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단독] 평창 2000원 기념지폐 '알면 사고 싶을까'

전두환에 뇌물 · 총리와 혼맥 맺은 '풍산' 기념화폐 판권 싹쓸이

이수영 기자 | lsy@newsprime.co.kr | 2017.09.22 16:54:42

[프라임경제] #.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 1980년 5월 20일 전남매일신문기자 일동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참혹한 비극인 5·18 민주화운동은 목격자를 비롯해 살아남은 사람 모두에게 큰 부채의식을 안겼다.

지난 5월 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투표하는 전두환씨 부부. ⓒ 뉴스1


무고한 시민과 어린 목숨들을 대량 학살하고 이들이 흘린 피 웅덩이 위에 켜켜이 쌓인 시신의 산을 짓밟고 섰던 절대 권력은 불과 7년 만에 무너졌다. 그러나 몰락한 독재자와 소수 추종자들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역사와 진실을 왜곡하며 피해자의 명예를 난도질했고, 지금도 하는 중이다. 우리 사회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시대적 모순이다.

1995년 12월 제정된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5·18 특별법)에 '헌정파괴자'로 규정된 전두환씨가 당당하게 도발할 수 있는 이유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그동안 정의보다 불의에 더 관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얻어낸 부당한 잇속은 대대손손 '기득권'으로 대물림되기까지 했다. 

◆불의에 길들여진 사회, 권력에 기생한 기업 

불의에 익숙한 사회에서 가장 훌륭한 목적이자 수단은 '돈'이다. 기형적인 재벌경제는 기업과 권력자의 끈끈한 유착 아래 탄생했으며, 전두환 정권에 기생한 기업 상당수가 오늘까지 건재한 것은 기정사실이다.

이른 바 '10대재벌'에 오를 정도는 아니지만 국가적으로 필수 불가결한 산업을 바탕으로 성장한 중견기업들도 이런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례로 '한 손에 동전, 다른 손에 총알을 쥔' 풍산그룹이 그렇다.

류찬우 풍산그룹 창업주는 대표 명문가인 '풍산 류씨' 중에서도 서애 류성룡 선생의 13세손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유력 정재계 가문과 맺은 든든한 혼맥으로도 유명한데 '박정희-전두환-재계(삼성·현대)'로 이어지는 권력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류 창업주는 제5공화국 출범 이듬해인 198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차녀 박근령씨를 큰며느리로 맞았다. 불행히도 6개월 만에 장남 내외가 이혼했는데 이후 차남이자 현재 그룹을 이끌고 있는 류진 회장은 전두환 정권에서 외무부장관, 국가안전기획부장(현 국정원장), 국무총리를 지낸 노신영 롯데그룹 총괄고문의 사위가 됐다.

노 총괄고문과 가족이 되면서 풍산은 재벌가와도 단단한 연결고리가 생긴다. 노 총괄고문의 큰아들은 정세영 전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딸과, 차남은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의 여동생과 결혼한 덕분이다. 

◆'평창올림픽 기념지폐'도 풍산 계열사 작품 

풍산은 류 창업주가 1968년 세운 회사로 구리가공(신동·伸銅)을 주력 삼아 성장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3년 민간업체로는 처음 방위산업에 뛰어들었고 소구경 총탄과 포탄을 국산화하는 등 국방력 강화에 일조했다는 평가도 있다.

여기에 세계 동전제조 시장의 절반 가량을 차지해 작년 매출액 2조8200억원을 기록할 정도로 탄탄하다. 최근 완판 기록을 세운 평창올림픽 2000원권 기념지폐를 제조한 풍산화동양행도 풍산그룹의 일원이다.

김연아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가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풍산빌딩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기념은행권·기념주화(2차분) 공개 발표회에서 기념주화를 소개하고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기념지폐인 평창 동계올림픽 기념은행권은 2000원화 낱장형 92만장, 2장 연결형 21만세트, 24장 전지형 4만세트 총 세 가지 형태로 발행되며 낱장 기준 총 230만장이 발행됐고 완판행진을 이어갔다. ⓒ뉴스1

풍산은 해당 업체 지분 60%를 이명박 정권 말기인 2012년 인수하며 지배권을 얻었고 지난해 15%의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며 75%의 지분율을 확보했다.

