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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광주의 악마' 전두환 치매설은 나쁘다

'유가족 1:1 매수해 이간질, 반항하면 탄압' 朴 세월호 대응 롤모델

이수영 기자 | lsy@newsprime.co.kr | 2017.10.26 16:52:19

[프라임경제] 전두환 장군의 정계 입성을 전방위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군 보안사령부(현 국군 기무사령부)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자행된 학살을 감추기 위해 유가족을 편갈라 회유와 사찰과 격리, 유언비어 유표 등 전방위적 작전을 폈다는 공식 문건이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이종구 당시 보안사령관의 결재사인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

26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5.18 당시 국군 보안사 내부 문건. 희생 유가족을 편 가르고 그나마 온건파로 관리하던 이들에 대해 C등급을 매겨 광주항쟁 외에는 쓸모가 없음을 명시했다. ⓒ 더불어민주당 제공

또한 항쟁 과정에서 숨진 '군인 유가족'에게는 월 2만원, '광주 유가족 중 온건파'에게는 월 5만원씩을 지급하라는 특별 지침도 담겼다. 보훈 및 서훈 원칙을 다룬 국가법령은 그저 글자에 불과했다는 뜻이다.

국가의 부름을 받은 젊은이들의 희생마저 폄훼한 반사회적 지시를 내린 사령탑 또는 최대 수혜자는 37년이 흐른 지금, 치매노인이 됐다는 소문에 휘말렸다. 정말 그의 기억이 점점 희미해진다면 당사자의 말은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 할 수도 있다.

20년 넘게 '전 재산 29만원'을 고집했던 전두환씨는 정말 치매노인으로 스스로의 권좌를 시궁창에 처넣으면서까지 시대적 책임을 피하고자 했을까?

불행히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처음부터 국가, 국민, 양심, 도덕 따위 없던 자(者)라고 전제하면 답이 나온다. 혹시나 그들이 이룬 경제적 성장과 과실을 내세워 두둔한다면 이렇게 반박할 수 있다. 

"책과 선생님이 없어 0점 맞던 아이를 좋은 책과 교사를 붙여 80점으로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라고.

전씨에 대해 2013년 검찰 압수수색 당시 일부 제기됐던 건강 이상설이 최근 측근들의 증언으로 재점화됐다. 자주 만났던 측근에게 '지금 어디 사느냐'라는 질문을 같은 날 4차례나 했다는 말이 나오면서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는 입길에 오른 것이다.

노인치매 인구가 급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개인의 질환을 문제삼을 수는 없다. 다만 피해자 본인뿐 아니라 대를 거쳐 영혼에 새겨진 상처에 대해 정권 차원의 은폐공작이 작용했고, 40년 가까이 지나 진상규명이 이뤄지려는 직전에 가해자가 질병을 이유로 모르쇠로 일관하는 비극적 상황은 피해야 한다.

그만큼 진실규명을 위한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전두환 치매설=국가·국민·양심·도덕성 全無 '무뇌아' 

국가라면 △국민을 굶어죽지 않게 하고 △최소한의 교육수준 및 안전을 보장하는 게 원칙이다. 지금부터는 정당성 없이 본인의 안녕을 위해 구축된 국가 권력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의 방증이다.

26일 아침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박주민 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관련문건 6건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5·18 민주화운동 이후 보안사가 악랄한 방법을 총동원해 유족끼리 분열을 조장하고 민심을 왜곡하는 집요한 공작을 펼쳤다"고 주장했다.

해당 문건은 5·18 이듬해인 1981년부터 1988년 말까지 작성된 문서로 보안사가 주도한 △학원 △종교 △유가족 △구속자 및 부상자를 대상으로 치밀하게 기획 실행한 이른바 '광주순화계획'의 구체적 내용이다.

문건에 따르면 당시 보안사는 유족을 성향별로 극렬파와 온건파로 구분해 극렬파에는 일명 '물빼기 작전' 온건파는 '지원과 육성 활동'을 전개했다. 즉 대항할 의지가 없는 유가족들을 금품으로 회유해 자기편으로 만들고, 대항하는 유가족들은 일대 일로 작업을 해 힘을 빼는 식이었다.

여기에는 유사시 군 동원을 염두에 두고 5·18 작전에 투입됐던 공수부대가 집중적으로 익힌 시위진압 훈련인 '충정훈련'을 실시하고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광주 시민들이 공작에 넘어가지 않는다면 2차, 3차 살육을 저지를 준비를 한 것이다.

이날 의원들이 공개한 문건 중 첫째는 1981년 5월28일에 작성된 '광주사태 1주년 대비 예방정보활동 결과'다. 이는 5·18 1주년 전후해 불순세력의 선동행위와 광주권 주민의 잠재적 불만의식 등으로 불의의 사태발생에 대비한다는 목적으로 작성됐다.

