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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해부] 코오롱 ①이웅열 3세 경영 절반의 성공을 읽다

'코리아 나일론부터 티슈진까지'···오너 DNA가 빚은 작품집

이수영 기자 | lsy@newsprime.co.kr | 2017.11.21 10:45:28

[프라임경제] 2015년 기준 대한민국에는 1만2460개의 기업이 존재하며 이 중 대기업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상위 0.1%의 몫이다. 한국의 대기업은 세계 유례없는 독특한 DNA를 품고 있는데, 창업주 일가의 개인적 성공에서 태동했다는 것이다. 속도전과 다름없었던 근대화의 역사 속에서 차고 넘쳤던 기회를 거머쥔 이들은 '재벌'로 불리며, 성장과 승계를 거듭해왔다. [기업해부]는 창업주의 손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자 후계자의 손을 통해 새롭게 디자인된 현재와 미래의 가치를 톺아보는 과정이다.

지난 6일 막판 열기가 뜨거운 기업공개(IPO) 시장에 대어(大漁)가 출현했다. 미국 매릴랜드 록빌(Rockville)에 본사를 둔 제약업체 티슈진(950160)이다. 무릎 고관절염 치료제 '인보사(INVOSSA)'를 개발한 업체로 지난달 공모주 청약 당시 경쟁률은 299.53대 1을 기록했다. 앞서 셀트리온헬스케어(091990·6.95대 1)와 지난해 신라젠(215600·172.5대 1)을 크게 따돌린 수치다.

상장 첫날 시초가 5만2000원 대비 17.88% 급락한 4만2700원으로 주춤했지만 주가는 차익실현 물량이 빠져나간 직후 매섭게 치솟았다. 상장 열흘 만인 지난 17일 종가 6만400원을 기록하며 첫날 대비 상승률은 41.45%, 시가총액은 3조6000억원을 훌쩍 넘겼다.

코오롱(002020)의 바이오계열사인 티슈진은 이웅렬 회장의 19년 집념이 만든 결과다. 지난해 환갑을 맞은 그가 인생의 3분의 1을 투자한 셈인데 '나일론'을 앞세워 일어선 코오롱을 이끌 열쇠이자, 이웅열의 경영 DNA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작품으로 꼽힌다.

◆별명은 '3박4일'… 선택지 불운은 덤?

본디 코오롱은 '코리아 나일론(Korea Nylon)'에서 파생된 이름이다. 시작은 이 회장의 조부인 이원만 창업주가 1957년 세운 한국나일론으로, 그는 1953년 우리나라에 나일론 섬유를 처음 들여온 장본인이다.

당시로는 꿈의 신소재였던 나일론을 발판 삼아 코오롱은 대한민국 섬유산업의 핵심으로 성장했고 이 창업주의 장남이자 이웅열 회장의 부친인 이동찬 명예회장 아래서 코오롱그룹은 전성기를 구가했다.

1.5세 경영자인 이 명예회장은 1990년대 중반까지 40년 가까이 사업을 이끌었으며 키워드는 '다각화'였다. 1980년대 비디오테이프, 필름 제조업으로 영역을 넓힌 코오롱은 1988년 코오롱전자(현 코오롱인더스트리 전신)를 세웠고 1994년 신세기통신을 설립해 이동통신시장까지 진출했다.
 
이웅열 회장이 본격적인 경영수업에 나선 것은 1977년 코오롱에 입사하면서부터다. 이후 뉴욕·도쿄지사 등 해외사업부를 거쳤고 입사 19년 만인 1996년 총수로 올라서며 코오롱의 3세 승계가 일단락됐다.

이웅열 코오롱 그룹 회장이 지난 2014년 부친 이동찬 코오롱 그룹 명예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맞이하는 모습. 이동찬 명예회장은 1960~1970년대 코오롱상사, 코오롱나일론, 코오롱폴리에스터 대표이사를 역임하며 오늘날의 코오롱그룹을 일궜다. ⓒ 뉴스1

그러나 취임 이듬해 닥친 외환위기는 이웅열의 경영능력을 평가하는 처음이자 가장 혹독한 시험대가 됐다. 당시 26개였던 계열사는 15개로 쪼그라들었고 이 회장 본인이 상당한 애착을 보였던 신세기통신 지분도 매각 절차를 밟아야 했다.

