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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벤토탐방] '海の幸' 벤토…치리멘·게·가리비  

"벤토를 알면 문화가, 문화를 알면 일본이 보인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 bsjang56@hanmail.net | 2017.10.11 09:02:57

[프라임경제] 산해진미라는 말이 있다. 산과 바다의 진귀한 재료로 만든 아주 맛있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흔히 잘 차려진 상을 가리킬 때 사용한다.

코바야시의 호타테벤토 800엔. ⓒ 에키벤 홈페이지

일본에서도 같은 의미로 쓰이지만 그들은 '바다의 진미(海の幸)'와 '산의 진미(山の幸)'로 구분하는 문화가 있다. 음식점 메뉴나 벤토의 카테고리 등을 소개할 때 이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幸을 '사치'라 읽는데 우리 말 '살'이 어원이라고 한다. 들짐승을 쏠 때 필요한 화살이나 물고기를 찍어 올리는 작살이라는 의미다. 나중에 그 의미가 발전해 행운이나 행복이라는 뜻도 포함하게 된다. 운이 따라줘야 대상물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3만㎞에 이르는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그 길이가 미국보다 길고 남북한을 합친 것의 6배에 달한다. 지역별로 다채로운 해산물 식용문화가 발달한 배경이다. 앞에서 수종의 해산물 벤토를 소개한 바 있는데 다음 몇가지를 추가하며 海の幸 벤토편을 마친다. 

'치리멘쟈코'는 크기 2㎝ 정도 되는 멸치의 치어로 우리나라 뱅어와 크기와 모양이 유사하다. 우유와 함께 칼슘함량이 풍부한 식품의 대명사로 통한다. 겨울부터 봄이 어획기이고 세토내해가 주어장이다. 줄여서 치리멘으로 부르기도 한다. 치리멘은 치어를 대량으로 삶아 펼쳐 놓은 모습이 견직물(치리멘) 주름처럼 보인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치리멘 뒤에 쟈코(雜魚:잡어)가 붙는 이유는 그물에 함께 딸려 올라오는 새우·게·문어 등 잡스러운(?) 치어들 때문이다. 오사카부 키시와다(岸和田)시에서는 이들 잡어에게 '치리몬(치리멘몬스터)'이라는 별명을 붙이고 바다 속 생태를 알리는 교육 자료로 삼고 있다. 

치리멘은 두 가지 형태가 있다. 그물로 올린 후 바로 삶은 '카마아게'와 이것을 건조 시킨 '죠보시'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가마아게는 무즙(오로시)와 콤비를 이뤄 아침상에 오르고 술안주로 이용된다. 죠보시는 우리나라 멸치볶음처럼 간장과 설탕 등으로 조리돼 벤토나 오니기리의 단골반찬이 된다. 

'카니(게)'는 전 세계 모든 바다에 서식하는 갑각류로 지역에 따라 다양한 품종이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것이 꽃게라면 일본에는 '즈와이가니'가 있다. 발이 가늘고 긴 외형이 영덕 대게와 흡사하다. 이 게는 어획되는 지역에 따라 이름이 다르다. 후쿠이현은 '에치젠가이', 산인(山陰)지역 '마츠바가니', 이시카와현 '카노가니', 쿄토부에서는 '타이자가니'로 부르지만 모두 같은 품종이다. 

이 중 후쿠이현의 미쿠니(三国)항에서 어획되는 수컷을 최고 명품으로 친다. 전국에서 최초로 '에치젠(越前)가니'라는 이름으로 브랜드화해 어업연맹이 관리하고 있다. 소속어항과 어선명이 지정 Tag에 표기되고 화지(전통종이)로 포장한다. 황실에도 진상되는 것으로 알려진 살아있는 특대(1㎏) 한 마리 가격이 2만엔 전후다. 

그것보다 큰 것은 부르는 게 값이어서 웬만해서는 넘보기 어려운 존재다. 하지만 같은 즈와이가니라도 어획지역이 다르면 가격이 크게 차이난다. 시중 일반 수산물점이나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대부분은 타 지역 산물이다. 

오사카시 남쪽 번화가인 도톤보리(道頓堀) 강 옆에 'かに(카니)道楽'이라는 대형 게 요리 전문점이 있다. 움직이는 즈와이가니 간판으로 유명한 이곳은 연중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1962년 개점 후 같은 장소에서 영업하고 있는데 한국 여행객이 잘 찾는 명소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게로 만든 김밥·만두·코로케로 구성되는 2500엔짜리 점심부터 1만800엔 코스요리까지 다양한 메뉴를 갖추고 있다. 전국에 산재한 40개 체인점의 총본산이기도 하다. 

즈와이가니와 함께 일본을 대표하는 것이 북쪽지방에서 나오는 케가니(털 게)다. 모양이 통통하고 납작해 '큰 밤 게'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크기는 작아도 육질이 뛰어나고 단맛이 있어 일본인에게 인기가 있다. 특히 카니미소로 불리는 내장부분이 많아 군칸마키 같은 고급음식 재료로 쓰인다. 처음에는 비료로 사용되는 등 푸대접을 받았지만 통조림으로 개발되며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수산물이 됐다. 

일본에도 꽃게가 있기는 하다. 한 때 바다 게의 상징으로 불릴 정도로 어획량이 많았지만 남획으로 개체 수가 줄어 요즘은 세토내해나 큐슈 등 일부 지역에서 소량 어획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겨울철 암꽃게에는 알(난소)이 들어있어 마니아를 유혹하는 최고의 상품으로 꼽힌다. 

사가현 타라(太良)쵸에서는 '타케자키가니'라는 브랜드명으로 외지 관광객을 부르고 있고, 키시와타시는 매년 9월 마츠리 때 꽃게를 먹는 풍습을 이어오고 있다. 꽃게는 일본어로 '와타리가니' 또는 '가자미'라 부른다.

'호타데가이(가리비)'는 일본 식단에 빠지지 않는 또 하나의 진미다. 흔히 '호타테(帆立)'로 줄여 부른다. 일본인들이 즐기는 패주(貝柱)를 얻는 재료라는 의미로 '카이바시라'로 부르기도 한다. 맛이 담백하고 풍미가 뛰어나 누구에게나 거부감이 없는 식품이다. 

영양학적으로도 칼로리가 낮고 아미노산과 글루타민이 풍부해 다이어트에 좋고 간 기능 회복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요리로는 회·나베(찌개)·버터구이·스프재료 등이 개발돼 있다. 

호타테라는 명칭은 이동할 때 범선(帆)의 돛처럼 껍질 한 쪽을 세운(立) 후 바람을 타듯 움직인다는 속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래 위에서 양옆으로 물을 내뿜으며 앞으로 조금 움직이는 정도다. 호타테 주산지는 홋카이도와 아오모리 등 북쪽지방이고 대부분 양식으로 키워낸다. 이들 지역에서 연간 20~30만톤 정도가 생산되고 있다.

호타테는 수산물 소비대국 일본이 해외에 판매하는 보기 드문 품목이다. 이전에는 대부분 말려서 중국에 수출했으나 스시의 수요가 늘기 시작하며 상당량을 냉동상태로 미국 등지로도 내보내고 있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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