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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보호 vs 꼼수' 선화예고 내신 갈등, 헌법 논쟁 거치면 미술계 우세?

신뢰보호 가능성 염두 둔 판단…2001년 이래 당국 수정 방침 해석이 관건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7.09.25 17:15:47

[프라임경제] 호사다마(好事多魔)인가? 대학 입시에 강한 속칭 명문고는 보통 부러움을 사지만, 명문고라 입시 준비에서 더 일희일비 울고 웃는 경우도 없지 않은 듯하다. 올 여름 많은 전국 예술고들이 전공별 내신 산출법 갈등, 일명 '분리 산출' '통합 산출'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특히 선화예고가 이를 놓고 홍역을 치르는 상황이 두드러진다.

선화예고 교표. ⓒ 선화예고

지난 22일 열린 행사에서 학부모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상황이 빚어지는가 하면, 다른 전공 학부모들은 이 같은 상황에 대응해 서명을 받으며 성명서 준비를 하는 중이다. 학교 측과의 협의가 원만치 않을 경우 대대적인 자퇴 소동 등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마저 점쳐진다.

어느 제도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전공별 유불리로 이해관계가 갈린다. 문제를 단순화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이 학교에서 갈등이 각별히 큰 이유는 그간 명문대 진학 실적이 좋았기 때문. 

간단히 말하면 서울예고나 선화예고를 선망해서 들어온 전공별 학생들이 자부심이 강한 만큼 '왜 내가 다른 전공에 비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느냐'는 이기주의가 일정 부분 깔린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다만, 이런 자부심 논란의 두께는 얇고 그 이면에 대단히 두터운 논쟁거리가 존재한다. '신뢰보호'가 우선이냐 혹은 '비정상의 정상화'냐는 논리 전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전공별로 분리 산출을 해왔고, 이를 앞으로도 관철하면 선화예고의 경우에는 연주나 무용 전공이 상대적인 혜택을 입게 된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에 반해 교육부의 최근 공문처럼 통합 산출로 변경을 하면 내신 공부에 매달리는 경향이 강했던 미술 전공이 이득을 본다는 것.

음악 등의 전공에서는 당연히 기득권, 관행 등을 주장하게 된다. 현재 제도를 이리저리 조정해서 분리 산출 형식으로 운영해온 학교 측 역시 이 쪽에 기운 입장이다. 복수의 전언에 따르면 22일 설명회 형식을 통해 학교 고위 관계자가 '분리 산출이 아니지만 분리 산출과 같은 형식'을 짜겠다는 뜻을 내놨다.

미국 헌법상 기본권의 대사인적 효력 논의에 따르면, 사적 단체나 사법인의 경우라도 공공 기능을 수행하거나 공공 시설을 사용, 혜택을 제공받는 등 일정한 경우에는 공공기관처럼 기본권 보장의 의무를 지고 이를 준수할 책임도 진다. 대입 과정의 전 단계를 수행하고 국민의 교육권을 다루는 일선 기구이므로 사립학교들 역시 이런 점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무한정 재량을 주장해서도 안 된다.

따라서 선화예고의 입시 갈등이 법적 분쟁까지 비화된다면 단순히 민사상 손해배상 문제로만 다룰 게 아니라, 오히려 행정소송에서의 대법원 판례들이나 헌법재판소에서 다룬 헌법소원 사건들을 중점적으로 참고해 볼 수 있다.

음악 등 전공자들은 과거의 패턴인 분리 산출 제도로 운영될 것을 신뢰하며 입학해 재학 중이라는 주장을 할 수 있다. 이른바 '신뢰보호원칙'이다.

반면, 미술 전공 쪽에서는 2001년 이래 교육 당국이 지속적으로 분리 산출을 시정하라는 경고를 보냈다는 점에 치중할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문제는 이런 '꼼수' 논란이 '어쨌든 합법' 아니냐는 점이다.

이는 비단 선화예고만의 문제가 아니라 계속되는 당국과의 갈등에도 많은 학교들이 분리 산출을 하기 위해 주요 과목별 수업 시간을 학과 간에 서로 차이가 나게 하는 '꼼수'를 동원했다는 '시스템적 관점', 즉 '큰 그림'을 이해할 필요가있는 문제다.

