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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고달픈 청춘 위로' 탈을 쓴 집단이기주의

대학생 기숙사 건립 예정지마다 주민 반대 극심

남동희 기자 | ndh@newsprime.co.kr | 2017.08.08 08:32:47

서울시 성북구의 한 아파트 단지내 설치된 현수막. ⓒ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지난 주 취재차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 단지를 방문했습니다. 이른 오전 여느 아파트와 다를 것 없이 평온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던 중 무심결 단지 초입에 걸린 현수막을 보게 됐는데요.

크고 굵직한 글씨체로 '대학생들 주거비가 문제가 아니라 대학등록금이 비싼 것이 문제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비싼 등록금으로 고통 받는 청년들을 위로하는 문구가 마음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더군요. '평범한 아파트 단지에 대학등록금을 걱정하는 현수막이 왜 설치됐을까' '최근에 대학생들 주거비 관련한 이슈가 있나' 등 이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현수막을 만든 단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숙사 반대 추진 위원회'였습니다.

조사해보니 이 아파트 일부 주민들은 '기숙사 반대 추진 위원회'를 설립해 정부에서 추진 중인 대학생 연합 기숙사(행복기숙사) 건립을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이 현수막도 이들이 행복기숙사 설립 반대 의견을 '교묘히' 돌려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행복기숙사는 정부가 지방서 올라온 대학생들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만드는 곳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학생들에게 숙소를 제공합니다. 교육부 산하 한국사학진흥재단은 이곳, 서울 성북구 이 아파트 인근 국유지(5164.4㎡)에도 2015년 행복기숙사를 짓겠다고 했습니다.

완공되면 국민대학교와 성균관대학교 등 인근 대학의 지방 출신 학생에게 월 20만원으로 제공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근 아파트 주민의 거센 반발로 공사는 구청에 건축허가를 받았음에도 중단됐습니다.

단체가 내세운 반대 이유는 먼저 공사 과정에서 소음과 분진 등으로 환경이 오염이 우려된다는 겁니다. 또 공사 차량 때문에 초등학생들의 등·하교 안전이 저해될 수 있고요.

일부 주민들은 재산권에도 피해가 간다고 주장합니다. 11층에 달하는 기숙사다 보니, 인근 저층 아파트는 조망권과 일조권을 침해당할 수 있다는 것. 또 해당 부지에 행복기숙사대신 공원이 들어선다면 아파트 가격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기에 못 마땅하다는 의견입니다.

의견 차이는 있을 수 있으므로 반대하는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일부 주민의 '도를 지나친' 집단 이기주의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한 주민은 재단과 성북구청 홈페이지에 '딸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성범죄가 우려된다'는 민원을 남겼습니다. 대학생들이 술 먹고 성범죄를 일으킬 수도 있기에 기숙사 건립을 반대한다는 겁니다. 당시 이 발언은 온라인상에서 대학생들을 잠재적 성범죄로 취급한다며 누리꾼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기숙사 건립 반대와 엮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기숙사 건립 반대 단체는 지난달 5일 '세월호의 참사를 벌써 잊으셨나요?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세요'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걸었습니다. 일부 언론과 주민들의 질타로 현수막은 얼마 안 가 내려졌습니다.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관리사무소에 신고하지 않은 일부 주민의 개인 단체"라며 "이 단지의 모든 주민이 (행복기숙사 건립을)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합니다. 세월호 관련 현수막이 문제가 됐을 때도 보기 불편하다는 주민들의 요구가 많아 철거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행복기숙사 건립은 이 단지에서만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2013년 고려대학교 소유의 개운산 부지에 1100명 규모의 기숙사를 짓는 것도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중단됐습니다. 산림훼손, 인근 치안 저하 우려 등 이유에서였습니다.

한양대학교에서도 2015년 1990명 수용 가능한 기숙사를 짓고자 했지만 인근 영세 임대 업자들이 노후 생활이 위협받는다며 격렬히 반대해 시작조차 못했습니다.

대학알리미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4년제 대학의 재학생 대비 기숙사 수용률은 20.1%라고 합니다. 대학생 5명중 1명만이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는 것이죠. 기숙사는 부족한데 월세는 수익이 없는 학생들이 부담하기엔 너무 비싸고 계속 오릅니다.

부동산 관계자에 따르면 서울 주요 10개 대학가 주변 33㎡(10평) 원룸 평균 월세는 50만원. 같은 전용면적 보증금도 지난해보다 377만원 올라 1454만원에 달한다고 하네요.

결국 이를 참지 못한 일부 대학생들(경희대·고려대·한양대 총학생회)은 지난 2일 박원순 서울 시장에게 '대학생 기숙사 확대'를 요구하는 면담을 신청했습니다.

몇 해째 계속되는 취업난에 고된 생활고까지 겪고 있는 대학생들의 처지가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데 '고달픈 청춘 위로'라는 탈을 쓴 '집단이기주의'는 우리 시대 청년들을 더욱 힘겹게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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