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성공하는 회사와 몰락하는 기업. 전문가들은 리더의 역할, 리더십의 차이라고 입을 모은다. 강력한 리더십은 과감한 결단과 추진력으로 조직을 하나로 묶고, 일사불란한 조직을 바탕으로 보다 빨리 목표를 이루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1938년 대구에서 삼성상회로 시작한 삼성이 약 80년 만에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거듭난 데는 이병철 선대 회장부터, 이건희 회장, 이재용 부회장 등 3대째 이어진 특유의 '리더십 DNA'가 있었기 때문이다.
◆ 美·日 견제 속 한해 1300억 적자…故 이병철, 반도체 직진 "내 눈엔 돈이 보여"
삼성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1위 반도체 기업이다. 그러나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순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삼성이 처음 반도체 업계에 발을 내딛은 1983년, 국내 기업이 이 산업에 뛰어든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국내에는 반도체 사업을 시작할 기반도 없는데다, 국내외 경제 상황에 워낙 변수가 많아 기업 입장에서 무작정 투자만 할 수 없는 여건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세계 반도체 산업을 이끌던 미국과 일본의 '기술 문단속'이 철저했다. 당시 삼성은 마이크론과 64K D램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지만, 마이크론은 기술이전에 소극적이었다. 이에 관련 기술자들은 연구소 대신 인근 모텔에서 설계도면을 바탕으로 사실상 '독학'해야 했다.
결국 삼성은 309가지 반도체 공정 프로세스를 6개월 만에 독자기술로 습득했다.
그러자 반도체 업계 터줏대감들의 견제가 시작됐다. 이들의 대규모 덤핑 공세에 1984년 4달러 수준이던 64K D램 가격은 폭락을 거듭해 1985년 중반, 30센트까지 떨어졌다. 제품을 하나 팔 때마다 오히려 1달러40센트를 손해 보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삼성은 시장진입을 위해 20센트라는 초저가 전략으로 맞섰고, 한 해에만 1300억원의 적자를 보게 됐다.
삼성 안팎에서는 "지금이라도 손을 떼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거셌다. 그러나 이병철 선대 회장은 "내 눈엔 돈이 보여"라며 과감히 밀어붙였다. 심지어 지속적으로 생산라인을 증설하며 신제품 개발에 나서는 등 어찌보면 무모할 수 있는 도전을 지속했다.
그 결과 삼성은 1984년 업계에서 기적으로 불리던 256K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2년 뒤에는 1M D램까지 출시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특히 256K D램은 시장 출시 1년 만에 세계 D램 시장의 10분의1을 점유, 64K D램으로 적자를 보는 와중에도 삼성전자(005930)를 시장에서 반석(盤石)에 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 글로벌 삼성으로 도약…이건희 "양보다 질, 마누라 빼고 다 바꿔"
1987년부터 삼성 경영을 맡은 이건희 회장은 '품질경영'을 내세우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변모시켰다. 품질경영이란 최고경영자의 리더십 아래 품질을 경영의 최우선 과제로 삼는 방침이다.
이건희 회장이 품질을 유독 강조하게 된 데는 하나의 일화가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1993년 미국 출장 중 우연히 로스앤젤레스 가전매장인 베스트바이에서 한쪽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돼 있던 삼성 TV를 목격하게 된다. 삼성 제품은 당시 국내에서는 1위를 달렸지만, 해외 시장에서는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었다.
같은 해 6월 이건희 회장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켐핀스키호텔에서 주요 임원과 해외주재원 200여명을 앞에서 상기된 얼굴로 목소리를 높인다.
"회장이 되고 만 5년간 계속 불량 안 된다, 불량 안 된다, 모든 것을 양을 버리고, 질을 향해라. 그런데도 아직까지 양을, 양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제화 시대에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2류가 될 수밖에 없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 이른바 삼성의 '신경영 선언'이다.
이후 삼성은 불량품이 있을 경우 해당 생산라인 가동을 전면 중단하는 '라인스톱제'를 도입하는 등 품질경영에 올인하게 된다.
특히 1995년 '애니콜 화형식'이 품질경영의 상징적인 사건으로 회자된다.
당시 삼성은 무리하게 완제품 생산을 추진하다 불량률이 11.8%까지 치솟았다. 이건희 회장은 "신경영 이후에도 이런 나쁜 물건을 만들고, 엉터리 물건을 파는 정신은 무엇인가"라고 질책하며, 불량품 15만대(당시 약 150억원 상당)를 수거해 불태웠다.
이 같은 이건희 회장의 뚝심으로 삼성은 신경영 선포 이후 20여년동안 매출 13배, 수출규모 15배, 이익 49배가 느는 등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 삼성 창사 이래 최대 위기…이재용식 리더십 발휘될 '뉴 삼성'온다
이건희 회장이 2014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자,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 경영권을 이어 받았다.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일선에 나선 후 첫 번째 위기였던 갤럭시노트7 배터리 발화 사태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면서 우수한 리더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당시 7조원에 달하는 물적 피해와 브랜드 이미지 손실에도 불구하고 제품을 조기단종시키는 용단을 내리면서 되레 소비자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실제 삼성전자는 지난달 인터브랜드가 선정한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전년대비 한 단계 올라선 6위에 올랐다. 인터브랜드는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 발화 및 단종으로 인한 위기를 빠르게 극복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이와 함께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 내실 가꾸기에도 힘썼다. '실용주의'를 모토로 과감한 계열사 인수합병(M&A)과 매각, 지배구조 재편, 구조조정 등을 숨 가쁘게 진행하며 삼성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바꿔나간 것. 특히 외형 확장 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비주력 사업들을 정리하면서 내실 키우기에 방점을 찍었다.
실제 이재용 부회장은 비주력 사업인 화학 및 방산계열사 7곳을 한화와 롯데 그룹에 넘겼다. 삼성이 잘하는 분야에 집중하기 위한 이재용 부회장의 용단이었다.
이와 함께 반도체 이후 삼성을 이끌어갈 신사업 키우기에도 주력했다. 인공지능과 자동차 전장을 신성장동력으로 보고 스마트싱스(사물인터넷), 루프페이(모바일 결제 솔루션), 비브랩스(인공지능), 하만(자동차 전장) 등을 사들였다. 이재용 부회장은 경영을 맡은 2014년부터 약 2년간 14개 기업을 인수했다.
대기업에게 있어서 M&A는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넘어설 유일한 방법으로 꼽힌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 같은 첨단기술의 발전 속도를 혼자 힘으로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올해 초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면서 제동이 걸렸다. 최대 결정권자의 리더십 부재 때문이다. 실제 올해 삼성이 인수한 기업은 한 곳 뿐이다. 이 외에 삼성이 인수하려 했던 기업들은 총수 부재 속 막바지 단계에서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사태에 봉착했다. 그러나 어려운 때일수록 총수의 강력한 리더십은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이르면 이달 말 진행될 인사쇄신에서 이재용 부회장에 힘을 실어 줄 인사들이 대거 중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이 발휘될 '뉴 삼성'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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