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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벤토탐방] '山の幸' 벤토, 송이와 죽순

"벤토 알면 문화가, 문화 알면 일본 보인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 bsjang56@hanmail.net | 2017.10.17 15:49:24

[프라임경제] 송이는 가을을 대표하는 산의 진미다. 예전부터 한중일 3국 모두 버섯의 최고봉으로 송이를 꼽았다. 표준 일본어는 '마츠타케(松茸)'지만 '맛타케'로 발음하는 지역도 많다. 학명은 '트리콜로마·마츠타케'다.

혼케가마도야의 마츠타케벤토. 580엔. ⓒ 혼케카마도야 홈페이지

자칫 원산지가 일본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름인 것 같아 마음에 안 든다. 한국산 송이가 역사성이나 품질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으니 말이다. 

송이는 맛이 담백하고 쫄깃한 식감을 가진 고급 식재료다. 그윽하고 깊은 솔향은 그 어떤 버섯과도 비교를 안 된다. 버섯 대부분이 죽은 나무에 기생하는 데 비해 송이는 살아있는 소나무와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서식한다. 

대개 송이는 20년 이상 되는 적송(껍질이 붉은 소나무) 중 균사체 활동이 왕성한 뿌리 끝 부분에 군락을 이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장소를 균환(菌環), 일본어로 '시로'라 한다. 

송이는 발견과 채취가 어려운 버섯이다. 초심자가 아무리 산자락을 헤집고 다녀도 균환을 찾아내는 안목이 없으면 채취가 불가능하다. 소나무가 성장함에 따라 뿌리 끝이 퍼져 나가면 균환도 같이 이동한다. 이러한 활동은 소나무가 쇠퇴기에 접어드는 수령(樹齡)80년 무렵까지 지속된다. 

송이는 척박하고 건조한 마사토류의 광물질토양을 선호한다. 과거 동네 야산에서도 쉽게 발견되던 송이가 줄어든 것은 토양이 바뀌어서다. 난방이나 취사 연료로 사용되던 낙엽과 잔가지가 쌓여 서식환경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채취 시기는 위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9월~11월 지표에서 1~2㎝ 올라올 때가 적기다. 머리 부분이 갈라질 정도로 커지면 맛과 향이 엷어져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 송이는 생장 조건이 까다로워 아직까지 인공재배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송이 채취량이 매년 줄고 있는 이유다. 

일본의 식용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야요이 시대 유적에 흙으로 빚은 부장품 속에서는 송이가 출토됐을 정도다. 송이는 구이·찜·텐푸라·장국·스키야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돼 식탁에 오른다. 길이 방향으로 얇게 저민 송이 2~3조각이 올라가는 타키코미 벤토도 빠질 수 없다.

일본 내 산지는 사계가 비교적 뚜렷한 칸사이와 동북지방이다. 홋카이도 등 먼 북쪽이나 히로시마 이남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서식지역이 좁고 채취량이 적어 수요의 상당 부분을 수입에 의존한다. 

국가별로는 중국산 비중이 압도적인 가운데 한국에서도 질 좋은 송이가 연간 10톤 생산된다. 2006년까지는 북한산도 있었으나 핵실험을 이유로 2007년 이후 수입이 중단된 상태다. 

송이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암을 억제하는 뛰어난 약용식품이기도 하다. 반면 약하기는 하지만 버섯 특유의 독성분이 있어 한꺼번에 많이 먹으면 구토나 설사를 일으킬 수 있다. 

가을에 송이가 있다면 봄은 죽순의 계절이다. 죽순(타케노코)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미각과 친숙하지 않은 묘한 떫은맛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 맛을 잘 다스리면 의외로 요리의 악센트 역할을 한다. 

일본 라면의 토핑으로 올라가는 '멘마'가 대표적이다. 죽순을 유산 발효시킨 이 재료는 육수의 느끼한 맛을 억제하고 산뜻한 식감을 갖도록 해준다. 

다른 야채와 함께 카츠오 국물에 졸이면 '니모노(煮物)'라는 반찬이 되며 기름에 튀겨 텐푸라를 만들기도 한다. 카이세키(懐石)요리의 장국이나 팔보채 같은 중화요리의 재료로도 존재감이 크다. 

또한, 해마다 시즌이 되면 어김없이 타키코미 모습으로 전문점이나 편의점에 진열되는 죽순 벤토도 있다. 

이때쯤 많은 사람이 나들이를 겸해 대나무 농원을 찾는다. 죽순을 직접 채취하는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다. 보통 500엔 안팎의 입장료를 내고 1시간 정도 자신이 캐낸 만큼 돈을 지불하고 구입한다. '타케노코호리(筍堀)'라 부르는 체험 프로그램의 모습이다. 죽순은 채취 1시간 이내 살짝 데쳐 사시미 또는 구이로 먹는 것이 풍미가 극대화 된다고 한다. 

일본에서 보편적으로 식용하는 죽순이 '모소치쿠(孟宗竹)'다. 우리나라 죽순대(맹종죽)에 해당하는 품종이며 에도시대에 중국과 류큐(琉球·오키나와)를 거쳐 본토에 전래됐다. 

죽순은 3~4년생 대나무의 땅속줄기가 발아를 위해 지표로 올라오는 어린 싹이다. 어떤 식물보다도 성장속도가 빨라 채취 타이밍이 중요하다. 가급적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기 전 채취하는 게 이상적이다. 이 시기를 놓치면 급격히 조직이 단단해지고 맛이 엷어져 식용으로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채취 후에도 빠른 시간 내 조리나 밑 손질을 해 변질을 막아야 한다. 시중에 많은 양이 통조림으로 유통되는 이유가 장기간 맛과 선도를 유지시키는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번 회로 벤토탐방 시즌1을 마무리한다. 그동안 성원해 준 독자들께 감사인사를 전하며 기회가 되면 또 다른 시각으로 일본의 외식 문화를 바라보는 장르로 찾아뵙겠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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