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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개와 늑대의 시간

 

조성철 새시대를여는벗들 상임대표 | press@newsprime.co.kr | 2017.08.21 00:17:57

[프라임경제] 땅거미가 지면 모든 것은 면에서 선으로 변한다. 오직 실루엣만 보이는 그 시간, 멀리서 네 발 달린 짐승이 나를 향해 달려온다. 그 짐승이 내가 사랑하는 개인지 아니면 나를 물려는 늑대인지 구분할 수 없는 순간. 프랑스에서는 그 순간을 '개와 늑대의 시간(heure entre chien et loup)'으로 부른다.

우리는 지난 겨울부터 시작한 평화적인 시민혁명으로 부정한 권력을 끌어내렸다. 사상 초유의 '장미대선'으로 새 정부를 출범시켰다. 엄동설한 굽은 손에 입김 불어가며 치켜 든 촛불로 밝힌 정의였다.

많은 이의 기대를 담고 출범한 새 정부는 생각보다 일을 척척 해내지만 어딘지 모르게 힘에 부쳐 보인다. 받는 기대에 걸맞은 힘이 부족해서다. 달리 말하면 부정한 권력은 끌어내렸지만, 그동안의 적폐를 일소하지 않은 상태여서다. 청산해야 할 것과 새롭게 틔울 싹이 혼재한 상황. 그래서 우리는 지금 개와 늑대의 시간 속에 있다.

우리는 4·19, 5·18, 6·10을 거치면서 두 가지 경험을 쌓았다. 첫째는 '아래로부터의 힘은 권력을 엎을 만큼 세다'이다.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깐이라도 방심하면 반동으로 회귀한다'이다. 특히 반동은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충분히 맛봤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불가역적으로 다졌다고 믿었던 민주주의, 남북교류, 복지 같은 가치들이 한 순간에 무너지지 않았던가.

나를 물려고 달려드는 늑대를 물리치는 방법 즉, 적폐 해소책은 무얼까. 수많은 투쟁에서 우리가 승리했던 요인과 분패 요인을 동시에 실천할 것을 역사는 말하고 있다.

지역과 자치는 두 개 '필승카드'를 실행할 최적의 단위이자 방법이다. 동, 직장, 동호회와 같은 생활단위 공동체 속에서 소통과 교류가 일상으로 이뤄지고,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의 협치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래로부터의 힘'이다.

'방심'에 대한 답은 생활정치에 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이 옳다. 지역은 생활정치를 실행해 민주주의를 보존하며 키우고, 그 열매를 퍼뜨리는 최적의 단위이다.

1991년 지방의회 출범,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직선으로 시작한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준수한 청년이 됐다.

'전례가 없고 민도가 낮아 혼란만 가중될 것'이라는 일부 우려와 달리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복지 증진에 기여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며 사회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역주행에 맞서 지방자치는 지역 특성에 맞는 정책으로 서민 생존권과 민주주의를 지켰다.

광주 역시 주민의 참여와 자치로 지방자치의 꽃을 활짝 피워냈다. 특히 광주는 80년 5월, 동서고금을 살펴봐도 유례없는 대동세상을 일군 경험이 더해져 전국적인 모범 모델을 많이 만들었다.

주민이 이웃과의 갈등을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전국 최초의 마을분쟁해결센터를 운영하고, 모바일 투표로 현안을 결정, 복지호민관 제도를 동별로 운영해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광주 남구의 사례로 보듯 지방자치 역량은 나날이 성장 중이다.

새 정부가 개헌을 추진한다. 87년 체제는 독재정권 타도와 재등장 방지를 요구하는 시대정신에 따라 절차적 민주주의에 집중한 측면이 컸다. 앞으로의 개헌은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그릇’에 담을 내용적 민주주의 구현에 초점을 맞춘다.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내용적 민주주의를 구현할 에너지가 지역에 있기 때문이다.

청산해야 할 적폐와 새롭게 구현해야 할 가치가 혼재된 지금. 겉으로는 평화스러워 보이나 시대의 흐름을 거꾸로 돌리려는 움직임이 곳곳에 도사리는 난세다. 난세에는 치세를 바꾸는 영웅이 등장한다.

그 영웅은 다름 아닌 '지역'이다. 보다 정확하게는 주민들이다. 민주주의를 열망하고, 학습하고, 실천하는 주민들이 영웅이다. 그리고 생활정치를 활발하게 일으키는 자치는 영웅을 길러내는 요람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여기에 있다. 주민을 주인으로 세우고, 주인이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마당(제도)을 확보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이 나라 민주주의와 민생의 퇴보를 막고 전진시킬 수 있는 길이다.

조성철 새시대를여는벗들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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