눈에 띄는 것은 풍산의 일원이 된 화동양행의 잠재력이다. 지난해 600억원대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가운데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기업이기 때문이다.

풍산화동양행은 △1994~2016년 올림픽 기념주화 △1993년 대전엑스포 △1994~2014년 FIFA월드컵 기념주화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기념주화 △1986 ~2014년 아시아경기대회 공식 기념주화를 국내에 독점 판매할 권한을 쥐고 있었다.

이변이 없는 한 다음 프로젝트에서도 상당한 성과가 기대된다. 

◆실력으로 승부할 수 없는 '씁쓸한 현실' 

뛰어난 기술력과 창업주 이하 경영진의 운용감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라면 아름다웠겠지만, 슬프게도 1988년 11월 일해재단 관련 국회 청문회, 일명 '5공청문회'에서 드러난 민낯은 풍산그룹의 부끄러운 역사가 됐다.

전두환씨 비자금 사건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1981년 12월 "금융과 세제운용 등 경영상 편의를 봐 달라"며 31명의 재벌총수가 청탁했고 풍산그룹도 이름을 올렸다. 공소장에서 류찬우 당시 풍산금속 회장은 10억원을 건넨 것으로 나온다.

국회 5공청문회 때 노무현 당시 민주당 의원은 "부산1조병창 인수 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동창 관계인 점이 작용한 것 아닌가"라고 물었지만 류찬우 창업주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받아쳤다.  
조병창은 무기와 탄약 등을 실제 설계하고 제조, 유지·관리하는 군 직속 공장 및 기관을 말한다. 또한 정치권 안팎에서는 당시 증인들이 '후환이 두려워 실제 준 돈의 절반도 대지 않았다'는 말이 지금껏 회자되면서 합리적 의심을 지우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노무현 의원은 이어 "증인이 공개적으로 24억5000만원, 영수증도 안 받은 10억원 등 총 34억5000만원을 절대 권력에 갖다 바쳤는데, 기업인으로서 어떤 심정인가"라고도 물었다.

이에 류 창업주는 "상황이 7~8년간 걸쳐 있었던 일이라 간단히 언급할 수는 없다"면서 "70년 사는 동안 오늘 같은 가장 뜨거운 꼴도 당하고 있다"고 답했다.

본지가 입수한 대구상고의 헌정상격인 '자랑스러운 대공인상' 수상자 명단. 최초 수상자는 전두환씨, 2개월 뒤 류찬우 풍산그룹 창업주의 이름이 올라 있다. ⓒ 프라임경제

굴욕을 당한 풍산 창업주였지만, 부끄러운 역사는 본인 사후 최소 10년 뒤까지 이어졌다. 본지가 입수한 대구공고 관련 문건에 따르면 학교는 2009년 10월 전두환씨에게 '자랑스러운대공인상'을 수여해 첫 수상자로 추앙했다. 아울러 이미 10년 전 사망한 류 창업주가 같은 해 12월 수상자로 이름을 올렸고 이유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참고로 대구공고는 2012년 총동문회 모금을 통해 32억원 상당을 들여 전씨를 기리는 자료실을 개관했고 전씨는 2015년부터 동문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 동문애를 과시했다.

풍산 관계자는 "해당 시점 이후 회사가 관여한 적이 없고 오너일가의 개인적인 결정이나 신상은 알지 못한다"고 응대했다.

또 풍산그룹은 45회부터 70회(1999년 졸업)까지 대구공고 동문 30여명이 각 부서에 직위를 갖추고 재직 중이다. 대구공고 졸업생이 1925년 개교 이래 2014년까지 총 5만명 정도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물론 공식적으로 동문 우대를 언급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풍산 측은 "(기념관 건립 이후)대구공고 등 선대 회장의 동문행사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면서 "동문 출신을 우선 선발하는 채용방식은 진행한 적이 없다"고 말을 아낄 뿐이다.

한편 풍산그룹 현 오너인 류진 회장의 아들 류성곤(미국명 로이스 류)씨는 1993년생으로 2014년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시민이 됐다. 현행법에 따르면 병역의무가 있는 이중국적자에 대해 만 22세 이전에 하나의 국적을 선택하도록 돼 있다.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