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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김상조마저 꺾은 네이버·다음, 그리고 안철수

날만 선 투박한 비판, 과거 브이소사이어티 동지라서?

이수영 기자 | lsy@newsprime.co.kr | 2017.09.12 14:59:56

[프라임경제] "사실 같은 기사라도 네이버에 노출되지 않으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그래서 네이버 제휴에 성공한 언론사들이 으레 '저희 네이버 고시 통과했습니다' 한 마디만 하더라고요. 그럼 대접이 달라질 수밖에 없죠."

최근 모 업체 홍보담당 임원과 식사자리에서 나온 얘기다. 그는 부정적인 언론 보도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물리적 여건상 가장 파급력이 큰 채널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며 멋쩍어했다. 신생 또는 소규모 언론사들이 '네이버 고시'에 매달리는 이유와 적잖은 부작용이 '그것'의 막강함 때문이라는 것에 공감하는 바였다.

새삼스럽지만 네이버의 힘은 이미 숫자로 입증된 사실이다. 웹마케팅 분석업체 비즈스프링에 따르면 올해 1월1일부터 이달 10일까지 검색포털에서 네이버의 비중은 평균 85.12%에 달한다. 같은 기간 뉴스·미디어 검색에서도 네이버 점유율은 72.04%를 차지해 다음(15.76%)과 구글(9.58%)을 멀찌감치 제쳤다.

그러니 대한민국 포털시장은 네이버 아래 평정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것인데, 이는 특정 시장에 대한 독과점 문제와 직결된다.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자본주의 경쟁시장의 건전성을 유지하고 관리·감독하는 것을 의무로 삼는다.

'재벌저격수' 또는 '대기업(갑질) 전문 상조브랜드'로 통하던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11일 공개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다음) 창업자를 향해서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난 7일 게재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해진 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을 '스티브 잡스보다 못한 경영인'으로 낮잡아 평가하고 지나친 훈수를 뒀다는 것.

두 사람은 이를 비판했고 김 위원장이 몸을 낮춘 것이다. 논란의 발언은 김 위원장이 지난달 이 전 의장을 만났을 때 못 한 이야기를 마저 전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당시 이 전 의장은 네이버를 '총수 없는' 대기업집단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는 전언이 나왔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김 위원장의 인터뷰 일부를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잡스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만나는 사람을 모두 화나게 하는 독재자 스타일의 최악의 최고경영자(CEO)였다. 하지만 잡스는 미래를 봤고 그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잡스를 미워했지만 존경했다. 네이버 정도의 기업이 됐으면 미래를 보는 비전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이 전 의장은 잡스처럼 우리 사회에 그런 걸 제시하지 못했다. 이 전 의장과 짧은 대화를 했지만 그런 점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지금처럼 가다간 수많은 민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직접 듣지 않은 이상, 인터뷰 자체만 봐서는 김 위원장이 이 전 의장을 폄훼 또는 깎아내리려 한 것인지 아리송하다.

말 그대로 시각의 차이인데 사흘 뒤 그 차이에 불이 붙었다. 이재웅씨가 본인 페이스북에 남긴 짤막한 글이 도화선이었다.

이씨는 "김상조 위원장이 지금까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고, 앞으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맨몸으로, 정부 도움 하나 없이 한국과 일본 최고의 인터넷 기업을 일으킨 기업가를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오만(이후 '부적절'로 수정)"이라며 "동료기업가로서 화가 난다"고 날을 세웠다.

이튿날 안철수 대표도 김 위원장을 정조준했다.

안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상조 위원장이 이해진 전 네이버 의장을 스티브 잡스와 비교해 평가절하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스티브 잡스와 같다고 아부했다"며 박근혜정부와 다를 게 없다고 주장했다.

또 "정치가 기업과 기업가를 머슴으로 보는 오만함과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면서 "20년 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우리나라 기업은 일류, 행정은 삼류, 정치는 사류'라고 했는데 수준이 한 단계씩 높아졌다 해도 삼류가 일류를 깔본 셈"이라고 맹공격했다.

이 같은 비판을 김 위원장이 "겸허히 수용한다"며 진화했지만 제삼자로서 묘하게 신경이 쓰였다. 김 위원장이 정말 이 전 의장을 '박하게' 평가했는지, 과연 기업과 기업가를 '머슴으로 여겨 삼류가 일류를 깔봤는지' 말이다.