이 회장의 별명인 '3박4일'이 유명해진 것도 이 시점인데, 한번 물고 늘어지면 나흘 안에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붙은 것이라고 한다. 다만 극적이었던 몇몇 결정은 운이 따르지 않거나 공과를 따지기 애매한 적이 적지 않다. 그래서 이웅열의 성공은 여전히 '절반'이라는 것이다.

먼저 포스코와 함께 출자한 신세기통신은 시작부터 포스코 출신 인사들과 마찰을 겪으며 순탄하게 굴러가지 않았다. 그나마 군·정부요인을 대상으로 펼친 VVIP 마케팅으로 입소문을 탔는데, 결국 SK텔레콤이 이를 흡수하면서 시장점유율 과반 확보라는 과실을 빼앗긴 셈이 됐다.

또 1987년 BMW, 롤스로이스 판권을 확보한 코오롱은 1세대 수입차 딜러로 활약해왔다. 결정적 장면은 2015년 8월 독일 아우디의 판권을 추가로 사들인 것이다. 계약이 성사된 직후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이 터졌고 이듬해 7월 말 판매가 금지되는 불운이 따랐다.

판권을 보유한 자회사에 대해서도 뒷말이 많았다. 코오롱아우토라는 간판을 건 업체는 원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연구·개발사로 2001년 코오롱에 인수됐다. 그러나 최근까지 3000억원 가까운 그룹 지원을 받고도 적자행진을 계속해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던 터였다.

2012년 미국 듀폰과의 아라미드 특허 분쟁에 따른 충격 역시 여전히 극복 중이다. 당시 듀폰은 코오롱인더스트리가 아라미드 생산기술 관련 영업비밀을 빼냈다며 사용중지 소송을 제기했었다.

3년 만인 2015년 4월 이웅열 회장은 듀폰에 합의금 2억7500만달러(약 3224억원)과 벌금 8500만달러(약 1000억원)을 향후 5년간 분납하는 것으로 사태를 일단락 지었고, 4000억원을 들여서라도 아라미드시장을 석권하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다만 코오롱인더스트리의 관련 브랜드 '헤라크론' 시장점유율은 여전히 7% 수준인데다 지난해 기준 듀폰과 일본 데이진이 전체 시장의 85% 이상을 양분한 상황에서 투자효율성을 의심받고 있다.

심지어 후발주자인 효성이 연간 1000만톤급 생산이 가능한데 비해 코오롱 헤라크론은 생산제한이 풀린 현재까지도 5000톤 수준에 머물렀고, 투자확충 여부는 불투명하다. '선택과 집중'이라기엔 출혈이 크다는 뜻이다.

◆박정희부터 박근혜까지 화려한 정재계 혼맥

고비는 많았지만 이웅열 회장은 재계 3세 경영인 가운데 여전히 중량급 인사로 꼽힌다. 그의 입지는 선대부터 이어진 정재계 인연의 힘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웅열 코오롱 그룹 회장이 2014년 2월18일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고 사망자 6명이 안치된 울산시 북구 21세기좋은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손을 모으고 있다. 마우나오션리조트는 코오롱그룹의 자회사인 마우나오션개발주식회사가 운영을 맡고 있으며 코오롱그룹이 지분 50%를 보유했는데 당시 붕괴사고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중이던 대학생 다수가 사망하고 부상을 당해 충격을 준 바 있다. ⓒ 뉴스1

이원만 창업주가 2공화국 당시 집권당인 민주당과 4·16 이후 민주공화당에서 내리 3선 국회의원을 한 정치인이고, 코오롱은 오랜 시간 화려한 혼맥으로 다져진 가문이다. 비록 창업주 본인이 칠순을 넘겨 유흥업소 종업원 사이에서 혼외자를 뒀고 뒤늦게 수십억대 재산분할 송사에 시달렸음을 논외로 친다면 말이다. 

코오롱은 이 창업주 조카가 정일권 전 국무총리 딸과 결혼한 것을 계기로 정계에 줄을 대기 시작했다. 정 전 총리는 박정희 정권 최장수 국무총리이자 국회의장을 역임한 실력자다.

이웅열 회장의 모친은 고려 개국공신 가문이자 신사임당을 배출한 평산 신씨가(家) 신덕진 여사이고, 작은아버지 이동보 전 코오롱TNS 회장은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큰 딸과 결혼했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 부부가 중매를 한 것으로 유명한데 애석하게도 두 사람의 관계는 파경을 맞았다.

