵된 대통령이 오너들을 독대하며 야단을 치고 비선실세는 기업을 사금고마냥 이용했다는 다수의 증언, 정황에 비춰 삼성과 이 부회장이 이들과 연관된 것은 필연적일지 모른다.

정작 놀라운, 경우에 따라 충격적인 대목은 따로 있다. 지난 4개월 동안 이어진 이 부회장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삼성그룹 오너'의 진면목이다.

이 부회장은 자신과 관련된 모든 혐의와 의심에 대해 "모른다"로 일관했다. 심지어 본인의 역할과 권한을 극도로 과소평가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변호했다.

"저는 한 번도 미래전략실 소속이었던 적이 없고, 회장님 와병 후 그룹을 대표하는 업무가 조금 늘어서 그때마다 미래전략실의 도움을 받았을 뿐이다."

"미전실 해체·전경련 탈퇴 발언은 최지성 실장이 조언한 것이다."

2일 피고인 신문에서 이 부회장은 중요한 결정은 미래전략실(미전실), 그중에서도 최지성 미전실장의 조언을 따랐을 뿐임을 유독 강조했다. 정유라 승마지원 등 각종 편의를 제공한 것도 자신은 보고조차 못 받았으며 미전실 해체·전경련 탈퇴를 직접 언급했지만 그럴 권한이 없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최지성 실장은 이 부회장의 '가정교사'로 통하는 실력자이고 그가 이끄는 미전실이 삼성그룹 전체를 관리하는 컨트롤타워였다. 결국 오너일가를 '로열(royal)'로 모시는 극소수 가신(家臣)들이 이 부회장을 쥐고 흔들었다는 얘기가 된다.

지난달 14일 증인으로 출석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역시 비슷한 취지의 분석을 내놓았다.

김 위원장은 "이건희 회장의 가신들이 많은 정보를 왜곡하면서 이 부회장의 올바른 판단을 방해했다고 생각한다"며 "그 때문에 (이재용 부회장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작년 10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 등기이사로 선임됐을 당시가 떠오른다.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여파로 이건희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8년 만에, 삼성전자는 갤럭시노트7 발화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오너 책임경영체제를 선언했다.

등기이사는 이사회 구성원으로 경영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미등기이사와 구분된다. 미등기이사에 머물러 있는 오너일가에 '책임회피용 꼼수'라는 비난이 쏟아졌던 이유다.

이 부회장의 등기이사 선임 소식이 전해진 그날, 온종일 '책임경영'과 '뉴(new)삼성'을 강조하는 비슷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회장의 소탈한 일상에 호감을 느꼈고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10개월이 지난 지금, 반짝였던 책임경영의 가치와 뉴삼성을 이끌 오너는 자신을 꼭두각시라 '인증'해버렸고 심지어 이를 이유로 법적 책임을 벗으려 하고 있다.

기업의 합리적 지배구조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핵심이다. 대한민국 1위 삼성조차 하지 못한 '그것' 때문에 어쩌면 오너라는 말은 자부심이나 명예, 특히 '책임'과 영영 동떨어진 개념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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