네이버의 시작과 성장은 분명 혁신적이었다. 그러나 수년 전부터 네이버가 막강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골목상권 침해, 문어발식 확장 등 대기업 닮은꼴이 돼 간다는 지적이 다양한 경로에서 쏟아져왔다. 이를 감안하면 김 위원장의 발언은 개인을 낮잡아보거나 비꼬는 것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안 대표가 '일류'라고 인용한 삼성그룹이 현재 어떤 처지인지 언급하는 대신, 시계를 조금만 돌려 작년 국회 국정감사(국감) 당시를 복기해보려 한다.

작년 10월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의 한 의원은 국내 여론집중도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 조사를 보면 네이버의 인터넷 뉴스 이용점유율은 55.4%로 나머지 130여개 사이트 점유율을 모두 합친 것을 훨씬 웃돌았다.

해당 의원은 "공정거래법을 적용할 경우 네이버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고 시장 독과점 지표인 HHI(허핀달-허쉬만 지수·Herfindahl–Hirschman Index)를 또 다른 근거로 제시했다.

HHI는 미국 법무부,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업 합병에 따른 경쟁제한 여부를 결정할 때 활용하는 지표이고 우리나라 공정위가 독과점 여부를 판단하는데도 쓰인다. HHI가 1500 미만이면 '독과점이 아닌 시장', 2500을 넘기면 '심한 독과점 시장'을 의미하는데 당시 네이버는 3638였다.

"특정 기업에 여론영향력과 정보검색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은 우리나라 ICT 경쟁력 저하와 국민 편익 저해로 직결된다는 우려가 크다"며 인터넷과 콘텐츠 독과점 해소의 필요성을 지적한 그는 한국정보화지능원장을 지낸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전문가 출신의 집권당 소속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특정 기업의 독과점 실태를 콕 찍어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인데 같은 현역 의원인 안 대표를 비롯해 크게 반발하는 이는 없었다.

좀 더 과거인 2013년 5월로 돌아가 보자.

공정위는 네이버와 다음 등 인터넷 포털사업자에 대한 직권조사에 착수했고 네이버 부동산 등 유료 전문서비스와 키워드 광고를 통한 불공정 행위 정황이 다수 포착됐다. 하지만 그해 11월 네이버와 다음이 각각 1000억원, 40억원 규모의 상생지원 사업을 약속했고 공정위는 징계대신 자진시정 조치인 동의의결로 사안을 마무리했다.

물론 극소수의 지분을 가진 이 전 의장이 네이버라는 거대 포털과 '동일인'으로 취급되고, IT업계 전설과 대놓고 비교당한 것이 유쾌하거나 정의롭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5대 사정기관으로 꼽히는 공정위 수장을 향해 "지금까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고 앞으로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할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비아냥댄 것이 무조건 정당한 것은 아니다.

또한 원내 40석을 가진 정당 대표는 김 위원장뿐 아니라 정치, 나아가 현 정부를 '삼류'로 엮었다. 이는 현 정부를 세운 41%의 유권자와 최근까지 정부를 지지하는 70%가량의 여론까지 삼류로 폄훼한 것이다.

여기에 네이버와 이 전 의장을 일종의 성역으로 오해할 여지를 남긴 것도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지극히 세련되지 못한 비판은 빛을 잃기 마련이다. 두 사람의 투박한데다 뒤늦은 '공개저격'이 과거 이 전 의장과 함께 브이소사이어티 멤버로 활동했던 개인적 인연에서 비롯됐다면 차라리 쉽게 납득됐을지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한편 브이소사이어티 구성과 관련해 2012년 8월 한 매체가 기존 회원 45명 외에 이해진 전 의장을 포함한 17명의 추가 회원 명단을 공개해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러나 안 대표 측은 12일 "이 전 의장은 브이소사이어티 멤버라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김철근 국민의당 대변인은 "안철수 대표 본인에게 직접 확인한 결과 '이 전 의장은 브이소사이어티에 참여한 적이 없다'는 답을 받았다"면서 "해당 발언이 개인적인 인연 때문이라는 추측은 사실왜곡"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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