신뢰보호는 보통 많은 헌법소원에서 강력한 무기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한약사 자격증 논란이나 사법시험 출신의 판사 임명 자격 논란 등이다. 한약 부문 역시 약학과를 나와 약사 자격을 얻듯, 한약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그런데 과거에는 한약 관련 여러 학과에서 시험 응시를 할 수 있게 했지만 중간에 오직 한약학과 출신만 응시할 수 있게 제도 변경이 이뤄졌다. 이에 따라 '한약자원학과 학생들'은 재학 중에 자격 응시자격이 사라지는 묘한 상황에 처했고, 헌법소원에서 응시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로스쿨로 변호사 양성 제도의 기본 틀이 바뀌는 와중에 사법시험 출신들의 기득권 보호가 논쟁거리가 된 적도 있다. 로스쿨 졸업 이후 법조 시스템을 한층 더 충실히 하자는 취지에서 제도 변경이 있었다. 

변호사 자격을 얻더라도 상당 기간 판사로 임명될 수 없도록 한 제도가 등장했다. 이 제도 자체는 나름의 타당성이 있는 것이지만, 기존에 사시에 합격해 연수 중이던 이들에게는 '없던 제약이 생긴 것'이라는 또 다른 측면이 있었다. 이 사건 역시 기득권 내지 신뢰보호가 더 중요한 가치라고 손을 들어줬다.

다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보호할 가치가 있는 기득권, 정당한 신뢰인지 펄터링해야 한다는 단서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선화예고의 경우도 이 신뢰의 보호 문제가 갈등 요소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이런 갈등은 한 학교의 문제라기보다는 전체 학교들의 문제적 관행으로 풀이된다. 2001년경부터 교육부가 끊임없이 통합 산출로의 전환을 하도록 일선 학교들을 계도해왔다는 점이 거론되고 있다.

이런 갈등 요소가 전혀 노출되지 않았던 것인지, 혹은 이미 그런 점이 입시설명회 자료 등에서 통합 산출을 하는 것처럼 제시됐던 적이 1회라도 있는지에 따라 해법이 달라질 수 있다. 후자라면 신뢰보호의 주장은 깨지게 된다. 

미술계 학부모들 중 일부가 현재 자신의 자녀들이 입학하던 때의 입시설명회 자료 확인과 보전 방식에 나선 것으로 전해지는 이유도 여기 있다. 보호할 가치가 없는 경우에 대한 신뢰보호의 원칙 적용 부정 문제는 대법원 판례들이 상당수 누적(대법원 2003. 12. 26. 선고 2003두1875 판결 등)됐으며 헌법재판소에서도 일반원칙으로 인정하고 있다.

꼼수도 아무튼 합법 아니냐는 주장, 다시 말하자면 이수 단위수를 전공별로 조금씩 다르게 조정하고 시험 출제를 다르게 해왔으니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반박이 제기된다.

설사 꼼수로 조정을 해도 전체 과정을 조사해보면 교육 과정상 필요에 의해 단위수 조정을 한 것인지, 혹은 다른 전공과의 통합 산출을 피할 목적만으로 비정상적 수정을 한 것인지 가늠할 여지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번 정부가 중점 추진하는 '비정상화의 정상화' 관점에서 보면 이런 시업시수 조정은 몇년간 반복됐다 하더라도 '어쨌든 보호해야 할 관행'이 아닌 '보호의 가치가 없는 사례의 반복일 뿐'으로 해석될 여지가 높다. 결국 교육부 등 당국이 결자해지할 필요가 있다. 이미 특정 학교 내 갈등으로만 보기에는 너무 많은 이슈가 엮인 데다, 자료의 전면적 조사측면에서도 당국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더욱이 애초 문제가 커진 이유가 전국적으로 일정 시점에 '분리 산출'을 계속 적용할지, '통합 산출'로 전환할지 당국에서 명쾌하고 일관된 해법 강제 없이 공문 발송만 반복한 결과라는 지적이 뼈아픈 상황. 이런 만큼 학교의 대응은 물론 당국의 해법에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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