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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習의 은탄외교, 文의 아세안외교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7.11.10 09:42:45

[프라임경제] 한때 대만의 외교정책을 가리켜 '은탄외교'라고 불렀다. 대만에 자리 잡고 있는 중화민국과 베이징을 차지한 중화인민공화국의 갈등은 우리 남북 정통성 대결과 흡사하다. 후자는 지금 우리가 그냥 중국이라고 부르는 쪽이다.

국민당 정부가 공산당과의 내전 끝에 대륙을 뺏기고 대만 섬으로 밀려난 후, 양쪽은 서로 정통 중국 정부는 자신뿐이라며 대결해왔다. 냉전시대 초기만 해도 민주진영은 대만 편 아울러 공산진영은 중국 편을 드는 공식이 확실했다.

하지만 미국이 소련을 견제할  목적으로 중국과 핑퐁 외교로 대화 물꼬를 트면서, 대만의 신세가 외로워졌다. 국제연합(UN) 상임이사국 중 하나였던 당당한 지위에서 아예 쫓겨나다시피 UN에서 떠났고, 수교 국가들 중 일부에서 밀리는 양상도 보였다.

대만은 그래도 막대한 외환보유고 등을 밑천 삼아 외교관계를 돈으로 넓히고 유지하는 전략으로 상당히 버텼다. 은으로 만든 총알에 빗대 대만의 이런 대외정책을 은탄외교라 칭한 것이다.

후에는 중국이 국력신장으로 압도적으로 우세해지면서, 대만과 수교한 국가들을 회유해 자신과 손잡도록 공작을 본격화했다. 이때도 무기는 자금 지원, 원조 등 경제의 힘이었다. 아마 2000년대 이후 대학에서 국제정치 분야를 접한 세대는 오히려 '은탄외교는 곧 중국'의 것으로 연상할 것이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2500억달러 상당의 대미 경제협력 카드를 내밀자 '천하의 거친 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적당한 봉합과 존중으로 양국 정상회담을 마쳤다.

우리나라 국회에서 연설할 때만 해도 중국과 러시아 등을 상대로 기존의 UN 대북 결의 준수는 물론 석유 금수 등 새로운 제재에 동참하라고 윽박지를 태세였으나, 자국의 경제적 이익 앞에 이를 잠시 눈 감아 준 셈이다.

시 주석이 북한이 예뻐서 이런 투자를 한 건 아니다.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잠시 적인 미국의 협력을 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고, 미국 역시 이런 내심을 알면서도 자기 이익을 위해 일단은 이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 '절충'이 됐다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결국 이번 시 주석 외교는 그 막대한 집행 능력면에서 대단히 인상적이고 부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돈으로 (진정한) 친구를 (오래) 살 수 없다'는 은탄외교의 오랜 교훈을 증명할 하나의 케이스로 나중에는 평가받을 미봉책이라는 예측까지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은탄외교에 말려든 트럼프 대통령 역시 최종적 승자는 아니다. 그는 자국 방송인 ABC의 온라인판에서 이번 아시아 순방이 "(일단 무역적자의 급한 불은 껐을지 몰라도) 무역과 대북 제재의 '본질적 문제' 해결을 이루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듣는 등 성과에 비해 비교적 짠 점수를 얻었다. 개별적 비즈니스를 다량으로 많이 끌어모으는 데 그쳤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가설을 하나 정리하고 넘어가자. 과거 빛나던 대만의 은탄외교를 지금은 아무도 성공적이라 평가해주지 않고 기억조차 희미한 것처럼, 시 주석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은탄외교식 밀월도 영원할 수 없을 것이고 그 유통기한 역시 길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등을 순방 중이다. 對아세안 외교를 4강 외교 못지 않게 격상한다는 각오로 뛰고 있다. 아세안 공동체는 오래도록 변방 경제로 치부돼 왔다. 그런 상황에 한편 부럽고 한편 샘나는 대상이었던 한국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으니 현지반응이 괜찮다.

무엇보다 중국의 팽창 정책, 즉 일대일로의 압박을 느끼는 한편 미국이 그렇다고 무조건 선이고 자기 편이라는 신뢰 역시 가질 수 없는 현재 아시아 정세에서, 그래도 동병상련을 느끼면서 대화의 진정성을 서로 교감하려는 시도가 먹힌다는 풀이를 할 수 있겠다.

왜 우리가 진정한 벗일 수 있는지 또 앞으로 현재까지의 교류를 한층 업그레이드하고 싶어 하는지 아세안 국가들을 이번 순방에 잘 설득한다면, 나중에 문 대통령의 이번 남방 외교 성과가 시 주석의 2500억달러짜리 통큰 외교보다 더 빛을 발할 것이다. 

이번에 중국과 미국 간 협상에서 드러난 강대국의 적나라한 민낯에 서운하거나, 원화 강세나 한미 FTA 건 등 각종 경제적 숙제에서 느끼는 부담도 크겠지만, 지금 아세안 지역에서 뿌리는 우호의 거름이 언젠가 큰 밑천으로 돌아올 것이다. 훗날 역사가들이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내용보다, 문 대통령과 인도네시아 등 지도자들의 대화를 더 높이 평가할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가슴에 품고 심기일전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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