구체적으로 △잠재 불만의 표출 예방 △위령제 등 각종 추도행사 기획 봉쇄 △불순세력군의 잠복활동 와해가 구체적 활동방향으로 적시됐다. 또 학생과 종교인, 유가족 및 구속자 가족을 성향에 따라 구분해 공작활동의 결과를 보고했다.

먼저 전남대 특정 동아리를 와해할 목적으로 학군단(ROTC)에 비용을 지원해 이면침투 및 첩보수집 활동을 지시했고 천주교, 기독교 등 종교인 추모예배를 막기 위해 250만원(현재 약 1000만원)을 투입해 종교인 60여명을 대상으로 제3땅굴, 판문점 안보견학을 진행했다.

아울러 눈에 띄는 대목은 구속자 가족의 미국공보원 농성을 와해과정에서 미국 CIA(중앙정보국)과 협조했다는 부분이다. 민주당은 향후 5·18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 진상이 명확히 규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문건은 1985년 봄쯤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정보사업계획'이라는 제목의 문서다. 여기에는 유가족 분열 공작이 체계적으로 명기돼 있다. 극렬파에 대해 일대 일로 조를 짜 사찰하는 '물빼기 작전'을 시행해 12가구, 15명을 회유했다는 성과내역이 기재됐다.

온건파에 대해서는 군인 및 군인가족을 활용한 집중적인 '돌봄'이 적용됐다. 취업알선, 자녀학비면제 등 애로사항을 해소하고 대가로 유가족끼리 매달 모이는 친목모임을 축소시켰다. 물론 국가 보훈과는 전혀 별개로 이뤄진 정두환 장군의 '배려'다.

1985년 11월6일자 작성 문건(광주 5·18 유족순화사업 추진 중간보고)은 지난 성과의 나열이다. 유족회 안에 온건파 유족 또는 불만세력을 대상으로 '회장·임원진이 장차 정계진출을 위해 조직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역(逆)루머를 유포' 또는 '물량지원을 통해 상호 불신 조장'해 온건파를 늘리고 극렬파가 줄었다는 게 골자다.

5.18 광주항쟁 관련 야당 성향의 유족을 사찰해 상부 보고한 군 내부 문건. ⓒ 더불어민주당 제공

순화계획은 무려 8년 동안 꾸준히 이어졌다. 눈 뜨면 만나는 사람이 귀에 단 말을 내뱉고 듣기 좋은 말을 하는 것에는 장사 없을 터였다.

1986년 2월 문건에는 온건파 유족회를 대상으로 '지속적인 접촉과 지원으로 유대관계를 형성' '문제행사 참여 차단'을 기본방침으로 정했고, 군 관련 유족은 신상파악과 취약점을 발굴해 활용하며 온건파에는 인간적 유대관계를 기반으로 물량 및 행정지원을 하는 한편, 반발하는 인물에게는 '비판을 유도하라'는 지침이 내렸다.

다음은 공개된 문건 중 가장 나중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광주사태 관련자 순화'라는 제목의 한 장짜리 문서다. 1988년 1월부터 12월까지 1년간 추진된 성과 기록으로 주요 실적은 '온건파 유족회원이 강경파 유족회 계주부부를 폭행했다'는 건이다.

또한 작성시점이 불분명한 '5·18 온건 유족회'라는 제목의 한 페이지 분량 문서에는 온건파 유족회의 현황 및 편성조직이 서술돼 있다. 유족회의 영향력 및 활용도를 각 C급으로 표현했다.

C급으로 언급한 이유는 '광주사태 외에 영향력이 없다'라는 것으로 5·18 관련 사안 외에는 쓸모가 없다며 버린 것이다.

이에 이철희 의원은 "공개된 문건으로 일명 '순화계획'이라는 명목으로 저지른 수년간의 와해, 회유공작의 실체가 드러났다"면서 "5·18 민주항쟁과 관련해 표출된 다툼과 갈등은 전두환정권 아래 기획된 더러운 공작의 결과였음을 입증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37년 전 만행을 무마하려 기획된 공작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 참사 이후 데자뷰처럼 되살아났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와 유가족들에 대한 외압을 행사했음이 내부 문건과 우병우 전 수석 전임 민정수석비서관인 故 김영한 전 수석의 깨알 비망록으로 일부 입증됐다.

지금 우리는 '직접투표'를 통해 대통령·국회의원·자치단체장 그리고 지자체 기초의원까지 우리 손으로 뽑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잘못된 통치자에게 스스로 목줄을 묶어 이를 원하는 누군가에 넘겼고 이를 내 아이들에게 강요했다면, 이것은 죄다. 

불과 반세기도 되기 전 한국전쟁 이후 왕정체제에서 갓 벗어난 대한민국 국민은 리더십에 따라 훌륭히 움직였다. 통치자의 안녕은 전혀 별개의 문제임에도 본인의 노력, 또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얻은 성공까지 정권이 진공청소기처럼 본인 업적으로 빨아들였다면 문제다. 이는 국가의 국민에 대한 착취다.

진실은 잔혹할지라도 이를 모른 채 유린당하는 권리가 훨씬 더 아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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