그럼에도 코오롱과 박정희 가문의 친분은 오래 유지됐는데 이웅열 회장과 박지만 EG 회장의 친분이 학창시절부터 돈독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관한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 이 회장이 불참한 것을 두고 뒷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 회장 누나 경숙씨는 대표적인 TK(대구경북) 인맥으로 통하는 이효상 전 국회의장 아들과 결혼했다. 이 전 의장은 5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공화당 총재, 영남학원 이사장을 지냈다.

그는 과거 선거에서 박정희 후보를 지지하며 "(박정희 후보는)신라 임금의 자랑스러운 후손으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 이 고장 사람을 천년 만에 임금으로 모시자"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 등 지역감정 조장 발언을 해 훗날 논란이 된 바 있다.

정계뿐 아니라 재계에서도 코오롱은 마당발에 속한다. 이 회장 막내 고모인 이미향씨는 허영인 SPC 회장과 결혼했으며 아들 허진수 SPC 상무가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조카딸과 혼약을 맺은 덕에 코오롱은 SPC, 넓게는 두산과도 친인척 관계다.

또한 이 회장의 셋째 누이 혜숙씨는 이학철 고려해운 창업주 장남과 부부의 연을 맺었는데, 시누이인 이운경씨는 남양유업 홍원식 회장의 부인이다. 코오롱-고려해운-남양유업으로 이어지는 든든한 고리가 완성된 셈이다.

넷째 누이 은주씨는 전두환 정권 부총리를 지낸 신병현 전 경제기획원 장관의 큰 아들과 혼인했다. 신 전 부총리는 한국은행 총재, 무역협회장, 은행연합회장을 역임한 금융계 거물이다.

이런 가운데 이웅열 회장 본인은 최고급 벽지로 1960년대 유명세를 떨친 서병식 동남갈포공업 회장의 큰 딸과 부부의 연을 맺었고, 부인 서창희 여사를 비롯해 코오롱가 여성들은 대부분 이화여대 동문으로 묶여있다.

이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조지워싱턴 경영대학원으로 이어지는 학맥에서도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재벌 2세들의 동문으로 요약되는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은 정몽원 한라건설 회장을 비롯해 △허창수 GS홀딩스 회장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허진수 GS칼텔스 사장 등이 줄줄이 이웅열 회장의 동문 선배다.

또한 △이범 에스콰이어 회장 △정몽진 KCC회장 △서영배 아모레퍼시픽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박정원 두산건설 부회장 등은 모두 이 회장의 직속 후배들이다. 학번 차이가 제법 나지만 89학번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는 절친으로 알려졌다.

◆끊어야할 정치권 유착 의혹 '4대강의 그림자'

이런 연장선에서 이른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라인'이 각광받던 이명박 정권의 출범은 코오롱의 위상에 적잖은 변화를 불러왔다.

코오롱워터앤에너지는 코오롱의 수처리계열사 중 한 곳으로 연매출 2000억원대 중견업체였다. 이웅열 회장은 이명박 정권이 추진했던 '물산업지원법'에 힘입어 관련 사업 확장을 천명하고 2015년까지 연매출 2조원대 업체로 성장시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러나 회사는 지난해 8월 돌연 매각됐다. ⓒ 과거 코오롱워터앤에너지 홈페이지

이 전 대통령 본인이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문인데다 형 이상득 전 의원은 코오롱 공채로 입사해 사장까지 오른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특히 이 회장 부친과 이 전 의원은 포항출신 선후배로 돈독한 사이인 만큼 박정희-이명박까지 이어지는 역대 정부와 끈을 놓지 않고 교류한 곳이 코오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정권의 역작인 4대강 사업의 그림자는 여전히 코오롱을 짙게 물들이고 있다. 이미 2013년부터 문제가 됐던 총인사업을 비롯해 코오롱그룹 수처리 계열사에 대한 특혜시비뿐 아니라 불과 1~2년 사이 급하게 진행된 일종의 기업세탁 정황은 의구심을 자아낸다.

정치권 유착 의혹과 불투명한 경영시스템은 코오롱이 극복해야 할 가장 치명적 과제다. [기업해부] 다음 편은 코오롱 수처리계열사의 수상한 기업세탁 정황과 이명박 정권과의 연관관계를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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