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전두환씨, 6명 죽인 자도 '사죄'를 합디다"

2017-08-10 18:23:50

- '택시운전사' 법적대응? "후회도 반성도 없는 혐오인생"

[프라임경제] 2009년 1월 중순 세밑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아침 서울구치소에서 만난 그는 옥색 수의 차림에 다소 숱이 적은 머리를 가지런히 넘긴 평범한 30대였다.

구치소 일반접견 원칙에 따라 10분간만 허용된 접견신청에 응한 그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살인마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2009년 1월 일명 '고시원 방화살인사건'의 범인을 서울구치소에서 접견했다. 위는 당시 접견 신청서 사본. 아래는 범행 현장사진. 다친 피해자가 범인을 피해 도주하는 와중 119 구조요청을 하는 과정에서 피가 흥건했다.

2008년 10월 서울 논현동 소재 고시원에 머물던 그는 방에 불을 지른 뒤 흉기를 들고 길목을 막아선 채 연기와 화염을 피해 뛰쳐나오는 사람들을 그대로 난자했다.

이른바 '논현동 고시원 방화·살인사건'으로 6명이 목숨을 잃었고, 7명은 평생 씻기 어려운 중상을 입었다.

사건의 잔혹성과 함께, 얇은 벽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 뒤엉켜 살던 마지막 보금자리에서 벌어진 사건은 청년빈곤과 관계단절의 부작용, 개인의 인격 장애가 총체적으로 버무려진 참극이었다.

가해자에게 "피해자들을 대신해 찾아왔으니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운을 떼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본인이 저지른 죄를 모두 인정했다. 또한 피해자와 유족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가 가장 자주 입에 올린 단어는 '후회'였다. 사죄의 뜻을 반복해 밝히면서도 그는 이를 말로 옮기는 것 자체가 혐오의 대상이 될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또한 그는 고시원 창고 안에서 출동한 경찰에 검거될 때까지 누군가 자신을 빨리 찾아 제압하길 기다렸다고도 했다.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듯, 심지어 거짓으로 꾸며 '연기하듯' 말을 잇던 그가 순간 눈을 피하고 고개를 숙이며 동요한 순간이 있었는데 바로 숨진 희생자 중 가장 어렸던 21살 대학생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다.

그는 "(피해자들이)어떤 사람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스물 한 살짜리 젊은이가 당신 손에 죽었다'고 쏘아붙이자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법원 판결에 남은 목숨을 맡길 것"이라고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욕을 퍼붓고 손가락질해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지은 죄가 있으니 손가락질은 받아도 싸다. 쏟아지는 비난은 내 몫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내가 저지른 죄니까."

법원이 어떤 처벌을 내리더라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한 그는 4개월 뒤 1심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하자 항소를 포기했다. 구속 직후 가족과도 등을 돌린 그는 기자와의 접견을 마지막으로 사형수의 삶을 받아들인 셈이다.

"광주 5·18 사건 자체는 폭동인 게 분명하지 않나. 법적 정당성 없는 시민이 무장하고 무기고를 습격해 간첩들이 수용돼 있는 교도소를 집요하게 습격했다. 군수공장을 습격하고 장갑차나 사병들의 무기를 빼앗아 습격하는 것을 폭동이 아니고 뭐라고 하겠는가."

전두환 정권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인사는 최근 한 공중파 프로그램에 출연해 1980년 광주항쟁을 이렇게 평가했다. 민간인 200여명이 피살 혹은 실종됐고 4000명 이상이 다친 군부정권의 폭압은 법원 판결과 생존자의 일관된 증언, 외신의 보도기록을 통해 증명된 대한민국의 '암흑기'임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가해자와 그의 추종자들은 37년이 지난 지금도 회고록을 빙자한 역사왜곡부터 전파낭비를 서슴지 않는 식으로 자기부정에 심혈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6명 죽인 살인자가 후회와 사죄로 최소한의 인간성을 드러낸 반면 200여명의 시민을 살해한 과거의 권력자와 그를 도운 세력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흥행하자 법적대응을 운운하기 시작했다. 명백한 '흑역사'를 마주 보는 것이 부끄럽다면 대응하지 않는 게 더 유리할 것인데, 유독 목소리를 높이며 당당한 것은 국민적 공분 이상으로 호기심을 자아낸다.

그저 저지른 죄의 무게와 잔혹함에 반비례해 인간성이 소멸한 탓일까, 혹은 지은 죄에 비해 너무 가벼운 처벌이 양심의 무게를 깃털보다 가볍도록 증발시킨 것은 아닐까?

말 그대로 '그것이 알고싶다'.


이수영 기자 lsy@newspr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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