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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천사캠페인] 좋은 고객이 되어보기

 

이윤정 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 press@newsprime.co.kr | 2017.10.10 14:42:29
[프라임경제] "네, 안녕하세요? 이윤정입니다." 

요즘 연구실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를 들으면 자동으로 수화기를 들며 하는 첫 마디다. 최대한 친절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한다. 대개 이 전화를 건 대상자가 나에게 화를 낼 것을 알기 때문이다. 

최근 진행하고 있는 연구는 전국의 수천 개 학교 중에 600개를 선정해 교육부가 요청한 조사를 수행하는 것인데, 조사대상 학교로 뽑힌 학교의 담당교사는 '왜 하필 우리가 이 귀찮은 조사의 대상으로 선정됐는지'를 따지는 전화를 내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잔뜩 긴장하고, 솜털을 곤두세우며 목소리를 가다듬어서 바로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의 친절 모드로 전화를 응대한다. 나는 며칠 동안 '감정노동자'였다.

그런데 이 긴장되고 솜털이 곤두서는 경험을 하며 의도적으로 웃고 과도한 친절을 가장해야 하는 업무를 매일 매일, 일 년 365일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콜센터 상담사들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5년 기준 콜센터 및 텔레마케팅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7만9391명으로, 2006년 3만2662명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노동자 수가 증가하면서 이들이 겪는 심각한 감정노동의 문제들이 사회적으로 대두됐다. 

콜센터 상담사들이 상담 중에 욕설 등 언어적 폭력뿐 아니라 심각한 성희롱에 노출되는 문제가 여러 차례 불거졌다. 심지어 지난 1월에는 한 통신회사 콜센터에서 근무한 특성화고 여학생이 감정노동으로 인한 업무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서울시는 2014년 129 다산콜 상담사에 대해 성희롱이 발생했을 때 '원스트라이크아웃제'를 실시하고 폭언, 욕설 등은 '삼진아웃제'를 도입했으며 법적조치를 통해 상담사를 보호하는 제도를 가동했다. 

또한 정부는 지난 8월 국정현안점검 조정회의에서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을 의결했는데, 이 안에는 콜센터 상담사를 비롯한 감정노동자 보호 대책을 포함했다. 일부 기업에서는 고객센터 상담 전화 연결음에 상담사 가족의 음성을 담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대면해서 의사소통을 할 때도 감정노동의 문제가 크지만, 특히 얼굴을 보지 않고 목소리만으로 의사소통을 할 때는 표정과 눈빛을 읽을 수 없으므로 상대의 진의를 파악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또 얼굴을 보지 않는다는 반쯤의 익명성이 상대를 향해 무례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 일조하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학생을 지도하면서 의사소통의 중요함을 깨닫는 경우가 많다. '경청하기' '공감하기' '진실하기' 이런 의사소통의 대원칙들이 잘 실천될 때에는 긍정적인 소통의 결과가 나타나지만, 자기주장만 내세우고, 거칠게 말하고, 무례하게 대해서는 의사소통의 결과가 좋을 리 없었다. 

일생에 몇 번쯤은 콜센터에 전화를 하고 텔레마케터로부터 전화를 받을 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들이 누군가의 엄마이고, 누군가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전화기의 뒤에 몸을 숨기고 무례한 태도와 욕설을 남발하지 말자. 

그들은 내게 언제라도 웃으며 친절하게 말할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만 그들을 향해 친절하면 그들과 우리 사이에 험악한 상황이 펼쳐질 아무런 이유가 없다. 모든 것의 근본은 인격에 대한 존중, 그리고 배려다.

이윤정 경인여자대학교 간호학과 교수, 한국학교보건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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